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19.성령 충만한 사가랴(누가복음1:67-80)

[성경본문] 누가복음1:67-80개역개정

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령 충만한 사가랴(누가복음1:67-80/2013.5.19.오전)


1.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타임지 최신호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표지에는 젊은 여자가 엎드려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었고, 타이틀 문구는 Me Me Me Generation(나, 나, 나 세대) 이었습니다.내용은 보지 못했지만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그 중에 특히 젊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잠자리에 들어갈 때 까지 세상만물은 전부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그래서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에고이즘(egoism)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타인이나 이 사회에 대한 배려는 전연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만을 고집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경우만이 아니라 요즈음의 한, 일, 중, 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국가의 정치나 외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 나라들 사이에서 조차 정의는 고사하고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자국에 이익이 되면 그것이 곧 선이고 정의이며,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전부 악이고 나쁜 것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정치도 하고 외교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에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치가들이 보여주는 잘못된 역사관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국제적인 갈등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고 있는 것은 이 사람들 역시 Me Me Me Generation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와 갈등은 근본적인 치료 없이는 증폭이 되고 언젠가는 폭발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런 시대,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아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 사람들은 문제가 일어나고 갈등이 증폭되면 돌파구를 찾기 마련입니다.
술주정뱅이는 문제가 생기면 술부터 찾고, 쾌락에 빠진 사람들은 성이나 도박이나 각종 오락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 밖에 인터넷 의존증, 자학 의존증, 스포츠 의존증, 설탕 의존증 등 끝이 없을 정도로 그 증상은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갈등과 문제 앞에서 어디로 가야합니까?
어디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어떻게 해야 갈등을 벗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늘 주어진 말씀은 이 시대의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와 갈등들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고 해결해 주는 중요한 말씀인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은 아비야 반열에 따른 제사장 사가랴의 가정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늙도록 자녀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났고, 늙은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할 것을 알리면서 태어날 아이는 나실인으로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지정해 주었습니다.
미처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신하는 사가랴에게 일시적으로 천사는 그를 벙어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3. 그런데 1장 전체를 통해서 우리가 주목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태어날 아이 요한을 포함하여 그 모친 엘리사벳, 그리고 부친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가정의 모든 식구가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1:15절에 보면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리라고 하였고, 41절에는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를 향해 축복을 선언하고 있으며, 67절에 가서는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였다고 했습니다.
가정의 온 식구가, 앞으로 태어날 어린 아이까지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함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사가랴의 성령 충만한 가정이야 말로 문제 속에 빠져 갈등하는 시대를 치료하는 열쇠가 되는 줄 믿습니다.  
엘리사벳은 또한 성령으로 충만한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언약에 신실하산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리아와 그 태속에 있는 생명을 향해 아낌없는 축복을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성령의 사람 마리아의 문안을 받을 때 이미 6개월이 지난 엘리사벳의 태 속에 있는 요한이 이 사실을 알고 복중에서 춤을 추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삼하6:16절에서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법궤로 인해 다윗이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춤을 추던 것과 같은 의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태중에 있는 아이라도 이미 세상 사건에 관여를 하며, 자신이 출생하여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미리 예감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요한은 나중에 오시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준비를 위해 미리 태어나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태속에서 기뻐하며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태속에 있는 아이가 또 다른 태속에 있는 생명을 알아 본 것입니다.
이것은 67절의 사가랴가 성령 충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선포한 것과도 일치하는 행동입니다.
한 마디로 이 가정은 부모와 자식이 다 함께 성령으로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외친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집안을 통해 구원의 메시아가 이 땅에 임재 하시는데, 이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예언되어진 대로 이루어짐을 확신하면서 선포한 말씀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한 부모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메시야를 통해 이 땅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가정에서 부모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 곁에서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녀들이 듣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바로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교인들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세상 자랑하고 자녀 자랑하고 남편 자랑하고 반지 옷 자랑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성령 충만이 아니라 세상 충만의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1장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며 무슨 말을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우리는 성령 충만한 가정과 그 가장인 사가랴를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그것을 담대히 선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계획과 방법이 있습니다.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니 사용하신 방법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 요셉의 가정을 통해 세상에 보내시는 것이었고, 이 일을 준비하도록 제사장 사가랴 가정을 통해 세례요한을 준비하심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가정이나 사가랴의 가정은 메시아 되신 예수님의 초림을 위해 준비된 가정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가정은 왜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내셨습니까?
