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28.기도의 능력(열왕기하20:1-11)
[성경본문] 열왕기하20:1-11개역개정
1.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도의 능력(열왕기하20:1-11/2016.2.28.오전)
1.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것이고 둘째가 기도생활입니다.
왜냐면 기도응답을 받으면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 살아계신 응답으로 증거를 얻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도응답을 받고, 기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히스기야 임금이 죽을병에 걸려 더 이상 인생에 소망이 없을 때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 최대의 난제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인생에 한 번 죽음이 찾아오면 아무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존재는 최대의 고통이요 슬픔이요 위기요 대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다윗 왕 이후에 최고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으로 나라를 잘 다스린 임금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왜 갑자기 하나님은 그에게 죽을병에 걸리게 내 버려두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본문 1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정말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린 시점은 앗수르의 1차 침공을 받기 직전이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가 눈앞에 닥쳐오는 그 시점에 히스기야는 죽음을 선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갑작스런 죽음도 기가 막힌데, 나라와 민족은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본문 말씀대로 히스기야가 죽으면, 그 때는 아직 자식도 없었기 때문에 대가 끊어질 판이고, 그렇게 되면 다윗 왕가의 명맥도 끊어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의 소망도 끊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때였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며, 과연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인가 생각하며 낙심하기 쉽습니다.
2. 인간은 순조로운 인생의 길을 가게 되면 반드시 치명적인 함정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스스로의 힘과 공로로 모든 것이 형통한 줄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원하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교만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과 하루하루의 삶은 다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지난 25일 낮에 오사카 중심가인 우메다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주 자동차의 사건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 11명이 죽고 다쳤는데, 원인은 운전자가 운전 중에 대동맥 혈관이 막히면서 급사해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의 뉴스를 보면서 누가13:4절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의 실로암에 있는 망대가 갑자가 무너져 내리면서 18명의 사람들이 치어 죽었는데, 예수님은 이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이 때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비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외같이 망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던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죽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죽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금 우리도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고, 내 머리 위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깔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3. 그런데 히스기야 임금이 병들어 죽게 된 시점을 계산해 보면 39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집을 정리하라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더 이상 이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젊은 나이에 그것도 후사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 죽음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만 살고 오라 그러면 순순히 세상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는 게 지옥 같으니 차라리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 사실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단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니, "히스기야가 낮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혹시 그 뜻을 돌이켜 주실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기도라는 것이 약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고, 기도는 힘없고 못 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맞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인생을 정리하라고 하신 이유가 인생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의 1차 침공을 받기 이전에는 유다왕국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나라 안에 온갖 우상을 없애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전쟁에서 전승을 거듭하면서 국토를 확장하고, 나중에는 패권국가인 앗수르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국가의 면모를 지켰으며, 예루살렘과 성전 안에는 온갖 보화로 흘러넘치던 시대였습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던 시대였고, 히스기야는 덕분에 강력한 통치능력을 소유했습니다.
결국 형통함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하나님 보다는 자신의 공로를 높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윗도 범죄하였고, 솔로몬도 많은 왕들도 그랬습니다.
4. 하나님은 장차 앗수르의 침공으로 유다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할 줄 미리 아셨습니다.
그 어떤 위기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도자가 흔들리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면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만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런 정신상태로 어떻게 위기를 넘길 수 있겠습니까?
히스기야 임금이 국가적으로는 개혁을 단행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민족을 바로 잡았지만, 이제는 제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면 다 무너지고 망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죽을병을 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20:12절 이하를 보면 히스기야의 교만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흥제국인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통해 안부인사와 예물을 보냈는데, 까닭 없이 국가의 보물 창고를 열고 성전의 보물창고까지 다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고생하면서도 자랑하는 것을 멈출 줄 몰랐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엄한 책망을 들었고, 보여준 보물들을 바벨론이 다 빼앗아 가져갈 것을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렇습니다.
다가오는 국가의 위기를 준비하라고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병을 주었는데, 아직 죽을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오지랖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인생이 위기 앞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의 연약함과 교만함을 깨닫고 회개하고 기도로 도움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눅18:1절에 보면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억울함을 당한 불쌍한 과부를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데, 이 과부는 매일 재판장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나중에는 재판장이 생각하기를 너무 귀찮게 구는데 정말 물귀신 같이 겁도 나고 해서 그녀의 청원을 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어떤 위기와 어려움을 당해도 기도하는 자는 낙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혔지만, 한 밤중에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도했더니 옥문이 열렸습니다(행16:25).
이스라엘이 길도 없는 사막을 가는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 보면 길이 열리고 홍해도 열리고, 사막에 샘이 솟고 만나로 풍성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눅18: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고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죽을병에 더 이상 소망이 없어지자 더 살아야겠다는 생명의 집착이 일어난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한 일을 만나면 사람하고 싸울 필요 없습니다.
6. 성경에 보면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억울함과 손해를 당했습니까?
그래도 삼촌이나 그 자식들하고 한 번도 다투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도리어 하나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싸우고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렇게 여기서 이 모양으로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처럼 벽을 향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얍복 강의 야곱처럼 그런 각오로 기도로 씨름하시기 바랍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본문 5절에 보니,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것이 라는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자의 받을 은혜요 행복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더 큰 응답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둘째는, 6절에 "내가 네 날수를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리"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문제까지 응답받고 해결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하게 질병만 치료된 것이 아니라 15년의 생명의 연장을 통하여 그 아들 므낫세를 얻어 후사를 잇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앗수르의 그 어떤 위협도 예루살렘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은,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연약한 존재이며 하나님 이외에는 구원의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더욱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불쌍히 여기시며 어떤 사람을 도와주십니까?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히스기야처럼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를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를 시작하면 하늘 문도 열릴 것이고, 기도할 때 마다 응답으로 삶이 새로워지는 줄 믿습니다.
인간이 연약한 존재로 창조되어진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분을 의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가 왕궁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그 왕궁이 어떤 곳입니까?
온갖 술수가 난무하고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그런 곳입니다.
하물며 포로로 끌려간 신분인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살아남을 뿐 아니라,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르고 왕의 신임을 제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어 놓고 생명을 걸고, 순교자의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기도하지 않으면 바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성도로서의 삶,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8.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놀라운 증거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9절 이하에 보니 히스기야가 기도의 응답의 증표를 구할 때,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10도나 물러가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40분간의 시간을 뒤로 되돌린 것입니다.
20세기 과학자들이 연구하다가 태양력의 시간이 하루가 빠진 것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계산을 반복해도 정확하게 24시간이 우주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과 전투할 때 여호수아가 기도하기를, “태양아 너는 기브온 골짜기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10:12) 고 기도했더니, 이스라엘이 모든 원수를 물리치기 까지 하루 종일 태양이 중천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려 23시간 20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기도로 40분간 시간이 뒤로 물러갔으니 24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이처럼 정확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기도를 통해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 우리가 앞에 무엇을 구하고 어떤 태도로 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리질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반드시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되 전무후무한 능력으로 우리를 위해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9.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나 세상 사람들이나 다 똑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이 구별이 안되는가?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가 주인처럼 살고 예수님은 내 종처럼 부려 먹으니 그렇습니다.
1990년대 남북한의 대표들이 활발하게 왕래할 때 그 때 평양의 봉수 교회에서 남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을 보니 틀려먹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하는 태도가 우리가 김일성 주석한테 하는 태도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는 가짜라고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오늘부터 히스기야 처럼 인생의 위기 때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를 보이며, 응답을 통해서 능력과 기적과 생명을 건지는 역사가 우리에게도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