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5.우리 아이들의 장래(창세기 38:1-11)
[성경본문] 창세기38:1-11개역개정
1.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우리 아이들의 장래(창세기 38:1-11/2013.5.5.오전)
1. 세상의 모든 가정의 출발점은 행복에 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행복 보다는 많은 문제점과 갈등, 아픔이 먼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성경 안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 일어난 가인과 아벨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가정의 문제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가정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비극적인 가정의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유다가정의 비극입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행사가 어린이 주일 행사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그 배후에 보이는 존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의 모습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도 한 때는 어린아이들이었고, 그들도 부모님 아래서 양육 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부모를 보면 그 아이들의 미래가 보이고 장래가 보인다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다 가정의 문제점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장래와 우리 가정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유대 가정의 비극은 그 가장인 유다가 이방여인과 결혼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3절에 보면,"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금하시는 이방여인과 결혼하여 장자 엘을 낳았습니다.
그의 조부인 이삭이 가나안 여자가 아닌 친족 중에서 리브가를 택하여 결혼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유다는 이방여인을 통하여 3명의 아들인 엘, 오난, 셀라를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 셋을 얻을 정도로 유다 가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문제는 장자인 엘의 결혼을 통해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다 자신이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혼이라는 것을 하나님과 아무런 의논도 없이, 그저 가나안 여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해 결혼한 것처럼, 제 자식을 결혼 시키는데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이방여자와 결혼을 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가정의 대사인 결혼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하는데, 믿음의 가정인 야곱의 장자격인 유다가 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그 사실이 본문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고 했는데,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갔다는 이 말은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가정인 야곱의 집안 울타리를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그곳은 바로 가나안 족속들 한 가운데서 시작한 것입니다.
유다는 그곳에서 알게 모르게 하나님 없는 이방인들의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에 영향을 받았고, 그런 삶의 모습이 장자 엘에게 영향을 주었고, 엘은 성적으로 매우 방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3.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여전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특히 인간은 죄로 말미암은 그 부패한 성향 때문에 살고 있는 환경과 조건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살고 있는 지역이나 환경의 조건이 중요합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 어떤 직장인가 이것도 중요합니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왜?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으며, 그것 때문에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 쉽게 세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한 가정의 가장인 유다의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삶이 그 가정과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7절의 말씀이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고 했지만 정확히 그의 죄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직접 그를 죽이실 정도로 엘은 악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다 가정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형이 자손을 보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대를 잇기 위해서 형수와 함께 사는 "계대결혼" 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의 대를 잇게 했지만, 오난은 그 명령을 반복해서 거역하므로 10절에 보니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다고 했습니다.
4.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다의 아들 둘이 거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예상치 못한 죽음을 당하는 이 사건 속에는 유다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유다가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을 잇는 신앙의 공동체에서 이탈되어 제 멋대로 살면서 가나안 즉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유다의 자녀들이 거듭된 죽임을 당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도무지 용서받지 못할 악을 행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시는 중요한 한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유다의 가문을 통해 보내시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계획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서라도 그 뜻을 이루시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속된 말로 하나님께 매 맞고 모든 것을 잃고 소돔 성의 롯처럼 모든 것을 다 빼앗고서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아들을 둘씩 잃으면서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막내아들 셀라마저 죽을 것을 염려하여 며느리 다말을 시집으로 돌려보내고 말았습니다.
5. 잠언 10:13절에 보면,"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유다를 위해 하나님은 더 큰 재앙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억울하게 시집으로 쫓겨난 그 며느리가 스스로 창녀로 변장하고 유다를 유혹함으로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를 출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유다는 의로운 척 했지만 그의 이름이 이미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믿음의 가정 유다 집안은 아버지 유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아들들에 이르기 까지 도무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머리를 쓰는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속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어 버리게 되면 그 때부터 우리 마음에 무엇을 무엇이 사로잡는 줄 아십니까?
세상과 사람을 돈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하나님 섬긴다고 하고, 하나님이 두렵다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삶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이 더 두렵고 세상이 더 두렵고, 경제적인 결핍에서 오는 고통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욥3:25절에 보면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에 내 몸에 미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를 가까이 하시고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유다는 아들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지만, 도리어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하고 말았고, 이것이 또 다른 실패와 고통을 불러온 것입니다.
유다 가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려고 했지만,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세상 사람들처럼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엄중한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그리고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당연한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재앙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6. 우리 아이들의 장래는 부모가 뼈를 깎는 노력으로 헌신하고 사랑해 준다고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야곱의 아들 유다라도 감당할 수 없는 징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 두려워할 줄 몰랐기 때문에 행복해야할 가정을 수치와 고통과 죽음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며칠 전 조선일보에 보니 충남 아산에 가면 소나무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30-40대 부부 8쌍이 좋은 직장과 서울을 버리고 소문난 좋은 초등학교가 있는 이 시골에 내려와 공동으로 마을을 만들고 어린아이 17명을 함께 키운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자신들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 안가고 농사를 지어도 좋으니 행복하고 올바른 사람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쟁 없이 시험 스트레스 없이 자연 속에서 키운 아이들을 세상이 알아 줄 날이 올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제 자녀를 바로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결단하였고 무엇을 포기했습니까?
유다처럼 하나님 떠나 제 마음대로 살다가 자녀도 적당한 세상사람 만나 결혼시켜 그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작정입니까?
만일 그런 생각으로 가정을 이끌고 그런 생각으로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유다 가정에 큰 대가를 치루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런 가정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 앞으로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교회의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 바로 섬길 줄 알고, 때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우리 자녀들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한 것처럼 그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본으로 보이기 위한 첫 걸음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셋째로 가정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가정이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한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가나안이 흉년이 들었고, 이삭의 때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흉년이 들었는데도 왜 떠나지 말하고 합니까?
세상 지혜는 흉년을 피해 애급으로 내려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흉년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삶의 모습과 지혜를 가정예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찬송 소리가 끊어지지 아니하는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자녀들에게 귀한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장래는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이나 많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하며 하나님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진 부모에게서 시작되며, 그런 부모의 기도와 말씀 중심의 삶에서 자녀들의 성공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