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12.하나님 감사합니다(신명기 16:9-17)

[성경본문] 신명기16:9-17개역개정

9.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13.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 감사합니다(신명기 16:9-17/2015.7.12.오전)
1.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반드시 법이 있고, 질서가 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동차가 생기면서 도로 교통법이 생겼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산에 관한 법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법과 질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의 질서를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사회나 작은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이 모여서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효율적인 운영이나 관리를 위해서 조례를 만들고 회칙 같은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왜 귀찮고 복잡하게 이런 법이나 규제를 만들고 있습니까?
법이 사람의 사회생활이나 집단생활을 안전하고 만들고, 집단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는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주고, 동시에 의무를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법치 국가에서 우리의 권리나 인권, 이익이나 혹은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의 법이란 늘 그랬지만 강한 자 앞에는 그 법이 찢김을 당하고, 약자들에게는 더욱 험하고 고통스런 삶을 강요하게 만드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만나 법에 호소를 해도 법정의 싸움은 결국 유전무죄, 즉 돈만 있으면 있는 죄도 없어지고, 돈이 없으면 없는 죄도 생기는 것이 법의 현실입이다.
왜 이런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사람들이, 특히 법을 지키는 자들이 법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이런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과 약속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과 축복에 대한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지켜야만 하는 조항이 들어 있고, 이 조항들이 지켜질 때 이 법은 온전한 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법과 언약의 대상으로서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의 선악과를 두고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법이 있었고, 모세의 십계명에서도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이 성문화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법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간, 즉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와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어울리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법이나 특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은 반드시 계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방을 위해서 약속한대로 지켜 행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법을 만든 쪽에서나 법을 받은 쪽에서나 함께 만족하는 것이 법의 정신입니다.

3. 우리가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감사절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맥추감사절이고, 두 번째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칠칠절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로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지나고 7주를 보낸 그 다음날인 50일째 되는 날에 백성들이 보리를 베어 곡간에 들이는 추수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해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로서, 이 날을 가리켜 초실절, 혹은 맥추절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날에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을 선언하고 계시는데, 오늘 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복의 내용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향해 축복을 선언하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니, "너는 애굽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규례란 곧 하나님을 향한 언약 백성들의 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해야만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힘서 감사하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를 죄악의 영적 애굽에서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애굽에서 구원받을 수 없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며 축복해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 또한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도 없는 모든 저주와 고통과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히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말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사람은 내가 누구며 어떻게 구원받았으며, 내가 하나님께 입은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5. 둘째는, 우리를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으로서 복된 기업과 영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보다 뛰어난 존재였기 때문에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보잘 것이 없는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로 하나님 없이는 소망이 없는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신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 하나님처럼 강하고 위대한 신이 어디에 있는가? 오직 여호와는 유일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국가의 위아래로는 가장 강대한 민족과 나라들이 있었고, 그들의 사방에는 이스라엘 보다 약한 민족이나 족속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중동을 가리켜 세계의 화약고라고 부를 정도로 치열하고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 어려운 곳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두셨고, 수 천년 동안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하시며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와 족속들은 다 망했지만, 언약의 백성들은 지금도 망하기는커녕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복되고 강한 나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위에 대한민국 보다 약한 나라나 민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늘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수도 없이 사방으로 침노를 당하고 짓밟혔지만 지금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5천년 동안 이어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 위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민족이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내나라 내 민족을 축복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6. 셋째는,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영원한 하늘나라에 이르기 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3:22절에 보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많은 어려움과 감당할 수 없는 시험과 문제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말씀을 통하여 그 관계가 성립이 되며, 이 관계가 매일의 예배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정한 섬김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생명을 걸면 그 예배를 통하여 생명의 가치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지 못하면 우리의 심령은 죽은 심령이 되지만, 우리가 이 예배를 위해 생명을 걸고 예배하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고, 모든 문제도 해결 받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과 생명을 십자가 제단에서 희생하셨고, 그 십자가에서 참 예배의 본을 보여 주셨고, 동시에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7. 인간이 받아 누리는 온전한 축복과 각양 좋은 은사와 능력들이 다 어디서 옵니까?
약1:17절에 보니,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온" 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소망이나 우리의 온갖 좋은 것들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빛들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로부터 위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낙심하여 머리를 숙이지 말고, 얼굴을 위로 들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아버지의 보좌가 있는 위를 바라볼 때 살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위를 바라볼 때, 우리의 세상의 사슬들인, 정욕과 쾌락과 욕심과 투기, 미움과 분노가 물러가고 은혜와 평강과 기쁨과 감사로 우리 심령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도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잘되고, 사업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잘되며, 자녀도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 주실 때 형통한 길로 나아가는 줄 믿습니다.

8.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3절에 보니,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애굽의 노예라는 비참한 운명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인생, 지렁이 같은 인생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신 여호와의 능하신 손을 기억하고 감사하여 그 분이 내게 행하신 귀한 일들을 기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죄로 죽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살리신 하나님,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주신 하나님, 지금도 우리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도리인 줄 믿습니다.
1-8절에 기록된 유월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수많은 양들이 피를 흘려 죽은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양들이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인간들인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양심적인 신학자인 본훼퍼의 말대로, 지금의 예수쟁이들이 이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싼 것으로, 싸구려 은혜로 만들고 말았다고 탄식했습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니 40년의 광야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9. 히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무슨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더 크고 놀라운 것들을 사모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120년간이나 방주를 준비할 수 있었고, 아브라함도 100살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감사절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해야 합니다.
첫째로, 주신 것에 감사함으로(10절).
나의 구원, 나의 나 된 것, 성령의 인도하심, 가정과 자녀, 기업들과 삶의 현장에 대하여 감사할 것입니다.
둘째로,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주실 줄 믿고 감사함으로(15절).
더 많은 기도의 응답, 더 큰 축복, 더 큰 능력, 영원한 기업, 교회가 받은 4대 목표를 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10절에 보니,「네게 복을 주신 대로」라고 하였습니다.
많이 받았으면 많이 감사하는 것이고, 적게 받았으면 앞으로 더 많이 받을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고, 고난 중에 있으면 고난 중에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그 은혜를 따라 감사하는 것이다.
셋째로, 무엇보다도 15절에 보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라" 고 하였으니 기쁨마음으로 드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하고, 더 많은 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축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베푸시고, 하나님만이 사람을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는 곧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그 분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명령에 따르는 복종과 충성의 상징입니다.

무더운 이 여름을 지나는 동안에 우리의 산업과 가정과 자녀들 위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이 소낙비같이, 폭포수같이 쏟아지고 넘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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