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21.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열왕기하19:20-37)

[성경본문] 열왕기하19:20-37개역개정

20.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

21.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7.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29.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열왕기하19:20-37/2016.2.21.오전)
1.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고통을 싫어합니다.
고통 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고, 괴로움 보다는 즐거움을 원하고, 슬픔 보다는 기쁨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서 있으면 앉고 싶어지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같은 암 환자라도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순간이 저주스러울 정도로 고통당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암 환자는 고통도 없이 암이 진행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통이 없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센씨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병의 특징은 환자 스스로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가도 위기감과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고통스러우면 그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겠는데, 아프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몸뚱이가 무너져 내리는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생에 있어서 아픔이라는 고통은 누구나 원하지는 않지만, 인생은 아픔이 없이는 결코 성장할 수가 없으며, 고통의 동반이 없이는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나에게는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가?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배인 시편기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들도 삶의 현장에서 공의가 무너져 내리고, 불법과 온갖 폭력이 난무하면서,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신은 더욱 고통 속에 빠져 들어가는데, 도리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고통도 없고 늘 형통하는 것을 보면서 절망감을 느끼고 그것이 고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시73편).

2. 그러나 그들은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당하는 이러한 부조리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오는 고난이나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고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위기와 고통 중에서도 흔들리거나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이요 나의 기쁨이며 소망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과 감사는 소유나 소원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함께 하시고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소유가 되고 나의 기쁨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입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시편37편을 보면, 그곳에 악인이 받을 심판과 의인이 받을 상급이 어떠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7:1절에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 고 하였고, 계속해서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
(33,38) 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고난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3. 히스기야 임금 때에 유다 왕국의 위기는 분명 그 백성들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죄인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도리어 회개하고 위기를 만나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함으로 고난당하기 이전보다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공세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예루살렘이었지만, 하나님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모든 위기 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위기를 만난 히스기야와 그 예루살렘 안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객관적으로 드러난 정황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간절히 기도한 기도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비록 범죄한 이스라엘이라도 영영 망하지 않았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절망의 심연에 빠져도 다시 회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31절에 보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열심이란 그 분의 시기심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백성을 원수의 손에 결코 빼앗기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늘 속을 썩이는, 소위 부모 얼굴에 똥칠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원수라고 말합니다마는, 그런 자식이라도 부모의 눈앞에서 수치를 당하거나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만큼 피라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의 여호와의 열심이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 간에는 혈연으로 연결되어졌지만, 하나님과 내 백성 내 자녀로 불리는 이스라엘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4. 본문 34절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 이어 이스라엘이 분열되기 전의 두 번째 왕입니다.
히스기야 임금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죽은 지 25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지금까지 다윗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고통 가운데서 회복하시고 위기 가운데 구원하시는 일을 다윗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그 분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수도 없는 모반으로 정변이 일어나 왕국이 바뀌었지만, 남왕국 유다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다윗 집안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7:16) 하셨습니다.
또한 왕상2:4절에 보면,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고, 그 나라를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약속(대상22:8-10)하셨는데, 그 약속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 가문에 태어나심으로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사9:6-7).

5.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 성이 회복되고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의 보잘 것 없는 공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보다 더 앞세우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그 누구도 바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짐승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백하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고 했습니다.
이 구원이 어디서 왔습니까? 내 안에서 내 공로로 완성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 교만한 앗수르가 불가항력적인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예비한 멸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3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기세가 등등하여 오만하기 짝이 없는 산헤립과 그의 군대가 하나님을 모욕하다가 하룻밤에 어떤 결과를 만났습니까?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였던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천사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송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35절에서 "이 밤에" 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내용을 히스기야 임금에게 전해주었던 그 밤을 말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임금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완벽한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어떤 위기 가운데 있으며, 대적들에게 어떤 고통과 추치를 당하고 있는지 히스기야 임금은 그것을 상세하게 하나님께 아뢴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도 말하기를,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렘20:12) 라는 그 간구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6.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히브리 민족, 즉 이스라엘이 평소에 착하고 진실하고 의로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는 이방인들과 비교해서 크게 뛰어난 것이나,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민족적으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었으며, 국가적으로는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영영 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고 하셨는데, 그 구원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는 고난 중에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20).
둘째는 29절에 보니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를 먹었듯이, 그들도 전쟁으로 황폐된 국토가 회복될 때 까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새로운 만나를 먹으면서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대적 앗수르를 완벽하게 심판하심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7. 천하를 호령하며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었던 산헤립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8절에 보니,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내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앗수르가 열방을 정복하고 수많은 왕들을 포로로 끌고 갈 때에 짐승처럼 다루던 그 모습을 말하고 있는데, 산헤립도 그런 참담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패배자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제 고국으로 돌아가서 재기를 꿈꾸었지만, 그 결과는 더 참담했습니다.
본문 37절에 보면 자기가 섬기는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제사하던 중, 그의 아들들에게 칼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본문 21절에서 밝힌 대로,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대적 앗수르는 하나님과 유다를 향하여 온갖 협박과 멸시를 퍼부었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위기 가운데 빠진 그들을 구원하시고, 앗수르는 그 입에서 나온 말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다윗과 다윗의 집을 위한 여호와의 열심에서 온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3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과 다윗을 위하여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환란에서 건지심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손에 의한 구원과 회복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8. 대하32장에 보면 같은 사건을 기록하기를, 그곳에 보면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23) 고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앗수르는 이 예루살렘에서의 패배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향후 20여 년간 그들은 감히 유다 땅을 넘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히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자기 백성을, 자기 자녀를 대적의 손에서 완벽하게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 스스로에게 큰 기쁨이고 영광인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백성은 다윗처럼 언약 안에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와 축복을 입는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십자가 복음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과 손해를 입어도, 하나님은 히스기야 임금처럼 그 모든 것을 값아 주시되 영원한 영광으로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도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었더니, 십자가의 죽음으로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부활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다니엘에 사자 굴에 떨어져도 도리어 구원받고 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당하기 전 보다 더 큰 축복과 은혜를 누렸다는 말씀입니다.

9.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비판과 욕을 먹은 대통령은 링컨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거짓말쟁이, 독재자, 도둑놈, 허풍쟁이, 위선자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난과 모욕을 당했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마침내 흑인 노예의 해방을 이루면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시며,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다윗처럼 언약의 백성이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죄 씻음 받고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혼자가 아닙니다.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도록” (눅21:17-18)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시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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