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24.힘 있는 사람(열왕기하20:12-21)
[성경본문] 열왕기하20:12-21개역개정
12.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6.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힘 있는 사람(열왕기하20:12-21/2016.4.24.오전)
1. 1972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 엑스프로 72에 한국의 C.C.C 즉 대학생 선교회의 대표인 김준곤 목사님이 참석해서 선언하시기를, 한국에서 열리는 엑스프로 74에서 30만 명을 동원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너무 무모한 일이라고 반대했습니다.
나중에는 엑스프로 74 대회 유치 자체를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날씨부터 시작해서 재정문제 등등, 무려 74가지를 나열하며 반대를 했지만, 민족의 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있는 김준곤 목사님이 도리어 금식기도를 선포하면서 이 일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광야 길 40년 동안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 믿고, 스가랴 4:6절에 있는 말씀인,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 하면서 이 일을 밀고 나간 결과, 1974년 8월 13일에 당시로서는 허허벌판이었던 여의도에서 시작된 이 대회는 합숙등록 훈련생만 예상했던 30만 명을 넘어 323,419명에 이르렀고,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최대 인원 158만 명을 동원하며 5박6일의 일정을 은혜가운데 마칠 수 있었는데, 그 훈련생 가운데는 20살의 저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의 텐트나 노숙으로 지내고, 조금 떨어진 순복음 교회나 인근 교회에서 숙식을 하면서 지냈는데, 저는 그래도 편하게 여의도 중학교에서 합숙을 하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민족복음화를 위한 예수 혁명, 예수 폭발 그 자체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었던 기폭제가 1973년의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전도 집회와, 74년의 엑스프로 대회를 통하여 영적부흥으로 나라와 민족이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한국교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고, 국가 경제와 경쟁력도 빠르게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사십 수년 전을 되돌아보면, 그 때의 일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대한민국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힘이었습니다.
2. 요즘은 중동지역의 내전상태에 빠진 시리아나 이라크 난민들이 유럽 각국의 국경 봉쇄로 유럽을 향해 몰려가던 난민들의 발이 묶이는가 하면, 이번에도 배가 뒤집혀 배를 타고 탈출하던 많은 난민들과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자국을 탈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전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힘을 잃고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법과 질서를 포함한 모든 것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힘없는 국가나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과, 한 번 힘을 잃고 무너지고 나면 그것이 국가이든 개인이든 어떤 단체이든지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사실입니다.
국가가 힘이 없으면 자국민에게도 버림을 당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힘이 없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없는 사람의 특징은 힘이 있는 자에게 지배를 당하고, 이용당하고, 소망이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축적해서 그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힘이란 숨기기보다는 드러내고, 자랑하고 알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만이고, 허세고, 거짓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힘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며, 그 힘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서 짐승이나 노예처럼 강한 자에게 지배를 받고 이용당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축복의 자녀로 살기를 원합니다.
3. 열왕기 18장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히스기야의 역사는 본문에서 종결이 됩니다.
그러나 대하32:27-30절에 보면, 그가 29년간 유대나라를 통치하면서 하나님께 받았던 축복들은 정말 대단한 것들이었습니다.
27절에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고 했는데, 많은 보석과 보물을 위해 창고를 증설하고, 곡식을 포함한 농산물을 감당하지 못해 창고를 또 짓고, 짐승들을 위해서도 많은 우리를 지었는데, 29절 마지막에 보면,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대하32:23절에 보면 기도로 앗수르 대군을 물리친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과 나라에서 예물이나 보물을 가지고 와서 성전에 드리면서,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속담에 잘되면 제탓, 못되면 남의 탓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히스기야는 이 모든 힘과 부귀영화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마음이 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은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사절단의 편에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진 히스기야의 마음은 성전과 나라 안에 있는 많은 보물과 병기들이며 곡식 창고들이 다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인 줄 생각하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보이면서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늘 위협을 받는 존재였지만, 그래도 반 앗수르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흥제국인 바벨론의 눈에 좋게 보였고, 바벨론은 유다 왕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반 앗수르의 공동전선을 펴고자 했습니다.
