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6.자비의 마음(마태복음12:1-21)
[성경본문] 마태복음12:1-21개역개정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자비의 마음(마태복음12:1-21/2012.2.26.오전)
1. 김영봉 목사님이 쓴「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라는 책을 보면,시무하시는 교회의 장로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임상병리학 교수를 지내신 분으로 평생을 의학계에 사시던 분이지만, 질병에 관해서 만큼은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늘 새벽기도를 다니는데 어느 날,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자 허리통증 치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지만 점점 더 심해지고 나중에는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술 날짜가 되어 의사를 만나기 위해 그 날 아침 침상에서 일어나는데 통증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잡고 이를 악물고 걸었는데 몸은 깃털 처럼 가벼웠고 걷고 움직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갑작스러운 이런 변화를 의사의 머리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이나 생활 습관이나 환경이 바뀐것도 아니고 특별한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평생 가지고 있던 신념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뿐 아니라 지금도 적극적으로 기적을 간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역사하시고 치료도 하시지만, 원래 하나님의 손길은 부드러운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즉시 어떤 효과나 결과를 기대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지 아니하시고 순리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질병이나 통증으로 고통 당하고 있을 때 간절히 기도한다고 그 순간 통증이 멈추거나 질병이 갑자기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따라, 자연의 법칙을 따라 호전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 이 책에서도 성도들의 질문이 나오지만, 사실 우리 자신들도 생각해 보면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도리어 직장을 잃게 되고, 자녀의 입학시험을 위해 새벽기도에 열심을 내면서 기도하고, 가족의 질병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는데 그 결과는 반대가 되고 만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의 경우도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면 도리어 어려움이 오고 빈자리가 늘어만 갔습니다.
시험을 이기게 해 달라고 하면 더 많은 시험들이 닥아 왔습니다.
하다못해 경매에 나온 건물을 입찰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우리가 낙찰 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습니까?
우리가 이런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지금 이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지금쯤 벌써 교회가 사라지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28년째를 맞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온 창립멤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입니다.
우리들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 속에는 늘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있었고,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그 분의 자비로운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섭섭하고 안타깝고 이해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받은 은혜요 축복이요 또 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런 모양을 멀리서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벌떼 같이 예수님께 달려들어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제자들의 행위를 빌미삼아 예수님을 공격하고 그들의 올가미에 얽어 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의 밭에서 이삭을 잘라먹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신23:25절에 보면,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이삭을 따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평일이 아닌 안식일에 일어난 것을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노동을 해서는 안 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노동에 해당하는 추수를 했고, 탈곡을 했으니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전통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39개 항목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보면 불을 피우지 말 것, 상거래를 하지 말 것, 여행을 하지 말 것, 악행을 일삼지 말 것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4계명인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바리새인의 공격을 받으신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3절 이하에 기록된 다윗과 그와 함께한 병사들이 제사장 이외에는 먹을 수 없는 성전의 진설병을 먹은 것을 예로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제사장은 안식일에도 성전 안에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전부 잘못된 것이고 범죄에 해당하는 사안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율법을 어긴 죄로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은 예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 다윗과 그 병사들이 사울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상태에서 아사 직전에 이르고 말았을 때, 그들이 잠깐 피하여 숨은 곳이 성막이었고, 그 때 제사장이던 아히멜렉이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재단에 올려졌다가 새것으로 대체 되어져 내려온 떡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삼상21:1-6).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을 범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율법의 정한 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 법정에서도 언도를 내릴 때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있고 예외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걸고 넘어지려고 했지만, 근본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
본문 전체가 강조하는 것은 원리도 중요하고 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비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7절에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호세아 6:6절에 기록된 말씀인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 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는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법이나 원칙이 아니라 자비요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말씀이 제사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일에 제사와 자비의 문제가 서로 충돌한다면 자비를 먼저 선택하고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명확해졌습니다.
율법도 귀한 것이고 지켜야만 하지만 더 귀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5. 안식일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을 다시 공격하려고 한 쪽 손을 쓰지 못하는 병자를 데리고 와서 이 병자를 안식일에 치료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구덩이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양을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건져내지 않고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고, 적극적으로 그 병자의 손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강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비입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은 문제를 삼고 있습니까?
그들이 지나치게 의롭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그토록 말씀에 충실하기 때문입니까?
