2019.6.2.무엇이 보이느냐(마가복음8:22-29)
[성경본문] 마가복음8:22-29개역개정
22.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27.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제공: 대한성서공회
| 무엇이 보이느냐(마가복음8:22-29/2019.6.2.오전) 1. 사람의 뇌는 오른쪽, 왼쪽으로 각각 담당하는 영역이 다르다고 합니다. 왼쪽의 뇌는 언어나 수학과 같은 계산 능력이 뛰어나고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데, 오른쪽 뇌는 예술이나 철학 종교와 같은 진리나 아름다움에 대한 영역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왼쪽 뇌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집중하는데, 오른쪽 뇌는 수풀 전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특징은 왼쪽 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쪽 뇌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퇴보가 되기 때문에 뇌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병이 점점 늘어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는 것은 왼쪽 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은 오른쪽 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눈물로 기도하게 되면 많은 양의 엔돌핀이 뇌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의사도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까지 치료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른쪽 뇌가 우리 몸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고, 오른쪽 뇌가 발달한 사람은 종교적인 감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좌우의 뇌가 골고루 발달한 사람은 모든 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보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시각을 통해서 본다는 이 행동은 어느 쪽의 뇌가 주관하는지 아십니까? 오른쪽 뇌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객관적으로 보면 한 사람의 맹인을 예수님이 치료하시는 내용이지만, 그 내면에는 우리의 어두워진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려는 또 다른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은 몇 가지의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맹인 한 사람을 치료하시는데 두 번이나 안수를 하셨다는 것과, 이 사건은 7장32절 이하의 사건과 유사하다는 것, 맹인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려 왔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조용히 치료하시고 또 그 사람에게 자신이 치료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행동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양쪽의 건강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아서는 안 될 것은 기를 쓰고 보려고 하고, 당연히 보아야 할 것은 애써 외면하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뉴스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그 나머지는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봉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의 사건을 놓고 분명한 판단을 세우지 못하거나,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불법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지난 5월28일에 뉴질랜드에서는 자신의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있던 후레이저 아닌그 라는 원로원 의원을 17세의 소년이 그 노인의 머리를 달걀로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뉴스를 통해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기부를 하였고, 그 소년은 760만 엔에 해당하는 기부금을 받아 그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지난 3월 15일 뉴질랜드 어느 모스크에서 일어났던 총격 테러 사건의 희생자를 위해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린 소년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테러는 그것이 총격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이나 공공장소에서 달걀로 공격하는 것이나 그 어떤 명분으로서도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가 무슬림들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라고 발언한 정치가의 발언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이렇게 공격한다면 국회는 무슨 필요가 있으며, 헌법은 왜 만드는 것입니까? 17세 소년의 이런 행동을 무분별하게 지지하고 그를 영웅처럼 대접한다면 그 아이의 장래나 함께 자라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어디로 향해 나갈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일본의 경우도 1960년의 안보투쟁이나 60년대 말까지의 학생운동은 경찰 기동대와 충돌하면서 일본을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들은 이런 데모나 과격한 폭력으로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어제까지 폭력으로 얼룩진 데모 현장으로부터 학원으로 돌아가 면학에 열중하면서 그들이 사회와 국가 기관에 들어가서 오늘의 안정된 일본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법이나 사회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주권이니 권리이니 하면서 자유를 외치는 자들의 파워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적인 흐름을 법과 양심과 사회적인 규범을 가지고 올바르게 판단하기 보다는, 맹목적으로 지지를 하며 따라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얻지 못하고 함께 무너져 내리는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제 스스로의 언행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지를 생각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원하지 않는 것에는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까? 제일 먼저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느냐를 살펴야 하고, 우리 예수님이라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5. 본문 23절을 보면 예수님이 침을 뱉어 눈에 바르시고 안수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보이느냐"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소경이 스스로 눈을 뜨고 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소경이 자신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에게로 왔고, 또 예수님이 손잡아 이끄시는 대로 따라 갔고, 예수님이 질문하시면 있는 그대로 느낌 그대로 대답한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고 순종하면 나머지는 전부 주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이 복잡하고 잘못된 환경과 조건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죄로 말미암은 악한 습성이 가득하고, 그러한 죄성을 죽이지 않고는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예배가 끝난 후에도 교회에 머물면서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리의 죄성을 죽이는 훈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죽이는 비결은 나를 부정하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모든 것은 주님이 하셨다고 인정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실 때, 두 번씩이나 안수하여 고치시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갑자기 그 분의 능력이 약해져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물은 믿고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 즉시 이루어지지만,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성은 한 번에 다 뽑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본문에서 맹인을 치료하시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인데, 이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분의 거룩한 형상을 닮아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분이 변화되었다고 즉시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갈4:19)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로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의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화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으로 전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기까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과, 계속해서 그 사람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도록 전도자가 모범을 보이고 양육하는 과정을 거쳐서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데리고 오는 과정까지 이르지 아니하면 온전한 전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맹인을 단 한 번에 치료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두 번씩이나 번거롭게 안수 하신 이유는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7. 그런데 27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고, 29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사람들의 입소문에 민감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너희의 눈에는 내가 어떤 존재로 보이느냐 하는 뜻으로 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눈앞에 두고서도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다, 또는 엘리야다 다른 선지자 아무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의 생각이 너무 잘못된 곳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의 눈이 닫힌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영의 눈이 닫히면 선악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갈 수 없으며 고통을 가져오는 불법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져 봐야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았구나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8. 왜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셨습니까? 눈이 열려야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눈이 열려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으며, 눈이 열릴 때 감사와 기쁨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3분 복음을 외우는 이유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가 왜 세상에 오셨으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과 맹목적이거나 대강 알고 믿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의 눈도 열려야 인생이 열리고 감사와 기쁨의 문도 열리는 줄 믿습니다. 맹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만, 영적으로 눈이 먼 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온 무명의 한 맹인을 통해서 아직까지 영적인 눈이 닫혀 있는 제자들의 눈을 열고자 하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영의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처럼 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눅23:34) 혼란스럽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죄악에서 구원해 내야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내게 열린 영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