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20.나를 구원하소서(열왕기하16:1-20)
[성경본문] 열왕기하16:1-20개역개정
1.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7.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10.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를 구원하소서(열왕기하16:1-20/2015.9.20.오전)
1. 조선일보 논설 위원이었던 이규태씨가 쓴, 이규태 코너에 보면 자살 약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기에 보면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다는 내용에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독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약은 헴록(hemlock)이라는 식물로, 조금씩 마시게 되면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할 때 독사에게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 어떤 독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고통도 없이 잠자듯 조용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약이라고 합니다.
네로를 로마의 황제로 만든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황제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정적들을 죽일 때, 자살약 전문 제조사를 두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많은 사람들을 독살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침공하자 인도왕은 절세의 미녀가 마신 독이 그녀의 피부를 통해 스며 나오도록 하여 독살시키려 했는데, 사전에 발각이 되어 죽음을 모면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미녀는 사전에 독을 조금씩 섭취하여 독에 대한 몸의 저항력을 길렀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거울 뒤에 발라진 수은을 사용하여 자살을 위장한 독살이 한 때 성행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마약성분의 약들이나, 심지어 술 담배 같은 기호식품도 사람을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약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열왕기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내용이 후반에 이를수록 이스라엘의 남북왕국이 마치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독배를 마시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남왕국 유대의 위기와 멸망이 어떻게 다가오고 있으며, 이런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우리 시대의 위기를 이기고, 개인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 본문을 보면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부친을 이어 유대왕국의 임금이 되었는데, 유대나라에서 전무후무한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3절에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절에는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다고 했습니다.
유대 나라의 왕으로서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고 그곳에서 분향하며 제사를 올린 왕들은 있었지만, 4절의 내용을 보면 그는 지정된 산당에서만 제사하고 분향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아니하고, 온 나라 안에 산당을 설치하되 작은 산들과 푸른 나무 아래에 까지 제단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대하28장에 보면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2) 었다고 함으로, 그는 단순한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우상숭배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용납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의 죄악은, 몰록이라는 이방신을 섬기기 위해 제 자녀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의 타락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면서,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127:3-5) 고 하였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사람에게 주신 영화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은 아하스 임금처럼 제 자식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레20:2절에서 제 자식을 몰록에게 제물로 바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그런 행위를 보고도 모른척 하는 자는 하나님이 멸망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레20:5).
3. 그 결과, 우상숭배자를 향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재앙이 무엇입니까?
본문 5절에 보니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하여 유대 땅을 침공한 것입니다.
유대 나라는 정말 손바닥만 한 작은 나라에 불과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르호보암 왕 이래로 200년을 이어왔는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하는 이 아하스 임금 때문에 나라의 존립이 위태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대가로 비참할 정도로 타락했고 부패했는데, 그 위에 더하여 이제는 이웃나라들에게 크게 약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당시의 상황을 이사야 선지자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사7:2) 고 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동맹하면, 유대 나라는 아침 해장거리나 다름이 없습니다.
연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가슴을 떨고, 문풍지의 바람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서늘해지기 마련입니다.
왜 그렇게 두려워합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때의 아람과 이스라엘은 반 앗수르 정책을 펴고 있었고, 유대 나라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늘 적대감과 긴장감이 있었고, 그래서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당연한 그런 시기였습니다.
또한 이 때 앗수르는 이미 남쪽으로는 애급을 시작으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의 정세는 늘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4. 이런 험한 국제정세와 연합군의 침공 앞에 바람처럼 흔들리는 유대 임금과 백성들을 향한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사7:4) 는 것입니다.
그들이 힘을 합하여 유대를 치자고 했지만 결코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대한 분명한 한 가지의 징조를 선언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7:14절에 보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떨고 있는 이 유대 나라를 향하여 죄와 연약함과 수치 가운데서 완벽하게 구원할 메시야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떠난 아하스 임금의 귀에는 이미 선지자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로 패역할 대로 패역해진 아하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나 위로가 되지 못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결정이 무엇입니가?
속히 앗수르 왕인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보니 기가 막힌 말이 나옵니다.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8절에 보면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을 긁어모아 앗수르 왕에게 보냈습니다. 이러한 아하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5. 첫째로 헛된 것에 스스로 굴복하여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 성전의 각종 거룩한 기물과 보물들을 빼앗고, 왕궁의 국고를 탕진시키고 말았습니다.
우상숭배자 아하스 임금의 잘못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웃시야와 요담 왕이 힘을 기울여 성공한 사업인 국방 사업과 국토 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을 이미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불의가 만연하여 질서가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위기였습니다.
머리 나쁜 사람이 욕심만 많으면 반드시 우상숭배로 갑니다.
그 결과는 혼란과 고통과 저주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왜?
인간의 생사화복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도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이 너무 연약하고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5-9) 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까지 능력으로 나타났고,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임금은 친 앗수르 정책과 더불어 막대한 재물을 앗수르 왕에게 바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 결과는 대적이 물러가고 잠시잠깐의 안정뿐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들여 이스라엘과 유대 나라의 관계를 외세에 의존한 결과, 형제 국가인 이스라엘은 그 다음 왕인 호세아 임금 때 영영 망하고 말았고, 유대 나라도 앗수르의 노예와 같은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헛된 것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결과는 다 이와 같습니다.
6. 둘째는 혼합주의 신앙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대적 아람왕 르신이 죽고 나자, 아하스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까지 앗수르 왕에게 문안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 아하스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10절에, 죽은 아람의 르신 왕이 섬기던 이방신전의 제단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는 이방신을 섬기던 제단의 모습이 마음에 들고 좋다고 생각했는지, 자세한 설계도를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 여호와의 성전 안에다가 다메섹에 있는 제단과 똑같이 만들도록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보는 것 때문에 망하거나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그것을 아담과 함께 먹으므로 망했습니다.
다윗은 왕궁 위를 거닐다가 밧세바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살인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하스 임금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제 마음대로 그 배치를 바꾸고 말았습니다.
성전의 문을 닫고, 성전 안에 등불을 끄고, 분향과 희생 제사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항상 차려 놓는 진설병도 두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양식은 그 분의 말씀을 따라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무시하는 행위였습니다.
오늘날 주위에 신앙생활을 이 아하스 임금처럼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도 제 마음대로 주장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 행위가 욕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것을 가리켜 어떻게 경고하고 있습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영원한 죽음을 말하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아하스는 하나님 보다 앗수르 왕을 더 의지했습니다.
7. 그래서 그의 조상 다윗 왕이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부르짖지 아니하고, 어리석게도 언약의 백성을 약탈하고 노예로 삼으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앗수르 왕에게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 보다는 아람 나라의 우상의 제단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은 물론이고 예루살렘 성전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하스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본문 2절 끝에 보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였” 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라는 표현입니다.
아하스는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하여 형편없이 타락하고 부패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46: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의지하거나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모든 일을 내 뜻대로 다 이루겠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기다려 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대로 가만히 있으면 문제에 대한 답이 나오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는데, 내 안에 있는 욕심이 성급한 행동을 하게 만들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도록 만들어 결국에는 일을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가 연합군의 침공으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데 가만히 있고,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8. 선지자 이사야는 위기만난 아하스와 백성들에게 분명한 해결책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했습니다.
그가 고통에 빠진 인생을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기 위해 언약 백성들 가운데 오심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미 들을 귀가,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상숭배라는 죽음에 이르는 독약을 마시고 천천히 멸망을 향해 꺼져 가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만났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도울 힘이 없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엎드려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모든 위기와 고통에서 구원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다리는 자는, 반드시 고통에서 평안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받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