4. 바벨론이나 유다나라나 힘을 합하면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앗수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힘이란 것은 혼자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합하면 그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내 편이 되어 주고 내 병든 것 까지 염려해서 챙겨주니 히스기야로서는 아마 눈물이 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로닥발라단이 보낸 문병 사절단에게 최고의 호의를 베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통치자로서 외교적 수단으로서 국가의 보물창고와 무기고를 공개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왜냐면 우리도 이 정도의 힘이 있으니 바벨론과 대등한 관계에서 동맹을 맺는데 손색이 없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때에는, 반드시 그 결정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했고, 여호수아는 이른 아침마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의 교만한 마음이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사람을 더 신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 정도의 부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벨론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남쪽의 애급과 동맹을 맺고, 때로는 북쪽의 앗수르나 또 다른 나라와 손잡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동맹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트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시2:8-9) 고 하셨습니다.
5. 바벨론이 유다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히스기야 임금에게 문병 사절단을 보내는 것은, 유다 나라를 사랑하고 히스기야를 보호하기 위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유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브로닥발라단이 사절단을 보내는 것은 유다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과 함께, 장래를 위해서 유다를 정탐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히스기야는 속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 보여주고 자랑하고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내일을 모르는 미련한 인생이 악어 입으로 제 머리통을 밀어 넣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칭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잘한다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는 위기를 만나면 강해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히스기야처럼 방심하고, 받은 축복이 제 능력인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의 공통점은 하나님 없는 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 힘을 믿고 제 스스로를 의지하며 자신의 힘과 권력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분의 도우심으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앗수르나 바벨론 왕이 어떻게 살아왔던지 관계없이,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자신의 도우심으로 삼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여호와를 자신의 힘으로, 능력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응답되고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니 숨어 있던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히스기야에게 우호적이라고 해도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교만한 마음이 바벨론의 속셈에 대하여 눈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6. 성경은 교만한 자에 대하여 말하기를,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잠15:25),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사23:9)하신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고 중남미의 에콰도르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세계 각지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한 인생들이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습니까?
이 지구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왜? 인생은 연약해서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은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회개하고 새롭게 일어서는 자에게 하나님이 어떤 축복과 능력을 베푸시는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누가 힘 있는 자이며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말씀을 통해 제 스스로가 죄인이고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창조주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에서 해방되었습니까?
내 힘으로 남침하는 공산세력을 물리쳤습니까?
우리의 능력으로 세계 경제대국이 되었습니까? 전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게 전부 내 힘으로 된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국에게 사방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위기감이 전연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히스기야처럼 마음이 배불렀고, 심령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위기감도 없이 교만한 마음을 자랑으로 삼고 힘으로 삼는 사람이 만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7. 본문 17-18절의 말씀을 보니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날 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잠시 잊어버리고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혀 인생을 자랑한 그 대가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힘없는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았으면 감사가 넘치고 그 받은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으니,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도로 거두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을 만나야 합니까?
그냥 그대로 있으면 그것 가지고 계속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으면 제 인생 자랑하고, 재물 있으면 돈 자랑하고, 명예나 건강이나 미모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자랑하지 못하도록 거두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리석게 자랑한 것만큼 원수들 앞에서 많은 수치를 당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랑한다고 빼앗아 가고, 교만한 마음에 심판을 내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자랑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것들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썩어 들어가면 그 다리를 잘라내서라도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살아난 생명에 복을 주시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8. 그렇다면 과연 누가 힘 있는 인생이며 누가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인생을 자랑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마음 대신에 겸손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내 힘과 능력을 믿고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자랑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십자가 복음을 자랑하고 전파하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임종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2-3) 고 했습니다.
종이 한 장은 그 자체로는 매우 연약하고 가치도 없는 존재이지만, 그 위에 세계적인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그 종이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입니다.
내가 누구의 손에 붙잡혀 있으며, 내가 누구에게 무슨 목적으로 쓰임 받는가에 따라 인생의 가치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쓰임 받아야 할 것입니다.
9.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붙잡아 사용할 때, 우리는 인생의 전성시대를 살 수 있으며, 가장 힘 있는 자의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 힘 있는 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여호수아나 다니엘도 스스로는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사로잡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쓰임 받을 때 가장 위대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고백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지 오늘의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힘이나 육체의 능력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도움을 구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우리의 영원한 힘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