장차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우리 가정들과 우리의 자녀들을 준비하신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나오는 이 사람들의 성령 충만의 결과는 예외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시는 이 땅의 구원사역을 위해 자신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심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확신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갖게 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성령 충만하고 의심 없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보면서 요한은 가슴 벅차고 감당하기 어려운 영적 감화를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6. 둘째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신들의 가정에서 출생한 나실인 요한에게 부여된 시대적인 사명과 그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세상 부모는 자녀에게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유명해 지는 것을 기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무엇을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곳에 초점을 맞추고 기도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미래와 그 받은 사명을 꿰뚫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가 먼저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나 밖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자기만 행복하고 좋으면 그만인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사벳과 사가랴로 하여금 태중에 있는 요한의 장래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을지 76-77절에서 분명히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녀의 갈 길은 부모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시고 그것을 위해 부모에게 믿음을 주시고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신 후에 그 가정에 출생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부모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길을 자녀들이 잘 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7.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도우는 것이 됩니까?
부모 된 내가 먼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 영적인 감화를 자녀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의 지구촌에는 많은 발명과 발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서구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제는 지구상의 모든 수수께끼와 생명의 의문들이 풀릴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의술이 발달할수록 그들이 생각했던 해답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DNA가 밝혀지고 복제 인간이 눈앞에 다가오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더 깊은 신비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12:12)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부를 많이 한다고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다고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만드신 세상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피조물된 인간이 하나님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배우며, 은혜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뿐입니다.
사가랴의 가정은 장차 태어날 요한이 무엇을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으며, 왜 이 가정에 귀한 생명을 주셨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아들 요한을 위해 영육간에 신앙교육과 인격교육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8. 예수 믿는 가정이라도 그 부모의 입에서 부정적이고 불평 낙심하는 소리가 나오면 세상 아이들 보다 더 비뚤어진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부정적인 말이나 불신앙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에서 믿음의 소리가 나오면 그 자녀에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세계관이 나올 것입니다.
자녀에게 있어서 인생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존재하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기회요 도구며, 세상은 그 일을 이루는 방법임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사명 있는 사람으로 키우면 그 사명이 다하기 까지는 우리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부모의 입술은 긍적적이고, 찬양과 감사가 늘 넘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그 입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영광 받으시며, 자녀는 듣고 영적인 감화를 받아 한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이것 보다 더 복되고 귀한 일어 없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 사가랴 가정이 요한에게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80)는 말씀입니다.

9. 자녀를 품에 안고 원하는 것을 다해준다고 바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품 안에 있을 때에는 말씀과 성령의 사람으로 교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장하면 부모의 품을 떠날 때 비로소 세상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사명자가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성전에 맡겨 엘리 제사장의 지도를 받게 함으로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가난해서 늘 빈들에서 혼자서 양떼를 돌보면서 자랐지만 하나님이 그를 최고의 임금으로 키워주셨습니다.
모세도 그 부모가 나일강에 던졌지만 하나님은 그를 주워 바로의 왕궁에서 40년을 키워 주셨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해방을 실현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도 어린 나이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 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요셉도 어린 나이에 애급에 노예로 팔렸지만 하나님이 그를 세계의 국무총리로 키워 주셨습니다.
“빈들에 있으니라”이 말은 자녀를 무책임하게 내다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녀를 양육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까지 부모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부모는 자녀를 세상에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부여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만드는 줄 믿습니다.

성령 강림절을 맞아 우리도 67절의 사가랴처럼 성령 충만한 부모가 되어 온 가정이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는 축복의 가정과 부모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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