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4.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마태복음 19:16-30)

[성경본문] 마태복음19:16-30개역개정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마태복음 19:16-30/2012.11.4.오전)


1. 선배 목사님 책에 보니, 말기 방광암 환자가 온갖 약과 치료 수단을 사용했지만 효험이 없자 마지막에는 어차피 죽을 목숨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죽자고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보는데, 마태9:29절에서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암세포가 백혈구를 다 잡아 먹으면서 점점 몸에 퍼지고 있는데, 의사는 백혈구만 증가하면 치료가 된다는 그 말을 듣고 내 몸은 백혈구를 만들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백혈구를 받으라고 하시면서 자기 몸에 백혈구가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6개월을 기도하고 병원에 갔는데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지고 몸이 깨끗이 치료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29살에 일본에 와서 일본 선교 30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우리 교회가 전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28년 동안 교회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저 개인이나 교회, 그리고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까지 이른 줄 믿습니다.
제 힘을 믿고 인생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지만 반드시 벽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우리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부자 청년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을 보니 보통 청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돈도 많고 세련되고 교양도 있고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신앙적으로도 매우 경건하고 열심히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만한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1남 1녀를 키워 결혼을 시키는데 제일 조건으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신앙이 좋은 사람을 원했습니다.
딸은 우리의 소원과 기도제목대로 전도사에게 시집을 가서 지금은 목사님 사모가 되었고, 이제 아들만 남았는데 아들도 좋은 신앙의 사람을 만날 줄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본문의 청년 정도라면 아마 1급 결혼 상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의 말을 들어보면 십계명의 계명 중에 하나님을 향한 계명과 사람을 향한 계명들을 성실하게 다 지켰다고 스스로 고백했으니 얼마나 훌륭한 청년입니까?
객관적으로 볼 때 완벽한 인간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에 소위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 앞에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엄한 책망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 청년을 책망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그런데 이 청년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금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몇 가지는 이 청년이 열심은 있지만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동안 많은 선행을 쌓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지금까지 열심을 내는 종교적인 온갖 선행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인간이 제 스스로에게 절망하고 자신의 경영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을 도울 수 있는 힘 있는 자를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능력 있다고 생각하고 만사형통할 때에는 도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못하고 내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성숙하고 위로 올라가려면 제일 먼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껴 보아야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도 찍혀 보고 뒤통수도 맞아 보아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청년이 인생의 많은 세월을 허비하고 오랫동안 교만한 마음으로 살다가 어느 날 실패를 경험해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아직 젊은 청년의 때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사실을 볼 때, 정말 이 사람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잘 지켰다는 청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게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모든 계명을 잘 지켰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라고 함으로, 이 청년이 계명을 지키는 일에 관해서는 아직 온전하지 못함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청년 스스로는 종교적으로 제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고통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부모를 거역하고 이웃과의 불화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런 문제는 자신이 완벽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청년에 대한 견해와 청년 자신이 보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합니까?
적어도 청년이 주장하는 자신의 온전함의 문제는 제 스스로의 입장에서, 그리고 자기의 능력껏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도 완벽한 종교인이었고, 세상에서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깨닫고 보니 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부끄럽고 문제 많은 인생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원한다면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5.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자신을 희생하고 제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사랑 때문에 스스로가 가난해지고 내 스스로 연약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소유나 내 삶의 방식과 환경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적인 삶이란 자신의 소유는 물론이고 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고후8: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사랑을 표현할 때에 내 희생과 내 아픔을 그 사랑의 항목에서 제외시키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크게 손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내게 속한 것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서 남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말씀하시고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희생하지 아니하셨다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분이 십자가에서 버림당하고, 그 분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생에 이른 줄 믿습니다.

6. 사랑은 누군가의 절대적인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제적으로 남을 조금 도우거나 불쌍한 사람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다고 그것을 가지고 사랑의 행위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심하게 모독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 청년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의무만 충실히 지키면 구원을 얻을 줄로 생각하였고, 그 종교적인 의무들이 마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만일 그가 행한 것들이 정말 참 사랑이었고, 그런 것들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다면, 아마 이 청년은 결코 영생의 문제로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온갖 계명들을 다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열심을 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청년은 고민을 안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에게, 그런 고민을 안고 찾아온 사람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청년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이 청년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2절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근심거리를 해결하려고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도리어 예수님 때문에 더 깊은 근심거리를 얻고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7. 하나님의 계명들을 대표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모세의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청년이 예수님께 대답한 말을 보면 이 청년은 적어도 종교적인 사실에서 보면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했고 이웃도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제 자신의 재물은 조금도 축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재물이 많았고 이것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재물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의심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청년에게 하신 말씀에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고 하신 것은, 그가 지금까지 제 자신의 희생이 없는 형식적이고 지극히 종교적인 사랑만 행하고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에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이 청년의 문제점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소유인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참 사랑을 위해서 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8.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헌 차를 내어 놓는 캠페인이 벌어졌습니다.
새 차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니 헌 차를 팔지 말고 교회에다 내어 놓으면 교인 중에 정말 헌 차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자동차가 600백대나 들어왔는데 이런 글들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유소에 가서 무료로 기름 넣을 수 있는 티켓 5장, 무료 세차할 수 있는 티켓 5장, 백화점에서 사용하는 상품권 두 장, 나는 축복을 받아서 새 차를 타는데 중고차를 주어서 미안하니 주유 티켓과 세차 티켓, 그리고 상품권을 곁들여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니 섬김이니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정해진 것 이외에 더 하는 것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골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담되는 사람까지 섬기는 것이야말로 참 사랑이며, 이것은 자기희생 없이는 감당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청년은 지금까지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한다고는 하였지만 자신의 희생이나 버림이 따르지 않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표면적인 사랑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제자의 조건의 첫째는 자신을 희생하고 버리는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속적이고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희생하게 하신 아가페적인 사랑,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청년처럼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그런 자세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왔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있는 재물이나 세상적인 가치관은 영생을 얻는데 큰 장애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9. 예수님과 청년의 대화를 시종일관 지켜본 제자들이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흉내 내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일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 장이었던 삭개오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마태를 그렇게 변화시켰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렇지만 마태야 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던 사람인데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변화시킨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버릴 때, 주님은 분명한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를 약속하셨고,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된 삶을 위하여,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된 미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자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희생하고 버릴 때, 반드시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영생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으로, 더 귀한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10.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미래는 분명한 약속이 있는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는 일”인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한 삶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나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나는 사랑으로 행한다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갈 수 없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뒤를 좇아갈 결심을 한다면, 하나님은 강도 같은 우리도 변화시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이 세상을 향해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의 사도로 사용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일본 복음화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을 사랑의 도구로 내어 드리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세계복음화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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