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3.신앙의 유전자(히브리서 11:17-26)
[성경본문] 히브리서11:17-26개역개정
17.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신앙의 유전자(히브리서 11:17-26/2015.5.3.오전)
1.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말할 때, 무엇이 유익한 것이고 무엇이 해로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 누구도 유단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특히 생명공학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이미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복제의 크론에 관해서는 찬반양론이 지금도 뜨겁습니다.
인간을 복제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견해로는,
인간복제는 다른 과학 기술들의 발전과 같은 것이고, 이 일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여기서 얻어지는 의학적인 이점은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 개인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일이고, 인간을 대량으로 복사하는 것과, 그것을 상품화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것으로,「디자인 베이비」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부모와 동일한 자녀를 생산하거나, 부모가 원하는 형태의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모가 가진 질병 (암, 당뇨, 알츠하이머, 다발성경화증 등의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들을 미리 차단하는 것) 이나 신체적인 핸디캡을 배제하면서, 더 훌륭한 유전 인자를 가진 자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한 경쟁 시대 속에서 이런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존재로 출생하거나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2. 이미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뛰어난 분석장치를 167대를 설치한 게놈 연구소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얻어지는 연구 업적은 중국 이외의 전 세계에서 행하고 있는 연구 실적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용해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기술과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미 생명과학 분야에만 1천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서구에서 공부한 8만여 명에 이르는 과학자들을 귀국시켜, 생명공학에 관해서는 2020년에 가면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될 것이라고 미국 보스톤에 있는, 「모니터 그룹」이라는 연구팀이 5년 전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인간의 염색체 정보를 미리 분석해서 각종 질병들, 특히 암을 예방하거나, 사람의 잘못된 성격이나 생활 습관까지 고치며, 인간의 수명을 120세까지 연장하고 있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심각한 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이런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세상이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믿음으로 이삭은,“믿음으로 야곱은”,“믿음으로 요셉은”하는 말씀에 주목하고, 신앙이라는 영적 세계에도 신앙의 염색체, 즉 믿음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믿어도 전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은 그 다음날부터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도 있고, 불같은 열심과 사고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불태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남의 눈치나 보면서 미지근한 신앙인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열심히 믿다가 점점 식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늦게 믿어도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셨습니다.
3.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삭에게, 그리고 이삭의 신앙이 야곱에게, 또 야곱의 신앙이 요셉에게 전이(転移)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행성 질병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이 될수록 그 병균 체가 점점 약해지는데 반해서, 신앙의 전이(転移)는 그것이 점점 강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이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는 능력의 근원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판중앙교회가 30년의 역사를 넘기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도 신앙의 유전자를 개발함으로 자녀들에게 그 세대가 내려갈수록 점점 강화된 신앙을 만들며, 어떤 문제나 환경에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자산을 우리 자녀들과 오고 오는 믿음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이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그의 육체가 죽은 것 같은 상태에서 최상의 생명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들 이삭의 희생을 통해 부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생명의 희생이 가져오는 아픔보다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아픔이 더 견딜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수많은 생명들의 부활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4. 그렇다면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기독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이 근본적인 힘을 공급하심을 깨닫고, 그의 신성한 부르심에 반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신에 찬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들의 삶과 그 신앙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위대해져갔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그들의 삶과 신앙의 여정에는 한계라는 것이 없었고, 도리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 많은 능력과 축복의 사건을 만났고, 그 들의 믿음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더 많은 영적 자산을 소유하면서 자신들의 전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전성시대에 살았던 호세아 선지자, 그러나 그의 삶을 비참했습니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창녀 고멜을 데려왔는데, 문제는 데리고 오면 또 나가고 나쁜 짓을 행하고, 용서하고 다시 데리고 오면 또 가출을 반복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때, 호세아 선지자의 간이 다 썩었을 것입니다.
호세아는 술집의 창녀로 팔린 고멜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호세아의 고통과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난 아내는 물론이고 그들이 낳은 자녀들까지 저주받은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고멜처럼 배신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호세아가 어려움을 당하던 시기야말로, 복음의 역사가 가장 왕성한 시대였습니다.
호세아와 아모스가 활동하고, 남쪽에서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반응입니다.
