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3.하나님이 원하시는 것(호세아6:1-11)

[성경본문] 호세아6:1-11개역개정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호세아6:1-11/2017.7.23.오전)


1. 성경을 보면 영생에 관한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가장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부분이지만, 세상 사람들도 영생에 관해서는 많은 의문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젊어서는 영생이니 내세이니 천국이나 지옥에 관해서 들어도 별로 관심이 없다가, 나이 들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과연 내가 죽으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가,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나를 기다릴 것인가를 생각합니다.그렇다면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물론 영생이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을 의미하지만, 만일 그 생명이 천국에서 영생한다면 이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반대로 지옥에서 죽음을 맞보지 않고 영생한다면 이것보다 더 난감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이 영생에 대하여 예상이외의 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17:3절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라 했습니다.
영생을 말하면서 영원한 생명이나 천국을 말하지 않고, 간단하게 표현하기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지식적인 만족을 얻거나 다른 생각이 있었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마치 영생이 어떤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안다는 이 말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지 못하고는 믿을 수 없으며 신앙의 첫 걸음도 뗄 수 없으며, 알지 못하고는 복잡한 세상을 바로 살아갈 수도 없으며, 알지 못하면 도태되고 무능한 인생으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알면 아는 만큼 길이 열리고 방법이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 문제는 우리가 매일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데, 이 하나님 아버지 곧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성도들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 분에 대하여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면 성경 말씀에 기초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우리 인생의 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이 알아가는 과정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그 속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이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선지자 호세아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3절에 보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힘써 알자」 고 했는데, 이것은 단순하게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부가 인격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하나가 될 때, 그래서 서로를 안다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면서도 도대체 남편이나 아내의 속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와야 합니까? 한 집에 부부로 살면서도 서로 간에 비밀이 많고 상대방이 건드릴 수 없는 숨은 비밀의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부부를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들고, 도리어 많은 의문과 갈등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관계를 미워하십니다.

3.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이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호세아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서 부부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멜이라는 창녀를 데려다가 결혼하여 가정을 만들고 자식을 낳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탕한 고멜은 진실한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간음을 일삼으며 그런 부끄러운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참 남편인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우상을 숭배하면서 온갖 부도덕함에 빠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한 선지자의 외침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얼마나 많은 죄와 허물로 더럽혀졌는지는 묻지도 조사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여전히 사랑받는 신부로 맞이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오늘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처럼 노년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하고 더러워졌는지 몰라서 돌아오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본문 7-10절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행한 온갖 악행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아담처럼 자기 욕심 때문에 약속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반역했다는 것은 나를 속였다는 말입니다.
신랑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만 할 신부의 정조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9절에 보니 제사장들조차도 떼강도가 되어서 살인하고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씀 중심의 신실한 제사장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용 제사장들, 즉 소명 의식이 없이 밥벌이 하는 직업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말하는 가증한 일이란, 치를 떨게 할 만큼 끔찍한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10절을 전체적인 느낌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6절에 보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첫째로,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나 충성을 의미하면서, 그 안에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이 제사가 거부하시거나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제사보다 우선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는 제사, 은혜에 감격하는 뜨거움이 없는 그런 형식적인 제사보다는 먼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것은 이미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으로, 인간의 지, 정, 의를 동원한 체험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번제도 기뻐하시지만, 이것보다 우선적으로 더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지식이 아닌 삶을 통하여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 하면서 도중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나를 사랑하시는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의 상황에 부딪히다보면 신앙도 한계점을 느끼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가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거룩하신 뜻이 무엇이며 내가 장차 누릴 영광이 무엇인지 안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어떤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두 가지 문제 때문입니다.
먼저 이것을 지식적인 문제로 본다면 제가 무식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하는데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일반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여러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지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만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며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 (고전2:14) 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그 영혼이 잠을 자고 있던지, 치명적인 현상으로 아예 죽은 상태이면 설교 듣기가 곤란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핵심입니다.
본문에서, 호세아 전체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더러운 것, 병든 것, 찢긴 것, 부족한 것 까지 다 씻기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채워주셔서 여전히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부로 사랑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선지자의 삶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면서 까지 왜 이렇게 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6.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화를 내시고 징계를 내리실 때는 언제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지 못할 때입니다.
즉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자녀면 자녀답게 살아야 하고, 부모는 부모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몇몇 나라의 경우를 보면 무슨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나 보다 못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위에 올라 앉아 있으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윗사람에 대해서 적어도 존경심이 들고 보고 들으면 배울 것이 있어야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나 보다 못한 사람이 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을 받았으면 남들보다 더 열심을 내고 더 진실하며 사랑 가운데 행할 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직분을 받으면 남들보다 몇 배로 더 열심을 내기 않으면 도리어 교회를 망치는 주범이 되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것이나 헌금생활도 남들처럼 하면 사람들한테 무시당합니다.
기도하는 것이나 말씀에 힘이 없으면 그 사람을 세운 지도자까지 욕을 먹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목사답고 장로는 장로답고 집사는 집사다워야 교회가 힘을 얻고 신앙생활도 재미가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자랑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직분을 받으면 달라져야 합니다. 남들보다 몇 배로 해야 합니다.
신기한 것은 몇 배로 하면 하는 만큼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7. 하나님은 우리가 부끄럽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벧전2:9) 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연약하게 부끄럽게 치사하게 비굴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또한 그분의 신부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닫고 속히 돌아와서 그 모습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는 것입니다.
그 분이 이렇게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누구라도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로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성장하고 충만함으로, 지금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영원히 거하는 그 분의 자녀로서 복을 받고, 그 분의 신부로서 사랑을 입으며, 그 분의 백성으로 능력과 승리로 충만히 채움을 입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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