그들에게는 열정도 있고, 바른 가치관도 있고, 원리대로 하려고 하는 충성된 마음도 있지만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자비로운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강조하고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원칙입니다. 법입니다. 규칙입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우리의 삶에서 원칙대로만 한다고 하면, 살아남을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과 싸웠습니다.
우리 교회 옆에 1,2,3 빠찡고가 생기면서 날이면 날마다 경찰이 우리 교회 앞에서 진을 치고 교통 단속을 하는 바람에 교인들이 힘들어 합니다.
주일날 교인들이 어린 아이나 노인들, 산모 등의 가족들을 교회 앞에 내려 주려고 정차를 하면 경찰이 차를 세우지 못하게 하고, 예배 시간에도 호루라기 소리며 자동차 사이렌 소리로 요란합니다.
경찰이 교회 앞에 진을 치고 있으니 불법 체류자는 얼씬도 못하고 경찰을 무서워하거나 문제 있는 사람들은 교회 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면서 수년이 흘렀는데, 지난주에 교회 앞에서 짐을 내리는데 보도이니 차를 빨리 치우라는 것입니다.
평소의 감정도 있어서 한참 항의를 했더니 경찰은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6. 이 세상이 온갖 부조리와 문제 속에서도 세상 표현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은 자비로운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지 결코 원칙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남의 형편을 이해 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식 결혼식에 친구의 축의금을 보고 너무 이상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2만5천원 이라는 숫자는 어중간한 숫자며 친구의 형편을 생각하면 동그라미 하나 쯤 빠져 있는 것만 같았고 아무래도 무슨 착오가 생긴 것 같아서 이래저래 알아보니, 그 친구가 회사 중역에서 실직이 되어 사업에도 실패하고 지방에 가서 나이 먹은 부부가 통닭구이를 하면서 엄청 고생하고 있더랍니다.
2만5천원은 그 전 날의 하루 매상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럼 모든 사실을 알고 난 이 친구는 어리석고 못난 자신 때문에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만일 배고픈 사람이 찾아와서 구걸하는데 오늘은 안식일이니 배고프지만 내일까지 참고 있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안식일에도 병자를 향하여 그 병든 손을 내밀라고 명령하셨고,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죄인들과 병든 자들과 불상한 인생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하나님께 버림당하는 십자가 지심도 거부하지 않으셨고, 모든 고통과 슬픔도 참으셨습니다.
우리가 주일 마다 교회를 나와 하나님 앞에서 예배 할 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인 줄 믿습니다.
집 안에서나 교회에서도 원칙만 따진다면 서로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할 때 약속한 것 못 지킨다고 따지기 보다는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상대방을 불쌍히 생각하고 도리어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다면 약속은 못 지켜도 행복할 수는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불쌍히 여기고, 아내는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부모는 자식을 불쌍히 여기고, 성도들끼리 자비의 마음을 나누는 것을 주님은 원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7. 그런데 예수님은 자비로운 마음의 구체적인 모습을 20절에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 까지 하리니」
여기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연약하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보잘것없는 사람들, 소망도 없고 아무도 관심도 돌봄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이 사람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는 세상에서 버림당하는 존재이지만 예수님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에게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이유는 그 분의 마음에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있었고, 그 분의 손길에는 치유하고 회복하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너무 힘들어 이곳을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고 배낭을 메고 지구 반대편으로 멀리 멀리 간 적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체험하고 도리어 새 힘을 얻어 돌아 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 해로 일본 선교 만 30년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8. 우리가 받고 경험한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에 대한 예수님의 심판이나 꾸짖음이 아니라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마음이었으며, 그 분의 부드러운 손길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용기가 생겼고 감사가 넘쳤고 새 힘이 솟아 나왔고 절망 속에서 도리어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자비의 마음, 자비의 손길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낙심과 좌절 속에서 새 힘을 얻을 것이고, 고통 속에서 도리어 위로를 얻으며 소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오셨던 선교팀들이 83살의 히가시우라(東浦栄一) 집사님이 목사인 저를 섬기는 모습을 보고, 85살의 쯔지나까(辻中) 목사님이 열심히 우리를 안내하시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그리고 어느 장로님은 자신의 불충한 것을 크게 울면서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법이나 원리를 내세우면서 내 이익이나 권리만을 주장하기 보다는, 상한 갈대를 불쌍히 여기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우리들의 삶의 원리로 삼는다면, 멀지 않아 사람들은 이 교회를 가리켜 예수님 같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고 말할 것이고, 바로 이런 것들이 일본복음화를 이루는 힘이 되며, 우리 주님께 큰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