4. 그렇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었는 신앙의 유전자, 즉 믿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13절에 보니, “이 사람들은 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첫째는, 히브리서에 기록된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믿음을 따라 살다가 또 그렇게 믿음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 믿음의 유전자가 강했으면, 얼마나 그들의 신앙적 파워와 영향력이 강했으면, 38절에 보면,“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둘째는, 죽음 앞에서의 자세가 한결같았습니다.
그들은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고,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제 자손들을 향해 축복을 선언하고 교훈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저들의 소망을 좌절시킬 수 없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이 신앙의 유전자가 어떤 것인가를 죽음 앞에서도 세상에 확실하게 보여 줬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에 이루어지지 못하였을지라도 그 약속을 여전히 여심하지 아니하고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이나 고통이나 실패로 인하여 슬퍼할 이유도, 낙심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대표적으로 요셉의 임종에서 나타났습니다.
창50:24-25절에,“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하면서, 자신의 해골을 잘 보관하였다가 함께 그것을 메고 올라가라고 유언하였습니다.
넷째는 저들은 평생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얼마든지 정착민으로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땅의 삶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전등을 켜면, 불이 들어오고, TV 스위치를 누르면, 영상이 나오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 믿음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5. 그들은 비록 더딜지라도, 원하는 반응과 결과가 속이 나타나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확신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그를 의지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자신의 가장 귀한 것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도 중요하지만 더 소중한 장래 일을 말하며 그곳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나그네의 삶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미래를 말하고 미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그러한 미래에 대하여, 자신들의 믿음의 유전자인 DNA에 자신들만이 아니라 오고 오는 믿음의 모든 자손들까지 포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유한다면, 자신의 자화상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의 모든 후손들의 모습까지 함께 그려 넣은 것입니다.
건축가가 집을 짓는다면, 자신과 자식들만 사는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수십 대까지 살 수 있도록, 기능면이나 내구성이나 외관까지 깊이 생각하고 짓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믿음이 이래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순교자 아벨에서부터 이미 나타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에녹, 노아,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신앙적 계보 속에 오늘의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의 계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신앙의 계보, 이 신앙의 유전인자는 주님의 재림의 나팔 소리가 울릴 때까지 계속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6. 그런데 세상이 우리의 신앙을 볼 때, 실체도 없고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안 되는 매우 빈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세계란 물질적인 세계보다 더 확고하고 실제적인 것임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세계는,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지는 그런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경험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 이 세상과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 하나님이요, 먼저 존배하면서 다른 존재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 믿음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 자신의 생명을 걸었고, 그는 생명을 걸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예배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에녹도 경건한 삶을 통하여 자신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움 받았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미래를 예비함으로, 현실주의자들과 먹고 마시고 놀자는 쾌락주의자들에게 경고를 주고,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통해 믿음의 승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삭을 통해 믿음의 조상이라 불렸습니다.
1996년11월, 세기의 권투시합이 있었습니다. 마이크 타이슨과 에반드 홀리필드의 경기로, 타이슨은 힘과 명성을 이용해 많은 여자들을 성폭행하고, 스캔들로 일 년 내내 시끄러운 사람이었고, 흥청망청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그의 힘과 교만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여기 비해 이미 한 물이 간 34살의 노장인 에반드 홀리필드는 경건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시합을 기도로 시작했고, 기도를 마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박사들은 11대1로 타이슨의 승리를 점쳤고, 경기는 11회에 홀리필드의 케이오 승리로 끝났습니다.
타이슨은 경기 도중에 두 번씩이나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지만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도리어 타이슨을 감화시켜 화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은 기도의 능력이며, 영적 능력을 겸비한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의 모습이
었습니다.
7. 과연 이러한 믿음의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세상이 주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좋은 것의 실체를 얻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고대시대의 희미하게 비쳐지는 거울과 같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그 어떤 세상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온전하고 완벽하고 아름다움 그 자체들뿐입니다.
이러한 장차 오는 온전한 구원, 온전한 축복,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누가 누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유전자는 세상 사람들이 재물이나 기술이나 과학적인 힘을 물려 주는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하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1:12)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제물 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 유전자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믿음의 조상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과학의 힘도, 뛰어난 유전자도 따라 오지 못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능력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 위대한 믿음의 유전자 세계 속에 내가 있고, 이 유전된 신앙이 나와 내 자손들을 통해 오고 오는 믿음의 자손들에게 전수되기 위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 때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