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28.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생활(히브리서13:16-19)
[성경본문] 히브리서13:16-19개역개정
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생활(히브리서13:16-19/2015.6.28.오전)
1. 하루를 자고 나면 전 세계로부터 많은 사건과 문제를 다루는 뉴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8일 미국의 사우스케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 있는 이 매뉴얼 아프리칸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끔찍한 사건이었고, 동시에 고통 하는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백인 우월주의의 사상을 가진 21살의 청년이 이 교회의 수요일 성경공부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여 성도 9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9년의 역사를 가진 이 교회는, 미국사회에서 흑인 인권운동과 흑인 교회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가진 교회라고 하는데 이렇게 참혹한 사건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 놀라게 만드는 것은 용의자인 딜렌 로프를 약식 재판하는 자리에서 가족을 잃은 이 교회의 성도들은 선언하기를, 너는 우리에게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 갔지만 우리는 증오가 아닌 용서를 베풀며 너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희생자들이 선택한 것은 증오와 복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준 것입니다.
이 교회에 추도 예배로 모인 사람들은 다 함께,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인 목회자가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그는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의 와중에 동인, 동신이라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을 잃고도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렸습니다.
또한 아들을 죽인 원수 안재선의 구명운동을 펼쳐서 사형선고 받아 죽을 그를 살려서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고, 신학공부를 시켜 살인자며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목사가 되게 했습니다.
결국 손양원 목사님은 48세의 일기로 공산당의 손에 순교 당하고 말았지만, 우리는 그를 가리켜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2.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과연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받은 만큼, 경험하는 만큼, 배운 만큼 자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 사랑과 그 은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손양원 목사님처럼, 이 메뉴얼 아프리칸 교회의 성도들처럼 행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자기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체험하고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몸 된 지상의 교회만이 유일한 방법이요 해결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히브리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특히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고 하면서, 하나님은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 (6:10) 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을 따라 성도들을 섬기며 선을 행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은 교회를 통해서 배우고 훈련받고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만이 이 자상에 남아 있는 거룩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무사하게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주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가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입니까?
16절에 보면,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서로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물질을 연상할 수 있지만,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 나눔이 단순하게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눈다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코이노니아」에서 나온 커뮤니케이터(Communicate)말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 뿐만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사상이나, 지식이나, 각종 정보 등을 전달하고, 나누고, 서로 교통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고, 옛날을 아날로그 시대라고 하는데, 이 디지털이라는 것의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한 가지의 정보나 어떤 가치를 간단한 방법으로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신구약 성경책이 도서관에 한 권 뿐이라면 그것을 한 사람이 빌려 가면, 다음 사람은 빌려간 사람이 되돌려 줄 때 까지 기다려야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서관에서 한 사람이 성경을 빌려 가면 더 이상 도서관에는 성경이 없습니다.
이것이 아날로그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디지털의 경우는 무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성경을 빌려 보거나 판매를 통해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정보나 지식이나 어떤 물질을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복음을 가지고 전도하는 우리에게는 이 커뮤니케이터가 너무도 중요한 요소가 된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여 그것을 나누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이노니아는 휄로우쉽 입니다. 연합, 공동체를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나누고 교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볼 때, 많은 시대를 통해 이 코이노니아가 제한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권력으로 인한 방해가 있었으며, 때로는 사상과 삶의 유행으로 인한 방해도 받았으며, 도덕적인 타락이 가져다주는 방해 또한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코이노니아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4. 이러한 나눔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제사는 희생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한국에서 온 선교팀의 청년들은 우리 교인들이 함께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나누는 것을 경험하였고, 저들 또한 우리와 더불어 함께 나눔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개인의 소유를 통해 기쁨과 만족을 얻는 곳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 교회라는 공동체는 소유가 아닌 도리어 다른 사람들과 나눔을 통해 기쁨을 맛보고, 만족을 얻는 곳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고,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도 나눌 때,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들이 세상 한 가운데서 서로 간에 나눔으로 인하여 복음은 더욱 확장되었고, 나눔으로 인해 저들이 만난 환란과 핍박을 이겨 내었습니다.
