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23.변화되어야 합니다(로마서12:1-2)

[성경본문] 로마서12:1-2개역개정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변화되어야 합니다(로마서12:1-2/2015.8.23.오전)
1. 저는 어제, 성서대학교에서 보내온 월간지 코코스의 기사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2015년 6월 초부터 시작된 메르스(MERS,중동호홉기중후군 ) 사태로 나라 전체가 큰 홍역을 치루고 있을 때, 병원들은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병원은 북새통을 이루고 담당 의료진들이 밤을 새우며 메르스와 싸울 때, 병원에 실습생들을 내 보낸 간호대학들은 학생들이 감염될까봐 하나 둘 실습팀을 철수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성서대학교의 간호학과 학우들이 나가 있는 병원에 남아 있는 실습생은 우리 학우들뿐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성서대학생들은 왜 안 나가느냐고 물을 지경이었고, 학교에는 학부모님들이 왜 철수하지 않느냐는 문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때 교수님들의 고민은 깊어 갔지만,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간호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질병이 두려우니 병원에서 나오라고 한다면, 그것은 간호교육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학부모님들에게는 우리가 잘 대비하여 내 보내니 염려말라고 안심시켜 드렸고, 학생들은 실습을 끝까지 다 마치고 온전한 몸으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메르스 광풍도 사라진 지금, 그동안 겉으로는 대범한척했지만, 그동안 마음은 항상 조마조마 했다고 한 교수님은 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우리도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겁하지 않았습니다.(성서대학교 2015년 8월 월간지 코코스 3페이지 KBU Story에서 발췌)
메르스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과 그 자리를 지키며 싸우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의 차이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고 계시는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변화란 그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 모든 성장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화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평생을 가도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변화란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내 삶을 바꾸고 싶다면 제일 먼저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내 자신」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 생각과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바꾸려면, 제일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회개라는 과정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회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메타노이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나 관점을 바꾸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을 때, 그 이전의 우리 자신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고, 생각하는 관점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미운 사람이 용서가 잘 안되었는데, 용서할 뿐 아니라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손해보고, 패배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분을 풀 수 없었는데, 그래서 잠도 안오고 평안함이 없었는데, 이제는 용서가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인생에 욕심과 자랑이 많았는데 이제는 다 어리석은 짓이고 못난 짓인 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겸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화를 내는 것입니까?
내 감정에 분노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까?
날 화 나도록 만드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감정을 가져다주고, 그 감정은 마침내 행동이 됩니다.
제일 먼저 내 행동이나 감정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 생각을 주님께 맞춰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시는 주님은 요8:32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씀, 즉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는 곳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내 생각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4. 그 예를 들자면 시편 1:1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 있는 사람이란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요, 그 결과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형통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생각을 먼저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고,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고, 그 사람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과연 생각이 달라진다고 정말 사람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인생도 말씀으로 거듭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골3: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하였습니다.

5.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믿고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나의 기도야말로, 내가 하나님을 입술로만 고백하는지, 온몸으로 고백하고 의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점잖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얍복강 가에 서 있던 야곱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도 뼈가 부러져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쉽사리 기도의 생활에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유는 그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 이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6. 오늘 본문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잘못된 곳에 묶여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변화를 받으라고 하셨습니까? 변화는 하나님 자녀가 누리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자신은 우리의 모든 것을 스스로가 원하는대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일 그 이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런 환경에 대한 나의 생각까지는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경우가 가장 좋은 예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은 환란을 겪은 사람인데, 극심한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리어 이 환란과 고통 속에서, 인내를 낳음으로 성숙한 인격과 성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온 환란이나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 유익하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기근을 면하려고 양식을 사러 애급에 내려온 형들에게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창50:20)다고 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했습니다. 왜?
그의 이 모든 고백은 생각의 변화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고난과 실패와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그의 생각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가정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니, 나는 변화시킬 수 없지만 하나님은 변화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7. 사실 우리가 많은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고, 변화되지 못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태초부터 우리를 향하신 원래의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수많은 변화를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시키는 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란 말은, 특별한 권세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보다 더 놀라운 변화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분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자신을 변화 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죄의 자녀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사람이었던 우리를 천국 시민으로, 욕심과 허영으로 가득차 있었던 우리를 거룩과 겸손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변화처럼,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8. 이러한 말씀을 듣고도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변화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어두운 세상에 촛불이 아니라, 광명의 빛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무엇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셨습니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주님은 이 믿음을 붙잡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믿는 우리가 세상 보다 먼저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둘째는, 변화된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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