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29.당신도 나병인가?(마가복음1:40-45)

[성경본문] 마가복음1:40-45개역개정

40.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당신도 나병인가?(마가복음1:40-45/2018.7.29.오전)
1. 지난 27일의 일본경제신문의 1면의 춘추(春秋)에 보니, 비판(批判)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가 흔히 비판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상대방의 주장이나 행동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비판이라는 단어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과연 적절했는지 어떤 지를 반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지성이나 이성을 판단하는 행위를 비판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의미를 가지고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 사람이 순수이성 비판의 저자인 칸트였다고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 스스로의 생각이나 말을 파고 들어가는 비판 정신이야말로 제대로 된 교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경 지방 검찰의 특수부가 수사 중인 문부성의 고위 공직자가 아들을 동경 의대에 진학시키기 위해서 뇌물을 거래한 사실과, 금융청의 정보를 누설한 사건 등의 불상사를 열거하면서, 과연 이런 일을 해도 될 것인지 생각하는 반성의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교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가서는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이런 교양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을 찾아온 한 나병 환자를 치료하시고, 치료 받은 나병 환자가 그 이후의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나병이 무엇인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용어로는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해 왔던 문둥병라는 말이 있고, 또 한센씨 병(hansen's disease)이라고도 부릅니다.
나병은 세균성 전염병으로 악성 피부병을 말하는데, 병세가 진행하면 신체의 말단 부분들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그렇게 손상된 피부가 2차 감염을 일으키면서 악취가 나지만, 본인은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95%의 사람들은 나병에 대한 저항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감염의 위험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나병이라고 하면, 전남 고흥의 소록도의 수용소가 생각이 나고, 나병 시인인 한하운이 생각나고, 또 손양원 목사님이 나병환자의 환부에서 흐르는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며 치료해 준 것과, 육영수 여사는 이곳을 방문하고 또 그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시인 한하운이 나병에 걸려 집을 떠나면서 지은 전라도 길, 혹은 소록도로 가는 길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를 지나고/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
        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3. 나병은 신으로부터 저주 받은 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참혹한 질병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병에 걸리면 감염의 염려와 더불어 부정한 자, 저주 받은 자로 낙인이 찍혀 가족이나 마을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종교적인 활동은 물론이고 이후로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엄격히 금지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본문을 보면,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대단한 결심을 한 듯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병은 불치의 병으로 알려질 정도로 난치병이었지만, 구약성경을 보면 나병에 걸렸다가도 나중에 치료가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을 볼 때. 예수님에게는 이 나병을 치료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 사회는 예수님과 나병 환자의 만남이나, 그 병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그의 몸에 손을 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병 낫기를 호소하는 그의 간절한 태도와 그의 형편을 보시고 마음에 찢어지는 아픔을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깨끗함이라는 단어입니다.
나병은 결국 깨끗지 못한 환경에서 병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화 벤허에도 보면, 주인공의 가족들이 불결하고 햇볕도 들지 않는 그런 지하 감옥에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이 나병을 얻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질병 중에도 보면 이 같은 질병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에이즈입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에이즈는 잘못된 성교를 통해서 감염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행위가 일시적인 쾌락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지고 삶이 황폐화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 하며 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원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순리를 바꾸어 그 분의 창조의 원리를 거역하면 반드시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고, 본인들도 그 심령과 양심에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알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러한 질병들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보면, 사방에 나병 환자로 넘치고 있는 세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을 향해서는 엄격하며 신날하게 비판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이해와 관용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이성적 나병 환자라고 불러도 될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고 판단이 마비된 채 제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사회적 나병 환자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전형적인 사회적 암 덩어리요 나병 환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이 세상은 나병 환자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 거룩하여지고 오늘까지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는 감사를 잃어버린 영적 나병 환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늘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는 나병환자들도 많습니다.
순간순간 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나병환자들도 많습니다.
딤후3장에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이 모든 것이 나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는 인생이 나병환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는 인생이 영적 나병환자입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룩하지 않으며,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경건의 능력이 없다면 이 또한 나병에 걸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나병 때문에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 나가도 모르는 것처럼, 영적인 나병도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온갖 신령한 은사들이 하나 둘 사라져도 그 아픔을 모르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은혜와 감사와 기쁨을 모른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온 이 나병환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에게는 남다른 간절함이 있었고, 주님을 향한 애 끓는 소원이 있었지만, 오늘 우리는 지금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과연 우리야 말로 영적인 나병 환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영적 나병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간절함을 다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8:17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 이라고 했습니다.

6. 그렇다면 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모든 죄와 고통과 더러움에서 건지시고 깨끗하게 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서 원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 영적 나병은 사람의 힘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의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병든 심령을 치료할 수 없으며, 육신과 마음의 나병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나병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는 원래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 나병을 치료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이 치료자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육신은 멀쩡해도 우리의 심령이 병들었다면 오늘 우리도 무릎을 꿇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영적인 나병을 치료 받기를 간절히 원할 때,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몸에 손을 얹으시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선언해 주실 것입니다.

7. 죄는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통곡하기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3-24) 고 소리쳤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죄에 사로잡히면 남는 것을 영원한 고통 뿐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게 나아가면, 그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시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은총으로 풍성하게 채우는 기쁨의 삶을 살도록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즉시로 나병 환자를 치료해 주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44절에 보니, 제사장을 찾아가서 이미 깨끗해진 너의 몸을 보여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이제는 나병에서 놓임을 받은 자유인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레위기 14장에 기록된 내용으로, 나병에서 놓임을 얻고 깨끗해지면, 레14:4절 이하에서 살아 있는 새 두 마리를 가지고 정결의식을 행하고, 여드레가 지나면 10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숫양 두 마리와 암양 한 마리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깨끗하다는 단어가 4번 반복되고 있는데, 처음에 나오는 세 번은, 전부 육체적인 질병에 대한 깨끗함을 말하고 있지만, 마지막 네 번째의 깨끗함은 종교적인 정결, 즉 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나병에 걸린 환자는 가족은 물론이고 그 사회와 종교적인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버림을 받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 사회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고, 이것을 예수님도 인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8. 죄는 이렇게 사람을 나병 환자처럼 망가뜨리고 비참하게 만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버림받고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고 망가진 인생이라도 새롭게 하며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영혼만 구원 받아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고,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온전한 자유인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도 온전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상이 자성(自省)의 비판 능력을 상실한 채 온갖 더러움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들이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비판의 능력을 상실한 대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서 있는 비판의 영성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그런 비판이 아니라,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보고 그곳에 이미 믿음의 능력을 상실한 채 껍데기만 남아 있는 영적인 나병은 없는지, 또한 나의 지성과 이성이 도덕적 나병에 감염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나병을 고치기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주님 앞에 먼저 무릎을 꿇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그래서 깨끗하게 치료 받을 때,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의 자녀들과 온 세상은 건강해지며 깨끗해지며 그래서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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