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0.우리가 받은 사랑(신명기7:6-11)

[성경본문] 신명기7:6-11개역개정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가 받은 사랑(신명기7:6-11/2017.9.10.오전)
1. 지난 7월18일, 동경에 있는 성누가국제병원의 히노하라 시게아끼(日野原重明) 명예원장이 105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155,000명이 넘는다고 하며, 일본에서 매일 3,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의사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에 남긴 인생 메시지가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1937년에 26살의 나이로 의사가 되었을 때에, 결핵으로 입원한 16살의 소녀가 사경을 헤매면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던 이 소녀에게 히노하라씨는 켐플 주사를 투여하면서 힘내라고 격려 할 줄은 알았지만, 내가 안부를 잘 전해 줄 터이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마지막 가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병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빠진 그들을 편안하게 안심시키고 돌보는 간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후로 80년의 세월을 환자들의 손을 잡아 주면서 간병, 즉 돌봄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노하라씨에 의해서 민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인간도크를 개설하면서, 예방의학의 연구와 계몽에 헌신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도 휠체어를 타고 간병의 병동을 드나들면서 환자들을 볼보면서 평생을 현역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늘 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주위의 모든 후배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말한 그대로의 삶을 살다가 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들이 많지만 「인간은 움직이면서 질병이 치료되는 동물」 이라는 것과, 평생을 현역으로 살면 남들보다 20년쯤은 젊게 살 수 있다면서, 지식을 가지고 꿈을 품고 그것이 삶 가운데서 성취되는 것을 보여줌으로 정말 슈퍼스타처럼 그렇게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100살에 시작한 페이스 북에는 지금도 펠로우가 3만여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히노하라씨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이 얼마나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며,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감을 가지고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깨닫고,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기의 길을 걸으면서 그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와 유익을 끼치는 것이 참 가치 있는 인생이요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2. 본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의 사랑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그 주변에 있는 다른 민족이나 나라들에 비해서 너무 작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아주 수준이 낮은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열방 가운데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그런 민족을 택하여 그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상을 받을 때에는 그 상의 주체는 주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가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 반대로 베풀어 주는 자가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가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듯이,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 용서 받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은 줄 믿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 부모님의 관심과 희생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특히 부모로부터 버림당하거나 학대 받으며 버려진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의 미래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애급 땅에 버려진 존재였고, 노예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그런 불쌍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일등 민족이요 최고가는 축복의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떤 관심을 받았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3.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순수하고 변함이 없는 신실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넘치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원하는 진실한 사랑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외식적인 사랑이나,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산되거나 포장이 된 거짓된 사랑이 아니라, 본문 9절에서 밝히고 있는 그대로 신실한 사랑이요 변함이 없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천 대를 거쳐 흘러가도 변함이 없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고통하고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고통하는 만큼 내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도와주는 그런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난 군중들이 사방으로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의 절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지금까지 받지 못한 사랑을 보상받고자 하는 위기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찾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이 찾고 있는 그런 사랑을 원하면 원할수록 고통과 눈물이 있으며, 허무와 탄식, 그리고 분노가 남기 마련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요일4:7-8절에 보니,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목마르게 기다리는 그런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는 참 사랑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입니다.
  
4. 세상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리는 만큼, 소유하는 만큼, 성취하는 만큼, 상대방은 빼앗기고, 상실과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나를 사랑하거나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주고받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작용도 없고 후회고 고통도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랑이나 희생에 관하여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지만, 우리 하나님처럼 자신의 아들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방적으로 내어주는 그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히브리 민족을 애급에서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의 존재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고, 언제든지 변개될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5. 연약한 이스라엘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일에도 늘 낙심하기를 잘하고, 대수롭지 않는 것에도 불평하고 원망하기를 잘하고,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후회하고 하나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일을 잘합니다.
그들이 들어간 가나안 땅의 7부족이 이스라엘 앞에서 망하고 쫓겨난 것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보다 못난 존재라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참 사랑이 무엇입니까?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데도 주는 사랑입니다.
여기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였고, 그 사랑의 고백이 지금 예배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여기에 대한 확신에 넘치는 분명한 답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내가 먼저 있고 내 자신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들고 내가 지금 바쁘고 피곤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부담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부담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고 문제가 있으며 부작용이 있습니다.

6. 바닷가에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많은 바닷물의 양을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많은 물을 인간의 힘으로 다 퍼 담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바닷물 보다 많은 사랑을 소유하고 계시고, 온 우주 보다 크고 넓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한 번도 받지 못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품에만 안기면 세상 사람들이 영원히 부러워할만한 그런 위대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축복의 존재로 변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축복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불쌍한 이스라엘을 강한 민족으로 만들었고, 열방이 두려워하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레26:8절에 보니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나안 정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12명의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우리는 그들에게 메뚜기 같았다고 할 정도라고 하면서,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누가 나를 도와주며,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내가 가진 무기나 능력이 무엇인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는 할 수 없고, 나는 감당이 안되지만,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세상에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도 없는 줄 믿습니다.

7. 세상에 있는 사랑은 우리를 찾아올 때에는 환상적이고 감동적이고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을 때에는 내게 세상에서 최고처럼 느끼지만, 그런 느낌은 잠시잠깐뿐입니다.
왜나햐면 세상은 병들면 버림당하고, 사랑의 맹세는 작은 실패에도 깨어지기며, 욕망의 불길이 식을 때에는 얼음보다 차갑게 변하여 사람의 심장을 비수처럼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울고 돈에 속는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롬8: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니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니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택함받는 하나님이 백성이 누리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와 동행하는 것이야 말로 참 축복이요 능력이요 자랑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자신의 기업으로 삼으셨고, 우리를 택한 자녀로 기뻐하심으로 우리를 권능의 손길로 지켜 주시고 천대까지 축복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11절에 보니,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8. 우리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가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감동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고, 이 사랑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내어 주셨는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쏟으신 그 희생이 십자가를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지 안다면, 이 명령과 규례와 법도는 저절로 지켜질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다고 하여도, 염려대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충만함으로 넘치는 줄 믿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부은바 된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이 사랑에 굶주려 있으며, 이 사랑에 대한 굶주림이 마침내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히노하라(日野原) 의사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을 일으키며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그런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요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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