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9.이스라엘의 구원(출애굽기 14:1-14)
[성경본문] 출애굽기14:1-14개역개정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10.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출애굽기 14:1-14/2014.3.9.오전)
1.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군대와 40일간 대치하면서 골리앗의 위협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부친의 심부름으로 전장을 찾아온 다윗은 이스라엘을 향한 블레셋의 모욕하는 말을 듣고는 의분을 일으켰습니다.
삼상17:26절을 보면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고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위협으로 두려움에 빠져 있었지만, 어린 소년 다윗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임을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에 대하여 두려움 대신에 확신과 용기를 가졌습니다.
바로 이 믿음과 용기로 골리앗을 이기고 위기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과 연약함 속에 사로 잡혀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동안 애급의 노예로 살았지만 노예라는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만한 그 어떤 능력이나 징조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어쩌면 애급이 망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애급을 벗어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본문 10절 이하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쌍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라고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10가지 재앙을 애급에 쏟아 부으심으로 강퍅한 애급 왕을 굴복시켰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2. 모세는 바로가 자신의 손으로 내 쫓아 버린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기 전에 급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출애굽 하였기 때문에 어떤 구체적인 작전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전략은 애급 사람들이 볼 때에는 형편이 없었습니다.
13:18절을 보면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 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원래 가야하는 가나안을 향한 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2절 이하에 보면, 그들이 바닷가에 진을 쳤다고 했는데, 이것이 애급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애급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계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마디로 애급에 대한 전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애급은 강한 군대가 있었고 또한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바알스본 앞 바닷가에 진을 친 것이 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위기 가운데 들어간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싸움은 누가 보아도 처음부터 승부가 난 싸움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사막의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애급의 큰 군대를 보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3. 사람의 본성은 평안하고 넉넉할 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심성이 착하고 정직하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막다른 곳에 부딪히면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위기 속에서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범죄자들의 대부분은 이웃 사람들이나 그를 아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런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그 사람의 본성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지금까지 주위의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서 죽인 것은 그 속에 살인자의 분노가 잠재해 있던 것이 어떤 계기로 폭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선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육체의 정욕과 죄악의 세력이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격과 삶이라는 표면에 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평소에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고 순화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평생에 자신 속에서 또 다른 자신과 싸우는 사람입니다.
이 싸움을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이기는 싸움이 되게 하려면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4. 이스라엘이 막다른 길에 갇힌 상황에서 애급의 추격을 받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10절에 보니 심히 두려워했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날 때 두려움의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11절에서는, "애급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하였고 12절에는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급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급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도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의미는 날카로운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통곡했다는 의미로, 그들이 여호와께 무엇을 말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자신들이 겨우 애급의 손길에서 벗어나서 자유의 몸이 된다고 믿었는데, 눈에 보이는 현실은 자유는 고사하고 생명이 위태함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르짖음은 기도라기보다는 절망의 부르짖음, 불평과 원망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옛날 말에 잘되면 제 탓이요 못되면 남의 탓이라는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스라엘이 모세를 향해서 이런 불평과 원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이 누구며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들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이 애급에서 노예로 살아도 이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며, 결코 잊어서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영원한 저주와 고통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은혜이며 죄인을 향한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그 분의 거룩한 도구로 내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5. 그런데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할 때에, 상대방이 고집을 부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 오지 않으면, 그렇다면 너 마음대로 해보라고 합니다.
이쪽의 진실을 몰라주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고맙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너 때문에 일이 잘못되었다고 원망이나 불평을 듣게 될 때 이런 말과 이런 자세를 가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이것은 큰 허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졌고,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세계의 역사와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자신들의 수준과 가치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전무후무한 대 반전의 역사입니다.
애급왕은 10가지의 재앙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지혜로운 생각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이스라엘을 추격하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애급나라를 결정적으로 망하게 만들었고 이스라엘은 애급에서 결정적으로 구원받는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어려움이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예상 이외의 상황은 결코 위기도 아니며 장애물도 아니며, 도리어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또 다른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홍해 바다의 기적입니다.
6.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 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수준에 우리 자신을 맞추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며 그 분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그것이 선지자나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전달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확신에 넘치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2절에 이스라엘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는데 애급 사람들은 도리어 그곳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믿음의 결과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올라가고, 불순종하면 할수록 마귀가 원하는 수준으로 내려갈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이 홍해를 건넜지만 애급 사람들은 말씀과는 관계없이 건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때의 사건을 기록하기를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급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 (히11:)다고 했습니다.
7. 바다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고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곳에서 구원하셨고, 애급 사람들의 매장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추격하는 그 추격을 무력화 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인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시62:1) 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다윗은 옛날의 이 사건을 생각하며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도 원수의 공격을 받았고,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그 어떤 도움도 신뢰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음으로 같은 경험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의 문제와 위기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위기와 문제만 바라본다면, 애급 군대로 인하여 두려움에 빠지는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문제와 위기의 배후 속에서 역사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에게 임한 위기는 도리어 기회가 되며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셨으며, 왜 애급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이스라엘을 건너가도록 하지 않고 애급 군대를 기다리게 하셨습니까?
이것은 자기 백성의 구원과, 대적 애급의 멸망을 그들의 눈으로 목도함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구원을 체험하고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8.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우려를 하고 있는데, 교회의 생명이란 세상과 다름에 있으며, 말씀을 가까이 할수록 그 생명력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세상을 보는 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와 위기를 고통과 실패의 기회로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리어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이켜 다른 길로 가게 하시고, 바알스본 앞 바닷가로 인도하신 것은 홍해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구원하시고 애급은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