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13.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뜻(고린도후서1:7-9)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7-9개역개정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뜻(고린도후서1:7-9/2017.8.13.오전)
1. 지난주에 함께 예배드렸던 광성교회의 선교팀 18명이 지난 화요일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원래는 3박4일의 일정으로 월요일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문제는 태풍 5호의 수상한 움직임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7월 21일 오전 9시, 동경에서 1천키로나 떨어진 오가사와라 열도의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 5호가, 태평양에서 원을 그리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하필 선교팀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8월7일에 정확하게 오사카지역을 지나가는 바람에 선교팀이 하루를 늦게 출발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태풍의 수명이 평균 5.4일이라고 하는데, 이번 태풍은 무려 19일간 장수하면서 일본에 많은 피해를 주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우리 기도가 많이 부족했나보다고 했지만, 왜 하나님이 태풍을 좀 더 빨리 지나가게 하시던지, 반대로 지금까지 천천히 움직였으니 계속해서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시지, 왜 선교팀의 비행시간에 맞춰서 이곳을 지나가게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한 의문을 기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애급에 내려갔다가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에 갇히는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지 않아도 될 텐데 왜 그곳에서 고생하게 하셨을까?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키던 히브리의 세 청년을 풀무불에 던지는 것을 얼마든지 막으실 수 있을텐데 왜 그냥 두었을까?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탄 알렉산드리아 호가 왜 풍랑을 만나게 만들었을까?
얼마든지 바람의 속도를 조절하시고 풍랑을 막으실 수 있는데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본문 8절 이하에 보면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환란 때문에 사형선고 받은 자처럼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 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성경구절을 읽어보면 사도바울의 일행이 살 소망이 끊어지도록 큰 고생을 한 이유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9절에 보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는 것입니다.
복음에 열정을 가진 전도자라고, 또는 사도바울이라고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도 인간이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심지어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여행 중에 있다고 하여도 늘 사람은 불신앙이나 인간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잘못된 길로 가다가 목적한 바를 망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크고 위대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우리가 유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와 끊임없이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3.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직장이나 바쁜 일로 인하여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하면, 당연히 아이들의 불만이 늘어나고, 그것이 결국 아이들의 성장이나 인격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바쁘고 피곤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면서 늘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믿음의 영웅들에게도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 때가 언제입니까?
9절에 기록된대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계속 문제 속에서 방황하던지, 아니면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탈진하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4. 믿음의 사람들은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으며,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롬8: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케익을 만들기 위해서 밀가루, 계란, 소금, 설탕, 기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재료를 따로 먹으면 맛이 없지만, 케익이라는 완성된 음식을 통해서 함께 먹으면 너무 맛이 좋아서 계속 먹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때때로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인내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나중에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선한 결과를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롬8:29절 그 아래를 보면, "하나님이 --- 미리 정하셨다" 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부분 부분들을, 심지어 순간적인 시간까지도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아름답게 사용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 교회만 2017년도 다니엘 기도회를 두 번째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금요일의 간증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충남 당진에서 사역하시는 이수훈 목사님이 교회 건축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부산의 어느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가 당진에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 건축헌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당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부산에 있는 교회가 건축헌금을 모으게 된 배경이, 권사님들이 1천 원씩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수훈 목사님이 신학교에 입학하던 때에 일치하였고, 그 교회가 그 동안 모아 가지고 있던 금액이 이 목사님이 적어 놓고 기도하던 금액과 일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늘 우리를 위해 아름답고 복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5. 여자들이 보석을 좋아하는데, 이 보석은 원석으로 있을 때에는 값이 쌉니다.
그러나 긴 시간동안 깎고 다듬고 갈고 하는 고통의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보석의 값은 원석으로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격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집이 세고, 깨닫는 것이 더디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에 갇혀서 산다면, 더 많은 시간을 통해서 다듬는 자의 손길을 통해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시고 우리를 축복의 자녀로 영원히 복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은을 세공하는 어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다루고 있는 이 은이 깨끗하게 잘 세공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듬어진 은에다가 내 모습을 비춰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잘 다듬어졌을 때에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위선이 사라지고 우리의 선행에서 계산이 사라지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고 아름다울수록,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6.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문제와 아픔을 맛보신 것은, 우리의 형편을 이해하고 용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굿간에서 출생하셨고, 헤롯의 위협을 피해 갓난 피 덩어리의 상태로 애급에 피난을 가셨고, 갈릴리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시면서 병들고 가난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자들의 형편을 남김없이 경험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외로웠습니다. 예수님도 차별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차가운 배신의 아픔이며, 밤이 새도록 눈물과 통곡의 기도 시간도 맛보셨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33년 이라는 그 짧은 생애를 통해 다 맛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원하지 않는 문제에 빠져 고통해야만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간에 고난에 대한 세 가지의 권면을 드리겠습니다.

7. 첫째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항상 선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 스스로는 나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잘 알지 못합니다.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싫고 나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너무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백하기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고 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음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창50:20)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고백이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 자녀된 자들의 믿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문제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 분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모든 문제와 고난과 질병에서 건져 주시며,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줄 믿습니다.

8.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살전 5: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했습니다.
지금 숨 쉬기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내 문제가 나를 짓누르는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문제와 고통만 바라보면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나를 다듬어 가시고, 나를 더욱 아름답고 보배로운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 볼 때에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안이숙 여사는 20살 때, 일본으로부터 신사참배 강요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진 고문과 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그녀는 이런 고통과 박해 속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운 승리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좁은 이길 진리의 길, 주님가신 그 옛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하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주신 소명 이루소서.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주님께 절했기에 더 이상 일본 순사에게 절할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며, 나는 주님을 사랑했기에 다른 것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신앙의 박해로 인한 영혼의 고통을 주님을 사랑으로 승화시켰고,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의 고통이 있었기에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도 찬송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감사할 수 있으며,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 있다할지라도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을 빼앗거나 흔들 주 없는 줄 믿습니다.

9. 셋째로, 믿음의 싸움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할 때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사도야고보는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 고 했습니다.
안산 제일교회의 고훈 목사님이 올 봄에 은퇴하셨는데, 그 분은 폐결핵 말기 환자였습니다.
자살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고, 어떤 때는 겁이 나서 포기도 했지만, 어느 권사님의 전도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자살 인생이 변하여 살자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몸이 연약했지만 주님을 위해서 뜨겁게 불같이 살았더니 계속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버림받은 폐병 환자였지만, 주님 만나고 주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갔더니 남은 평생을 통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휼륭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싸인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인본주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본주의 신앙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인지 그곳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미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도리어 복 받은 사람이 되며, 이미 새 사람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가장 소중한 축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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