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8.인생의 의문, 왜?(열왕기하21:1-18)

[성경본문] 열왕기하21:1-18개역개정

1.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2.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3.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4.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5.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6.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7.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하셨으나

9.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

10.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11.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16.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17.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8.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의문, 왜?(열왕기하21:1-18/2016.5.8.오전)

1. 다하라 요네꼬(田原米子)) 라는 여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소망도 없다는 생각에 동경의 신주꾸역에서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목숨이 죽지도 못하고, 양 무릎 아래의 다리가 절단되고 왼손도 없어지고, 오른 손의 손가락도 두 개가 잘려 나간채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어느 날 젊은 신학생이 찾아와 그녀에게 전도를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청년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결혼하여 가정까지 이루게 되었고, 나중에는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돌며 간증하며 복음을 증거하면서 많은 감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는 잘못된 판단으로 제 인생을 철저하게 망가뜨렸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찾아와 주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건강한 사람들도 할 수 없는 귀한 일을 감당하게 하심으로 보배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인생과 가정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의 도구로 만드셨지만, 현대 사회를 보면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본연의 사명을 잃고 병들고 고통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불행한 가정이 대부분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의 가치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기계문명과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왜 가정이 필요하며, 가정의 사명이 무엇이며, 자녀들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녀들은 부모가 원하지 않는 잘못된 길로 나아가다가 인생을 잘못된 곳에 낭비하다가 결국에는 패가망신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호4:6절에 보면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는데, 그 지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요, 하나님이 인생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는지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에 전연 관심이 없고, 오직 잘 먹고 내 뜻대로 잘 살다가 죽으면 그것이 인간의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사람 사는 곳에는 법도가 있고 만물에는 질서가 있으며, 심지어 자연 속에도 이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면서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인간의 생각으로 풀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습니다.
그런 의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나오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로 12살 어린 나이에 유대나라 14번째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증거하고 있는 므낫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 이래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인정받는 히스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나라의 가장 악한 왕이라는 오명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행한 악한 일들이 본문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렸던 각종 산당들을 다시 만들었고,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는 바알신이나 아세라 여신을 숭배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호와의 성전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만들고 그것을 신으로 섬겼고, 자신의 아들을 불에 태워 이방신의 제물로 드렸으며, 귀신들린 자들을 데려다가 점을 치고 마술을 행하고, 무죄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두 가지 구절이 있는데, 그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지나친 악을 행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거듭 불러 일으켰다면 당연히 속히 심판을 받되 가장 무서운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일인데, 도리어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권세를 잡은 왕이었습니다.
무려 55년 동안을 통치하면서 악행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3.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는 무엇이고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이며 하나님은 악한 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계시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재앙이 오고 우상숭배로 재난과 심판이 와야 하는데 그는 거듭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장본인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다하고 자신이 누리고자 하는 것들을 다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므낫세의 죄악은 원래 가나안에 살던 이방인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었고(2,9,11), 북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과 비교될 정도로 악한 인간이었습니다(3.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문점을 증폭시키는 것은 가장 훌륭하고 믿음이 좋은 왕인 히스기야의 아들이 과연 이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부친이 행한 종교개혁을 철저하게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결국에는 유다 나라가 멸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유가 무엇인가? 왜? 라고 질문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히스기야 가정을 살펴보지만, 히스기야의 가정이나 아들 므낫세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므낫세는 히스기야 임금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예루살렘성을 포위한 앗수르 대군을 물리친 일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질병에서 회복되고 15년의 생명연장을 받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잘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가정교육이 필요하고, 보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했지만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증거하는 신앙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4. 사람들은 이성으로 이해가 안되고 비합리적인 현상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부모 자식간의 문제를 가지고 말하기를, 저렇게 훌륭한 부모에게서 어떻게 저런 망나니 같은 자식이 태어났을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내세를 의심하고, 불신앙 내지는 반 기독교적인 생각과 행동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도 얼마든지 더 못된 자식이 태어날 수도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기도로 생명을 연장 받는 등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일으켰다고, 히스기야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이 근본적으로 뽑혀 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히스기야 안에는 그 아들 므낫세가 하나님을 노엽게 만드는 죄성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행을 했다고 죄가 그만큼 사라지거나, 남들보다 믿음이 뛰어난 만큼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점진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의 세력과 그 뿌리는 히스기야나 므낫세나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을 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이 세상이 그만큼 악하기 때문입니다.
전7:15절에 보면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다고 하였으며, 또한 말3:14-15절에는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고 했습니다.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는 이런 일들이 거침없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도 이런 부분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5. 이런 문제가 우리의 현실에서 반복되면서 일어날 때 여러분은 자신 스스로에게,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저도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한 마디로 말해서 히스기야와 므낫세로 이어지는 이 혈연 속에는 뿌리 깊은 인간의 죄성이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그 부친이 아무리 신앙과 인격과 행위가 온전해도 조상의 피를 타고 후손으로 흘러가는 죄성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훌륭한 가문이라도 죄가 주는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스스로의 의로움과 공로로 죄를 이길 인생도 없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을 수는 있어도, 우리 안에 자리잡은 인간의 죄성은 뿌리 뽑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귀는 그래서 온갖 궤계와 유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범죄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이 죄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면서 위대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기도의 능력으로 대적을 물리치고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것은 100프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히스기야나 그 아들 므낫세나 다 똑같이 원래는 하나님의 진노로 므낫세 처럼 온갖 나쁜 짓하다가 멸망할 죄인이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의를 행하며 기도 응답을 받는 히스기야 속에도 므낫세와 동일한 죄성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하나님 중심에 서 있다고 자식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또한 부모가 므낫세 처럼 악을 행한다고 해서 그 손자인 요시야 임금도 악을 행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 임하시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누구를 통해서 나타나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제 인생을 자랑하지 말고 자녀를 위해 그분의 도우심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던지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인생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생은 사명입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서 살면 그 사람은 복음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면 천국의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아무리 의롭게 살고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어려움을 계속 당할 수도 있으며, 대강대강 살아도 누릴 것 다 누리고 평안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의 생각과 그 눈에 비합리적으로 보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그곳에는 반드시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은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도 아무런 죄도 없으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실 때,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안으시고 위로해 주신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시는 그대로 외면하심으로 버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는 영원히 죽은 자로 삼고, 의에 대하여는 영원히 사는 자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일 만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하게 하심으로 영원토록 생명의 주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하는 것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도리어 욥의 인내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인생이 왜 날마다 요 모양 요 꼴인가 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 만큼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원래는 므낫세처럼 밥 먹듯이 악을 행하되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만큼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7. 예루살렘 성이 히스기야 임금 때에 앗수르에게 포위되어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니 그 성을 무너뜨릴 자도 침공할 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범죄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떠날 때, 본문 12-14절에 기록된대로 견고한 예루살렘성이라도 사마리아 성처럼 무너지고 온갖 재앙에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떠나는 순간 예루살렘은 앗수르에게 정복당하고 므낫세는 포로로 잡혀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그가 회개한 이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그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자 그도 아버지의 악행을 그대로 본 받아 행하다가 2년 만에 반역자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의문 왜? 라는 이 물음표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고 하면서 계속해서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1-13)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만났기 때문에 이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도리어 너희를 도와주고 축복하고 은혜를 베풀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와 우리의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부모된 우리 속에는 자랑하고 인정받을 만한 선한 공로보다는 여전히 죄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세상 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격과 신앙이 먼저 자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거룩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이 지상에 가정이 존재하고, 이 일을 위해 믿음의 부모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할 때, 우리들의 가정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구원의 사명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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