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24.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누가복음 16:19-25)
[성경본문] 누가복음16:19-25개역개정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누가복음 16:19-25/2015.5.24.오전)
1. 오늘 본문의 부자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누리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면 그는 그 당시에는 왕과 귀족들만이 입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걸쳤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자색 옷은 시가로 계산하면 금보다 두 배의 값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자면 최고의 브랜드로 몸에 걸쳤습니다.
요즘도 보면 시장에 나가면 1장에 1천 엔 하는 셔츠가 있는가 하면, 정장 한 벌 값을 넘어가는 고가의 셔츠도 있습니다.
시계도 2-3천 엔 하는 싸구려 시계도 있지만, 2-3천만 엔 하는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나는 시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매일 자기 육신이 만족할 만큼 즐기면서 소위 말해서 흥청망청 살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놓고, 사업 동업자들을 불러 놓고 자신의 부와 능력을 과시하며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
한 마디로 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인정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25절에 보니,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왕이 부럽지 않을 만큼의 최고의 것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임금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살았지만 그 삶의 결과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2.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인생인지는 몰라도 성경은 이러한 삶에 대하여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약5:5절에 말하기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도 보면,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사 47:8-9)고 했습니다.
이런 성경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왜 부자가, 돈이 많은 것이 잘못이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자의 문제는 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잘못되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을 몰랐고, 둘째는,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서, 인생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을 몰랐으니 인생이 죽으면 가야 할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 대한한국 사람들이 너나없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왜 어려운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머리가 나빠서 고생합니까? 아니면 돈이 없어서 고생합니까? 그것도 아니면 게을러서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어렵고 고생하는 것은 조건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3. 그 사실이 본문 20절 이하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이 왕 같은 부자의 코앞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의 삶이 있었습니다.
나사로라 불리는 사람으로, 이 부잣집의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 나사로의 삶은 병들었고 배고프고, 덥고 춥고 고통스러웠습니다.
21절을 보면, 한 마디로 거지의 삶이었고, 육신의 질병 때문에 거지 중에서도 더욱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피 고름이 나오는 아픈 상처를 개들이 와서 핥아 주어야 할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개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감사하게도 나사로는 비록 거지 신세요 병든 몸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거지로 구걸하며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살고 있으니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없으니 참고 살아야 하고, 배고프고 병들어 지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버려졌다고 했으니 혹시 어려서부터 부모 형제로부터 버림을 당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림당한 인생이 무엇을 의지해서 살고 있었습니까?
부잣집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우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나사로를 보면서 거지로 산 것은 불쌍하지만,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으니, 다시 말해서 천국에 들어갔으니 잘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사로처럼 사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 성경에 보면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일관되게 흘러가고 있는 중심적 가치관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신"(신7:9)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신"(7:13)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동안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고(신7:4),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감으로 더욱 분명해 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자녀로서의 삶의 기본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 땅에 사는 것도, 일본 사람들의 경제적인 찌꺼기나 먹고 살라고 우리를 이곳에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일본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움직여서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를 보이라고 우리를 일본에 보내신 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애급에 노예로 팔러 갔을 때, 하나님이 먹을 것이 없어 애급에 붙어살고, 그 사람들 덕분에 먹고 살라고 보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급에 보내신 목적은 애급의 총리로 삼으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흉년을 만난 전 세계를 먹여 살려서, 그곳에서 요셉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보여 주며 살라고 보낸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고 그런 능력으로 충만한 요셉을 만드시려고 여러 가지로 시험도 하시고 어려운 일도 만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나사로의 삶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모범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을 정도면 세상에서도 거지 소리 듣지 않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본문의 핵심은 부잣집 앞에서 온갖 고생을 하더라도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이왕에 세상에 왔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인생에게는 복이 되는 삶이 더 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믿음의 능력으로 사용하여, 우상숭배 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 우리가 나사로 같이 병신처럼 부잣집 앞에서 구걸하면서 고생해야 합니까?
행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가라고 했습니다.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좁은 일본 땅도 벗어나지 못하고 나사로처럼 고생합니까?
21세기의 최대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경제문제도, 윤리문제도, 핵확산이나 과격 이슬람 세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불신자는 하나님 만나지 못해서 지옥 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지 못해서 고생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곧 교인이나 세상 사람이나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자의 삶이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는, 사도들처럼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넘어진 자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먹이는 것입니다. 절대로 나사로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벳세다 광야의 오병이어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가나 혼인잔치의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6. 둘째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전파되고,
나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나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악한 일을 계획하고 그곳에 마음을 쏟으면 악한 기회가 찾아옵니다.
선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계획하고 그곳에 마음을 쏟으면 돕는 손길이 나타납니다.
하물며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바로 살려고 몸부림치면 왜 살아계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 받은 여호수아는 받은 사명 앞에서 두려웠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수1:5-6) 고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면 너의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꾸 낙심이 되고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 때 마다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명을 가지고 일어서면,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전무후무한 축복과 능력으로 채우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인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가, 육신으로 부한 자는 육신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영적으로 강한 자는 영적으로 약한 자를 도와주면서, 서로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갈 때,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하나가 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 부자와 거지는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서로 격리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7.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각각 성도들에게 사명과 각양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고생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사로처럼 자기 영혼만 구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모든 사람들을 도우며, 모든 선한 일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어린 소년으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도 뜻을 정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밥 잘 먹고 건강하고 출세하고 돈 버는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사자 굴에 집어넣어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의 도우심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시종일관 지켜보는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다리오 왕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려 두려워 할지니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 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단6:26-27) 이라 고백했습니다.
8. 다리오 왕은 어떤 문제와 난관을 만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다니엘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사자 굴에서 사자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니엘을 모함한 사람들이 다 사자의 밥이 되었고, 다니엘은 그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일본 땅에서 고생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꾀부리고, 핑계하고, 변명하면서 비겁하게 살았던 것은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이며 주의 은혜와 은사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 요셉과 여호수아와 다니엘을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일본 땅의 거지 나사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명자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으로 채움을 입는 줄 믿습니다.
9. 마지막으로 더 큰 문제는 세상에서보다는 내세가 어떻게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부자의 세상을 떠나 내세에서 눈을 떠보니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고통 중에 한 방울의 물도 구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자신의 그 어떤 소원도 이룰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영원히 매일 매 순간 불꽃에 갇혀 고통 하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도 영원히 그의 삶 자체가 영원토록 고민하는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부자였던 그에게는 수많은 재물과 능력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도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였고, 그 형제 친척들에게도 아무런 영적인 영향을 주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살면서 많은 소유와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오직 자기 육체를 위해 사용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비록 사명 있는 삶을 살지 못했지만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고통이었지만 나중에는 위로 받는 삶으로 변했습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는 버림받아서 자신의 병든 몸을 돌아볼 사람도 없었지만, 이제는 아브라함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처음보다 나중이 훨씬 좋은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나사로의 공로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날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을 영원한 저주와 고통을 그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맛보셨기 때문에 우리는 공로가 없어도 자유함을 얻었고, 구원을 받은 줄 믿습니다.
10.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신이 너무 비참하면 복음의 진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여 큰 부자 되기를 힘쓰고 그것이 안 되면 영적으로라도 부자가 되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도와 주어야합니다.
내게 주어진 사명과 복음 전파를 위해 무언가 한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본문의 부자에게는 복음을 전하여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삶을 살게 만들도, 나사로 같은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고 사명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일본에 살고 있는 이유이고, 이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