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5.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열왕기하21:19-26)
[성경본문] 열왕기하21:19-26개역개정
19.아몬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므술레멧이요 욧바 하루스의 딸
20.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21.그의 아버지가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의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 그것들에게 경배하고
22.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더니
23.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4.그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게 하여 왕을 삼았더라
25.아몬이 행한 바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6.아몬이 웃사의 동산 자기 묘실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열왕기하21:19-26/2016.6.5.오전)
1. 열왕기서는 남북왕조의 임금들의 삶에 대한 평가서입니다.
그들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아몬은 다윗으로부터 시작해서 르호보암과 히스기야로 이어지는 유대 왕가에서 15번째 왕으로 출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 이외에도 대하33:23절에 보면 그 아버지 므낫세 보다 더욱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
부친 므낫세는 12살에 임금이 되어 55년이라는 최장기간 동안을 치세했지만, 그의 아들 아몬은 불과 2년 동안 치세하면서도 신기하게도 그 아버지 보다 더 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그의 부친 므낫세가 유다나라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우상숭배와 악정을 일삼았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회개하고 유다로 되돌아 와서는 모든 우상과 악을 버린데 반하여, 아몬은 부친이 버린 우상과 온갖 악행을 그 짧은 통치기간에 더욱 적극적으로 행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상숭배는 반드시 멸망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신뢰하는 부하들을 통해 암살당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고, 그 부친처럼 다윗왕가의 왕들의 묘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곳에 묻혔다는 것은 그들이 유다나라의 통치자로서의 자격은 물론이고, 다윗왕가의 부끄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에 와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대통령들 중에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자신을 역사적으로 평가해서 몇 위가 된다는 이런 부끄러운 평가를 내 놓은 사람들도 있지만, 인생의 제대로 된 평가서는 죽음 이후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 뉴스는 세계적인 복서 미국의 무하마드 알리의 임종을 알렸습니다.
18살에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22살에 세계 헤비급참피온에 올랐고, 19번의 방어전에서 승리했으며, 특별히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파킨슨 병으로 고생하던 중 74세로 임종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전설적인 복서, 위대한 영웅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므낫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몬의 삶을 통해 어떤 인생이 가치 있는 인생이며 어떤 삶이 바르고 복된 삶인지 깨달아 후회가 없는 영원한 축복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2. 유다 나라 사람들은 므낫세의 통치 기간이 너무 길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잊어버릴 정도로 왕은 우상숭배와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썰어서 죽였다고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왜 하나님이 이런 악한 왕을 속히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랜 기간을 왕으로 살게 하신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우상숭배와 폭정 그 자체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요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악을 행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그 죄를 외면해서가 아니라, 악에 대한 형벌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사실입니다.
통치자가 타락하면 백성들도 타락하고, 왕이 우상숭배하면 백성들도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또한 므낫세에 이어서 아들 아몬까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수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므낫세와 아몬을 보면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아몬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오고 있습니까?
20절에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21절에 “그의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22절에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더니”,主23절에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그리고 26절에 보면 다윗왕가의 묘가 아닌 다른 곳, 웃사의 동산에 묻혔다고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므낫세나 아몬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죄악에 대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3. 이 세상에서 인생이 사는 날 동안에 가장 중요한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인생이 사는 날 동안 가장 아름답고 보배로운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몬은 다윗왕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유다의 왕이 되었어도, 자기 삶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이 내리는 최악의 선택이요, 가장 악한 행동이며 가장 불행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도 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인생의 성공이나 크기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얼마만큼 순종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대상29장 10절 이하에 보면, 다윗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위대한 하나님 앞에서 넘치는 감사와 찬송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걸어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 이요, 부귀공명이 다 주의 손에 있고, 주께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며,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국가의 통치자들은 경제와 군사력을 통해서 자신의 통치 능력을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간 제스스로 능력이 많고 똑똑해서 권력을 손에 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하)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므낫세의 정권도, 아몬의 정권도 히스기야의 정권도 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4. 통나무를 가져다가 10년 동안 물주고 정성을 다해 키워봐도 소용이 없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요셉이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고 기근 중에 야곱 집안을 살린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에스더며, 느헤미야며, 다니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전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자기 힘으로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통나무처럼 그렇게 죽어버린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사망에서 저주에서 살림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도 기적이 많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여전히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적이 일어납니까?
그곳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실 중요한 일이 계시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므나세나 아몬처럼 망하고 만 것입니다.
요1: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잘 믿는 히스기야 왕에게서 유다의 가장 악독한 므낫세 왕이 태어나고, 므낫세 보다 더 지독한 아몬 같은 나쁜 왕에게서 요시야 같은 선하고 귀한 왕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5.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며 순종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은총과 축복을 다 경험한 사람인데, 혈통이 좋아서 그랬습니까? 형들보다 똑똑하고 뛰어난 존재라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몬을 보고 깨닫고 하나님께 평생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보면 교회를 핍박하고 가정의 식구들이 믿는 신앙을 박해하던 사람의 아들이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적입니다.
사람마다 배경이 있습니다. 육신의 배경이 있고 영적인 배경이 있는데, 이러한 배경은 그 사람의 평생을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왕하8:18절에 보면 아합의 집안의 딸인 아달랴가 유다왕가에 시집을 올 때 우상숭배하는 아합 집안의 모든 영적인 배경을 다 가지고 왔기 때문에 유다 나라도 우상숭배는 물론이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집안의 배경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남편 여호람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도 죽자 손을 들어 왕의 자손들을 다 멸절시켰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윗왕가의 씨를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여호람의 딸이 조카 요아스를 빼돌려 유모의 침실에 숨겨 죽임을 면하게 했고, 7년 동안 성전 안에 숨겨 키운 후에 그를 유다의 임금으로 세웁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사건입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배경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6. 우리가 지금 오후에 특별 프로그램으로 가족치유, 마음치유를 10여년 만에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배경들이 어떻습니까?
거의 대부분이 문제 있는 가정에서 출생하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혈통을 통해서 내려오는 죄악의 씨앗과 저주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저항하거나 물리칠 수 없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알 수 없는 불안과 위기 가운데 있었고, 그래서 잘되면 잘 되는대로 불안하고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고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그런 잘못된 배경과 문제들과 고통 속에서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잘못된 배경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고 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배경, 영적인 배경에 묶여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성령께서 다 풀어서 자유하게 하시고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이전과 비교해 볼 때, 환경이나 조건들이 변한 것이 별로 없는데도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기쁨이 생겼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전에는 멸망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아몬은 다윗왕가의 왕으로 출생하고도 지금 우리가 맛보는 믿는 자의 행복,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기쁨을 누릴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그 부친 므낫세가 이전에 행하던 온갖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제 삶 가운데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생은 당연히 위기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다윗왕가의 혈통을 이어받고도 그 인생의 마지막은 모반이었고, 배신이었고, 저주의 죽음이었습니다.
7. 내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지금 어떤 조건 속에서 살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며,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세상 사람들은 백년만 살다가 끝날 인생들이지만, 우리는 백년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 좋은 관계는 좋은 해석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편하면 아무리 좋은 것도 나쁘게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그 어떤 것도 좋은 해석을 만들어 주고, 좋은 관계, 좋은 생각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아름답고 귀하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죽음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자녀로서, 그 분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야 하는 복음의 사명이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사명이 있으며, 이 사명에 충실할 때 그 인생이 빛나고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 이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 날까지 그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인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말씀에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