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6.떡이 없는 인생(마가복음8:1-21)

[성경본문] 마가복음8:1-21개역개정

1.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떡이 없는 인생(마가복음8:1-21/2019.5.26.오전)


1.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은 선악에 관한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문제,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선악에 대한 판단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것은 바른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도 관계가 깨어진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도 이웃과의 관계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도 사랑 이전에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관계의 제일 중심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한 것도 많고 연약한 존재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 라고 하셨고, 또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 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가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란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거나 정말 그럴까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이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라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원하지 않은 일을 만나도,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뜻이 있음을 믿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염려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관계가 깨어지거나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 문제가 생기고 고통이 오고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모인 무리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이 사람들이 먹을 떡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해도, 사흘씩이나 집을 나와서 지낸다면 적어도 미리 의식주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이런 정도의 상식은 지나치게 배부른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궁핍한 시대였기 때문에, 내일의 양식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니다가 해가 지면 적당한 곳에 노숙을 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하룻밤의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군중들 가운데 떡이 없는 현실을 예수님이 어려움 없이 해결해 주신 것과 그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 뒤에 본문 14절 이후에 보면, 제자들이 떡을 준비해 오는 것을 잊고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책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준비해 온 양식이 없으면 때가 되면 누구라도 당연히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은 생각하는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하게 되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경험을 쌓게 되고, 여기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경우는 떡으로 인한 똑같은 사건을 두 번씩이나 경험하고도 지금의 떡이 없는 상황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은혜로운 설교를 듣고 재미있는 강의를 듣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지만, 그러나 아무리 많이 듣고 배워도 그 말씀을 나의 삶이나 내 하는 일에 적용할 줄 모른다면, 이것은 TV 드라마 한 편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떡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 일로 인해서 제자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열두 명의 수준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없으면 고민하고 있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마4:4절의 말씀입니다. 그곳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신8:3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 우리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그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생명조차도 고통 없이는 출생할 수 없으며,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세상 살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겪는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결핍에서 오는 고통일 것입니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건강하지 못한 육신이나 이것저것 쓸 것은 많은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준비를 해도 계속 모자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지런히 쌓아 두고서 이런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면하려고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쌓아 놓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근검절약하다 보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되고 사람의 품위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인생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계속해서 모자라는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막6장에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세어서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떡 7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역시 장정만 세어서 4천 명을 먹이고 7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똑 같은 문제를 놓고 똑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그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당연히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떡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내게 고통을 주고 있는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그 분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질문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느냐?
이런 방법은 너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좋은 방법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전연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계속해서 인본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기계들은 자체의 몸통인 하드와 그 안에 소프트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계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던져 버리면 두 번 다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에는 안에 있는 프로그램을 고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따라 존재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먹을 때 메마른 심령이 생수로 만족을 얻고, 영과 육신은 새 힘을 얻을 수 있으며, 비록 고난이 많은 삶 속에서도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19편에서는 176절 전체가 여호와의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복된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그 말씀들을 잊지 않고 지키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2절에는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 기 때문에, 33절에서 "여호와의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고 하였고, 103절에서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 하" 다고 하였습니다.

6. 세상 사랑의 한계점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면 할수록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의 건망증이나 부주의함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떡 문제로 인한 두 번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믿음 없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당면하고 있는 고통이나 인생의 장애물은 그것 자체로는 결코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시는데, 언 듯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돌멩이를 가지고도 떡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마귀조차도 인정하는 능력입니다(마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택하시지 않고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물어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해결해 주시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처럼 능력을 행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이 믿음을 사용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인생은 늘 부족한 존재이고 그래서 늘 떡 문제로 고민하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얼마만큼 부족하며, 어디서 이 부족한 것을 채울 것이며, 이것을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며 누구를 만나야 할 것인가?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으며, 누가 연약한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런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지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분명한 답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7. 그러므로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까지는 누구를 만나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받기 전 까지는 무엇을 소유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자나 아래서 지배를 당하고 있는 자나 공통점이 있다면 인생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은 고통을 통해서, 결핍이라는 모자람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생각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면 인생의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으며, 그 분의 도우심을 통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떡 7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고도 7광주리가 남는 축복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전부 사소한 것들입니다.
저는 이전에 리처드 칼슨이 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책을 읽고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사소한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마다 그 사소한 것은 다르다는 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장남감이 보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장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에는 관심도 주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에 성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사소한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 오늘 떡이 부족해서, 내 인생에 준비된 것이 모자라서 고민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것 때문에 모여서 수군거리고 고민할 때, 예수님은 사흘을 굶고 있는 군중들을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군중들이나 떡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그곳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람은 군중을 불쌍하게 여기신 예수님뿐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부족한 부분 때문에, 준비되지 못한 양식 때문에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찾으며 그 분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고 하신 예수님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