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9.교회의 부흥(사도행전11:19-24)
[성경본문] 사도행전11:19-24개역개정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교회의 부흥(사도행전11:19-24/2014.1.19.오전)
1.오늘 본문을 보면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 부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부흥의 열기와 속도가 얼마나 뜨겁고 빠르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그 사실을 조사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오사카 중앙교회가 올 해로 창립 30주년을 맞게 됩니다.
보통은 30년이 지나면 교회가 안정기에 들어가서 모든 면에 든든해져서 선교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일들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개척교회처럼 연약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도 2014년도에는 교회가 더 큰 능력을 받아서, 세계선교의 문을 열었던 안디옥 교회처럼, 부흥이 일어나고 많은 능력과 축복을 받아 받은 복음과 은혜를 온 세상에 나누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의 역사 가운데 특히 이방선교를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은 안디옥 교회의 부흥의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무엇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안디옥교회의 부흥을 가져 왔습니까?
2. 첫째는 환란을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이 부흥의 역사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안디옥 교회의 출발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러난 환란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일이 무엇입니까?
스데반은 예루살렘교회의 말씀과 성령에 충만하여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7명의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6:8절에 보니 "스데반이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 고 있었습니다.
그는 각 회당에 찾아다니면서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과 변론하기도 했는데,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스데반을 말을 이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분노한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거짓증인을 내세워 하나님과 율법을 모독한다고 증거하게 하였고, 이 일로 분노한 군중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에 예수 믿는 자들을 향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는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많은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일부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키로 떨어진 수리아 안디옥으로 피신하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열심히 전도하여 선교의 이정표가 된 안디옥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빈손으로 도망간 낮선 곳에서도 두려워 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사모한 나머지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처럼 새로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것입니다.
3. 우리가 만나는 고난과 실패와 예기치 못한 환란을 인하여 낙심하거나 불평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1966년 6월 25일, 이탈리아의 밴 배누티 선수를 꺾고 한국 최초로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 되어 대한민국의 영웅이 된 김기수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각의 링은 비정한 세계다. 그러나 링 바깥은 더 냉혹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상이 인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임을 알았기 때문에 영웅이 된 이후에는 가정에 더 충실하고, 성실하게 사업하여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찬송가 383장의 첫 가사가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성도가 누구입니까?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해 안디옥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도 말씀과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입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환란과 핍박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약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낙심하고 원망하고 포기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과 슬픔을 통해 위로 올라가고 새로워지고 더 큰 힘을 얻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당해도,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나도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은혜베푸신 하나님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영광스러운 미래를 주실것입니다.
4. 두 번째로 교회 부흥의 역사는 말씀과 기도 이외에도 성도들의 열심, 특히 담대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 스스로는 자존심이 높았지만, 로마가 지배하는 헬라 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은 침략 당한 열등한 나라요 유대인은 3등 족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믿는 여호와는 자기 백성도 지켜 내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신이었습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세계를 정복한 로마조차도 그리스의 헬라문화를 수용하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생각하면, 유대인이 헬라 사람들에게 유대 사람들의 신앙으로 여겨졌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로 충만했던 그리스도인들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 없이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신사나 불교 조상숭배 등의 토착종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만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위에 한국은 일본에 식민지 생활을 했고, 그 덕분에 경제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에 일본보다 성장이 늦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 일본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보다 강하고 뛰어나고 능력이 있으면 가까이 하지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전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언어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서투른 일본말과 일본 사람들이 가진 풍습과 습관을 잘 모르다보니 잘못하면 전도의 길을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5. 이것은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니 이런 것이 복음을 막을 수 없고, 전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의 기도는 죽은 자를 살리고, 넘어진 자를 사랑으로 세우고, 힘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망과 능력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유대인 헬라인, 한국사람 일본사람 그리고 중국 사람을 구분하지만, 복음에는 국경이 없고 민족의 차별이 없으며, 성령의 역사에는 언어나 문화의 장벽이 없이 동일한 생명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37장에, 골짜기에 덮인 마른 뼈들을 향하여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37:4-5)하였더니,
뼈들이 움직여 서로 들어맞기 시작하였고,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여 마침내 그 속에 생기가 들어가니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 21절은 성도들이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을 열심히 증거하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했습니다.
전도해도 믿을 것 같지 않고, 타 지역에서 온 이방인들을 차별할 것 같았는데, 막상 나가서 전조해 보니 예상 이외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6.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님이 손이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역이나, 교회 부흥의 역사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에 붙들려 심령에 불이 붙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에 그들은 성령이 이끄시는 데로 무작정 나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다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의논하고 연습해 보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얻은 결과가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받기를 사모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모였더니 성령 충만하였고, 성령의 이끄심을 받고 순종하였더니 매일 기적과 능력과 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전도자를 통하여 선포될 때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고통 하는 육신과 저주받은 환경이 치료되고, 낙심한 자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며,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그들 위에 강권적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국가나 인종이나 문화의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한 구원의 역사는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의 역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칠 때, 주님의 손길이 함께하여 교회도 부흥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도 성령의 새로운 바람으로 큰 구원의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할 때, 죽은 뼈들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함께 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비된 영혼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7. 셋째는 바나바 같은 지도자가 함께 사역함으로 더 큰 부흥을 가져온 것입니다.
안디옥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전해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보내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바나바는 믿고 구원받은 이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행4:36-37절에 보면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9장에 보면 사울이 회심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나고자 하나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만나주지 않을 때, 바나바가 그를 데리고 사도들 앞에서 그를 변호해 주었습니다.
본문 24절은 그를 가리켜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착한 성품과 뛰어난 믿음의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게 하였고, 하나님도 그의 사역을 축복하여 그의 전도를 통하여 "큰 무리가 주께 더 하는"역사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의 이름의 뜻이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28절 이하를 보면 흉년을 만나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각 지역에 있는 교회가 모금을 하였고, 그것을 전달하는 일을 바나바가 맡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정직한 사람보다는 말 잘하는 사람이 인기가 많고, 믿음의 사람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뛰어난 사람이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바나바 같은 사람이 인정받고,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귀하고 복된 일꾼인 줄 믿습니다.
8. 2014년 올 한 해도 우리가 어떤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무엇에 힘을 써야 합니까?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을 외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 시며, 왜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은 어디에 계시며, 장차 그가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며,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며,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저주 가운데 있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롬1:16)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21절에,"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매 수다한 사람이 주께 돌아오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안히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혼자 받고, 믿으면 혼자 조용히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평안해지면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서 거기서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천하 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요,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영생을 주시고자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은 환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열정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였고, 바나바 같은 사람은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착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시아와 온 유럽을 복음화하시고, 그 땅을 축복하셨습니다.
이런 역사가 올해부터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