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12.적신신앙의 가정(욥기1:20-22)

[성경본문] 욥기1:20-22개역개정

20.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적신신앙의 가정(욥기1:20-22/2013.5.12.오전)

1. 욥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진 거듭된 재앙들로 인하여 자녀들과 종들과 모든 재산을 잃고 하루아침에 잿더미 위에 앉고 말았습니다.
그 위에 온 몸은 악창으로 뒤덮여 잠시라도 사금파리로 제 몸을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모든 소유를 잃고, 10명의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렸겠습니까?
욥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엄했으면 하루아침에 욥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해 소개 받는 욥이라는 인물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1)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7명의 아들들과 3명의 딸들을 두었으며 그의 재산과 사회적인 명성은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특히 1:5절에 보면,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고 함으로 그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하나님이 그를 보시는 삶의 모습에서 얼마나 경건한 사람이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심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선악을 구분할 줄 알고, 악행을 삼가고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의 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인과응보가 따라 온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인과응보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종교나 신앙심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차마 필설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욥이 당한 이 고난이 과연 그의 악행이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이 고난을 당한 이후에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욥의 재난이 하나님의 심판이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과응보와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의 달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욥의 고난을 통해 성도의 가정, 더 정확하게 말해서 부모의 신앙과 삶이 자녀들 앞에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고난당하는 욥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 신앙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한마디로 적신신앙이요 하나님 주권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고 했습니다.
적신이란 벌거벗은 알몸뚱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다고 고백하는 이 말은, 욥이 모친의 뱃속에서 나올 때 수많은 양과 소와 낙타를 끌고 나온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벌거벗은 상태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총과 축복을 누리며 감사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이 땅에 출생할 적신으로 온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보니 욥의 인생의 출발점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욥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을 발가벗기시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욕하고 저주하며 하나님께 반항하기를 원했지만, 욥은 고난 속에서 도리어 적신 신앙과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말았던 것입니다.
욥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땅에 엎드려 평소에 하던 대로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욥과 같은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직장을 빼앗기고 사업을 빼앗기고, 살던 집을 빼앗기고 건강을 빼앗기고 우리도 자녀들을 잃을 수 있으며, 살던 집을 빼앗길 수 있으며 내가 원치 않는 재앙들이 내 삶 가운데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내가 세상에 올 때 적신으로 온 것을 아는 것과, 이 모든 고통과 재앙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 즉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3. 기독신자의 가정에서 문제 자녀들이 많이 나오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할 때 자녀들은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닙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가정에서 부모들의 신앙과 삶이 자녀들이 보는 시각에서 지나치게 이중적이기 때문입니다.
핵가족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단절되고 그래서 가정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부모 자식 관계없이 서로가 일에 좇기고 세상 즐기는 일에 좇기다 보니 예수님 믿는 가정에서도 가정예배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자녀들이 교회 나오지 않는 이상은 더 이상 찬송을 들을 일도 없고, 기도할 일도 없고, 말씀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즘 교인들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기도응답이 없어서 그만두고,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가 주는 갈등 때문에 그만두고, 어려운 일이 너무 많거나 세상일이 너무 바빠서 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20절에 보니 욥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욥이 당한 고난만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부정정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당한 고통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은 인생의 모든 것, 시작과 진행과 결말이 전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4. 사람은 잘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남의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0절에 욥이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자녀들의 죽음 앞에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슬픔과 고통의 표시였습니다.
죽은 자녀들이 당한 죽음의 고통과 슬픔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10명의 자녀들을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음을 당했으니 그가 당하는 슬픔과 고통은 죽은 자가 맛보는 고통과 슬픔으로는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들을 먼저 보내고 나서 고백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도 "그리로 돌아갈 것" 이라는 것입니다.
소원대로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듯이 성도가 예기치 못한 환란과 고통에 빠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임을 욥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않는 일을 당하면 늘 왜? 왜? 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다루시느냐고 항변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결국 내 생각이 옳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모든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의심하고 불신의 마음을 쏟아내지만 욥은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었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고백이 나왔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 다는 것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 라는 것입니다.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 것" 이라 했습니다.

5. 평상시에 우리는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만나고 환란 가운데 떨어졌을 때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그 때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신앙을 대변해 주고, 그 때 우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욥은 원치 않는 고난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가 세상 명예나 물질이나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그를 변함없이 섬기고 찬양으로 경배하는 이것이 참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욥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이 고백은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는 고백과 같은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31:5절에 있는 말씀으로 유대인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기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21세기의 성도들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고 복을 받으려면 모든 가정에 욥이 있어야 합니다.
욥과 같이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인 신앙과 삶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볼 때 자랑스러운 아버지, 아내가 볼 때 부끄럽지 않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6. 이번에 대통령의 방미에 수행원으로 따라간 청와대 고위층 인사가 미국에서 성추행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나라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저는 이런 유사한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가정, 그 가족들입니다.
가족들 앞에서의 아버지의 얼굴, 남편의 얼굴입니다.
이번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진위가 판명되겠지만 이 사건을 보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런 아버지, 그런 남편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돈이 없으면 힘이 없어지고 우울하고, 돈이 생기면 웃음이 생기고 마음이 든든해진다면 이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밤잠을 자지 못하고 이를 갈고 통분의 눈물을 흘린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욥은 거듭된 비보를 들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의 아내가 무엇이라고 욥을 책망하고 있습니까?
욥이 정신이 이상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생각하고 매우 지혜로운 척 조언하는데,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는 것입니다.
이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하나님을 향해 엎드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욥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은 그의 대답에서 분명해졌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2:10).
잘못된 생각을 가진 말에 대하여 성경적인 분명한 대답을 주었습니다.

7. 오늘의 설교가 욥을 영웅적으로 높이는 그런 설교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고난 속에서도 말씀에 근거하는 생각과 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욥의 신앙은 사람의 가치가 물질이나 환경에 좌우되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어떤 일을 만나고 어떤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해도 그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변함없이 내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적신신앙이란 벌거벗은 신앙, 즉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물러서지 않고 거듭 욥을 공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욥을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제 인생에서 빼앗긴 모든 자리에, 그 모든 빈자리에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우고, 그 빼앗긴 자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갑절의 축복 갑절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서 적신신앙, 곧 하나님의 주권을 볼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된다면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것이고, 욥처럼 다시 일어서는 축복의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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