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30.악으로 가득찬 세상(호세아7:1-7)

[성경본문] 호세아7:1-7개역개정

1.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2.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3.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

4.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5.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과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6.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꽃 같도다

7.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제공: 대한성서공회

악으로 가득찬 세상(호세아7:1-7/2017.7.30.오전)
1. 세상은 아침에 눈만 뜨면 제일 먼저 접하는 뉴스가 일기예보와 더불어 테러와 각종 범죄 사건들입니다.
그것도 세월이 가면서 범죄의 흉포함은 일반 사람들의 감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면서도, 그 끝 모르는 범죄의 잔인성과 광포는 증가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작년 7월26일, 가나가와껜 사가미하라시(神奈川県相模原市)에 있는 지적장애자 시설인 쯔꾸이야마유리엔(津久井やまゆり園)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19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안이 철저하여 안전하다고 생각되던 그곳에서 그것도 대량의 희생자를 낸 것도 충격이지만, 이 사건의 범행자가 이곳에서 일했던 아주 성실하고 친절한 26살의 젊은 남성이었다는 사실과, 범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자에 대한 광기가, 이 일본사회의 바닥에 흐르고 있는 장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가운 적대감을 드러내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 때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칼로 여러 곳을 찔려서 결국 과다한 출혈로 죽었다는 것은, 장애자에 대한 범인의 증오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도된 언론에 의하면, 일본 사회의 보이지 않는 정서적 밑바닥에는 생산능력이 없는 인간은 사회의 적이요 짐이며 장애적 요소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1년이 지난 지금도 희생자들의 이름조차도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결론이 나지 않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먼저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일상생활에서는 늘 친절하고 만나면 반가움을 표시하며, 나보다 연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런 표면적인 감정 뒤에,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곳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어떤 감정, 어떤 생각이 숨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믿음으로 산다고 늘 다짐하면 서도 정작 믿음이 요구되는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내면의 세계에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으며 어떤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첫 머리에,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할 때에" 라고 하면서 호세아 7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불쌍한 이스라엘을 다시 거룩한 신부로, 복 받은 언약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본문을 살펴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암 환자를 만나서 진찰을 해 보니 간단한 수술을 통해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환자를 수술대에 올려 환부를 갈라보니 이미 온 몸에 암 세포가 퍼진 것입니다.
실제로 오래 전에 제가 잘 아는 분이 그렇게 의사도 감당 못할 상황에 직면하여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하나님이 보시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의사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보니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것입니다.
7장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 4번 나오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을 다 간음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마치 빵을 굽는 불에 달궈진 화덕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언제든지 눈만 뜨면 범죄를 위해서는 준비되어진 뜨겁게 달궈진 화덕처럼 늘 정욕에 불타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는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한 쪽은 타고 다른 한 쪽은 설익은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위선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전에서는 거룩한 모습으로, 그러나 세상에 나가면 우상숭배는 기본이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하고 더러워진 모습을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11절에는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능력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힘없고 자기처럼 어리석은 세상 권력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는 한 번 쏘면 활시위를 떠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속이는 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게 제 마음대로 행동함으로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이스라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3. 이러한 이스라엘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한 마디로 무법천지요 생지옥입니다.
법치 국가에서 법이 통치의 힘을 잃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민심이 흉흉해지고 사방에서 도적떼가 들끓고 경제가 무너지고 간신 모리배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를 치면서 마지막에는 내란으로 치닫게 됩니다.
실제로 여로보암 2세가 죽은 기원전 753년부터 북방의 앗수르의 손에 이스라엘이 무너지기까지 30년간에, 무려 6명의 왕이 바뀌면서 그 가운데 4번은 전부 반란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그 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 살던 이스라엘의 경제가 순식간에 파탄이 나면서 혼란을 거듭하다가 영영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본문 2절에 보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낱낱이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3) 고 하였고, 6절에는 그들의 마음이 간교하고 분노는 잠을 잘 때에만 잠시 멈추었다고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무엇이든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도중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길이 있고 돌이킬 기회는 있습니다.
그러나 악행이나 부도덕이 지나치게 극심하면 돌아갈 길이 없고 돌이킬 기회를 잃게 마련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도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낱낱이 기억하고 계시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악하다고 생각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행동이나 생각이 한결같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못되었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치료하시고자 했지만, 이스라엘은 뉘우칠 줄 몰랐습니다.