하나님 만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환란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쁨이 있었고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이생과 내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빌립보 감옥 안에 갇혀 있을 때 한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선언한 그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마치 주님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복음을,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병든 사람에게는 치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물질을, 구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주셨듯이, 바울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기 원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나눔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나누고 희생하고 섬기는 자세가 없이는 그 사람을 가리켜 크리스천이나 혹은 성도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쁨을 공유하고, 물질을 나누고, 마침내 생명까지 나누는 것이 기독교요 주님의 제자된 자의 삶인 줄 믿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전해지는 지구촌의 모든 곳에는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전도자들의 생명의 희생이 있었고, 성도들의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관해서 말하면서, 17절에 가서는 지도자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 곧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되, 마치 자기 일처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누가 내 육신의 일을 염려해 줍니까?
아마 부모나 형제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친한 친구나 친척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우리의 영혼을 위해 염려하고, 누가 우리 영혼을 위해 살찐 꼴로 먹여 주는 자가 있으며, 그 위에 누가 우리 육신의 일 때문에 고민해 주는 자가 있습니까?
목회자 아니고는 이 모든 일을 할 사람이 세상에는 전연 없습니다.
목회자나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은 여러분의 영혼과 육신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공급하기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지도자들, 특히 목회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 문제까지도 염려하고, 위해 기도하면서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목회자는 성도들의 영혼과 육신문제의 試金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와 목회자에 대한 태도에 따라 여러분의 삶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피 값을 치루셨고, 또한 십자가를 통해서 세우신 자신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회자는 성령이 기름 부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우신 수많은 영혼들을 양육하는 목자와 같은 존재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6. 이런 지도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7절에 보니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이 이 일을 기쁨으로 하고, 근심으로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열심을 내고, 내 혼자 아무리 진실하다고 하여도, 지도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근심을 끼치거나, 그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그것이 지도자에게 근심이 되고, 걱정거리가 되게 하면 본문의말씀 그대로 성도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부터라도 말씀과 명령에 순종할 때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진통제를 개발하고 의학계에 큰 공헌을 세운 심프슨 교수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 하나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그 많은 의학의 발명, 발견으로 인류에 큰 공헌을 하셨는데, 그것들 가운데 통해 가장 귀한 발견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 첫째는 내가 하나님 앞에 마땅히 죽어야 할 영원한 죄인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발견한 것이요, 이로 인해 내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에게는 원망이나 불평이나 시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기쁨과 감사의 순종만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이 말씀을 해석해 보면, 우리의 마음을 유연하게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이 강퍅하지 아니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목회자는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데는 전문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어떻게 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영원히 잘되는 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목회자는 물론이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7.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아는 것은 많은데 행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면 서로가 복되고 행복하고 기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의 종을 잘 섬기면 복 받는 다는 것도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문제는 잘 알면서도 삶 속에서 그게 잘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행의 필수와 전제 조건은 단 한 가지 곧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관해서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고 하면서, 심지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구나” (19) 고 하며 탁식했습니다.
나는 선행을 하기 원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선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무엇을 부탁했습니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선행도 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참 능력은 전부 위로부터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이 근심 걱정하지 않고 영혼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선하고 지혜롭게 사역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합심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느 유대두 사람이 랍비에게 상담을 하러 갔는데, 부자는 들어가서 상담하는데 무려 1시간 이상 걸렸는데, 가난한 자기는 5분 밖에 상담을 해 주지 않아서 이 가난한 사람이 화나났습니다.
그래서 랍비에게 마구 따졌더니 그 랍비가 하는 말이, 부자는 자신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1시간이나 걸렸지만, 당신은 스스로가 가난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8.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성도와 그렇지 못한 성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선행의 능력을 받아 선을 행하는데 장애가 없으며, 지도자를 섬겨야 하는 이유를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늘 시험거리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기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생활의 일부가 되고, 마침내 기도가 우리 생활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 안 하면 반드시 시험이 오고, 그 시험을 이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선행과 의로운 믿음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무엇보다도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시간을 아끼지 말고 더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회 생활은 서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기도를 나누고, 말씀과 구원의 도리를 나누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기도로 돕고, 마음으로 함께 염려하면서, 이 교회 안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 나는 제사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