도리어 뻔뻔스럽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경건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하여 뚱딴지같은 소리 하지 말고 잠잠히 계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한 번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다 이렇게 됩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남는 것은 어리석음과 어두움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니 은혜는 사라지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는 인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니 제일 먼저 내 영혼에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니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데 어떻게 자신을 돌아보며 바로 볼 수가 있겠습니까?
도리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 온갖 죄를 더하면서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곳 까지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남들은 잘못되어도 나는 올바르고, 심지어 나라를, 회사를 망치는 사람들조차도 나는 의롭고 정당하고 나라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 전도서12:14절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명분과 구호가 아무리 그럴듯하고, 우리의 구실이나 명분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그 은밀한 부분, 곧 우리의 속 깊은 곳 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5. 호세아 7장은 왕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지도자들의 죄악을 집중적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30년의 세월 동안에 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왕을 위태롭게 만들고 왕을 모반하고 죽이는 일에 가담하며 그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실례로 본문 5절을 보면, 왕의 날이란 대관식이나 왕의 생일을 말하는데, 이런 날에는 당연히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시고 왕가를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혜를 구해야 하는 날인데, 그날에 지도자들이 완전히 술 취해서 그 다음날에 병이 날 정도로 무절제하게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왕을 보호하고 누가 왕을 지혜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와 공의를 일삼아야 할 이 사람들이 뻔한 거짓말과 거짓 칭찬으로 왕의 마음을 사려고 경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본문 7절 마지막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이 마치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갈라놓고 사방에 퍼진 암 덩어리로 인하여 어찌할 수 없어서 도로 덮어 꿰매 버리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온갖 정치적인 격변과 재난과 재앙이 쓰나미처럼 이스라엘을 덮쳐도, 불법이 판을 치는데도 그 누구 한 사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징조입니까? 멸망의 징조요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의 징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본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떨어진다고 해도, 일본에 있는 7,900여개의 교회가 하나님에 회개하고 살려달라고 부르짖는다면, 본문 1절에 기록된대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과 이 민족을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6. 교회가 어려움을 당해도 교회 안에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소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그 어떤 교회라도 소망이 있고 교회로서의 사명과 기능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식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만나도 다시 살아나고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줄 믿습니다.
이것은 내 나라와 내 민족도 마찬가지고 여러분이 경영하는 사업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창18장에 보면,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성의 그 죄악의 관영함을 보시고 불과 유황으로 엎으시려 할 때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을 의인 50명에서 나중에는 10명에 까지 축소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19:29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망하게 되었다고 하여도 그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사는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4월에 이어서 이번 8월6일부터 또 다시 일주일간 함께 모여서 집중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 다니엘 기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서 모드 질병이 물러가고 불신앙과 우상세력이 물러가고, 전도의 문이 열리고 가정이 복음화되고 자녀들이 교회로 돌아오며, 교회가 새 힘을 얻는 줄 믿습니다.

7.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고통 중에도 부르짖을 줄 모르는 이스라엘이 문제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서 점점 기도의 소리가 약해지고 멀어지고, 그래서 우리의 이 시대도 장차 이스라엘처럼 고통 중에서 혼란과 환란 중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올 것인지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혹시 지금 내안에 깊은 곳에는 지금까지 기도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면 기도해도 소용없더라는 그런 잘못된 마귀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내 영혼을 흔들만한 그런 간절한 기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 불신으로 뒤덮인 이 세상,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죄악으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진 소돔 고모라 같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요구는 무엇입니까?
1절에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처럼, 하나님은 이 시대를 치료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치료의 역사를 7절에 기록된대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에 빠져 있거나 죄악에 사로잡혀 있거나 그 어떤 상황에 묶여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8.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 때에 거짓선지자들의 모함에 빠져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에게 말씀을 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라"(렘33:6) 는 약속입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33:2) 라고 했습니다.
악으로 가득찬 세상, 죄악으로 고통과 혼란 속에 빠진 세상이라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이 땅에 자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회개하는 그런 기도가 없어서 망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때로 족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깨어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혜를 사모하여 부르짖는 그런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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