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1.이혼에 대한 바른 교훈(마태복음 19:1-15)

[성경본문] 마태복음19:1-15개역개정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3.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혼에 대한 바른 교훈(마태복음 19:1-15/2012.10.21.오전)


1.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결혼은 백년해로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한국 통계청의 보고에 의하면 2011년의 결혼 건수는 329,100건이고 이혼은 114,300건이었다고 합니다.
단순 수치로 보면 결혼한 3쌍 중에 1쌍이 이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2003년도에 이혼 건수가 피크를 이루다가 8년 동안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합니다마는 여전히 비율은 3쌍 중에 1쌍은 이혼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혼의 대표적인 이유는 지난 11년간을 통해서 성격차이가 44.9%, 경제문제가 12.3%, 가족 간의 불화나 학대가 11.8%, 그리고 배우자 부정이 8.1%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이혼 사유의 첫 번째가 성격불일치, 두 번째가 학대, 세 번째가 배우자의 부정이고 네 번째가 경제문제라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부부가 헤어질 때 아름답게 헤어지자고 해서 이혼식을 치르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흐름으로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혼을 위한 이벤트를 만들어 주는 기업들이 비즈니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일본 후생성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경제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이혼률은 증가하는데 반대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이혼건수도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결혼문제를 가지고 와서 그 분을 시험했는데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당시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결혼에 관한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성적 부도덕의 이유 이외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이혼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샴마이 학파가 있었고, 반대로 할렐 학파는 아내가 빵을 굽다가 잘못해서 태워버리는 것만으로도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관해서 자주 의견이 충돌했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예수님께로 가져와서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고 또 예수님의 이혼에 관한 생각을 알아내고자 하는 일거양득이 이익을 노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남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로마 사람들도 결혼이란 단순히 동거를 위한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혼하기로 마음을 먹고 선언하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후대의 랍비들은 제 아내보다도 더 매력인인 여자가 생기면 이혼은 가능하다고 여겼다고 하니 이 사람들이 가진 결혼관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그들의 도덕관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예수님은 대답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명료했습니다.
6절에 보니,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3. 분명히 창2:21-24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만드신 후에 그의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만드셨고,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는 순간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남녀가 비록 성이 다른 육체를 소유하고 있고, 인격체가 각각 독립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창조의 원리를 통해 하나로 묶어 주실 때는 동일한 육체가 됨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9일 일본의 야마나까 신야 경도대학 교수가 인간 세포의 재생의학에 일으킨 획기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의학, 생리학상을 받았는데, 그가 개발한 iPS세포는 그야말로 만능세포라고 불리는 것으로 제 자신의 몸에서 추출한 세포를 배양하여 망가지거나 약해진 몸의 여러 가지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장애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약 60조에 해당하는 세포가 있는데 그 중에 20-30%는 미또콘도리아(mitochondria) 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독자의 DNA를 가지고 있으면서 분열, 증식하면서 우리 몸의 피부나 여러 가지의 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포 하나에도 20--3,000개의 미또콘도리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2:21-22절은 이미 하나님이 인류의 첫 작업으로 이 일을 행하셨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 그 갈빗대로 여자를 반드셨" 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iPS 세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 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적이거나 법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여 생각했지만, 이제는 과학적이고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 생활은 다름 아닌 각각 다른 육체를 가진 남녀가 결혼이라는 방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나됨을 이루어가며 그 결정체가 자녀 출산을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혼은 결코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간단히 나눌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4.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아내를 내어 버린다" 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하나 된 제 몸과 마찬가지인 여자를 시시콜콜하고 유치한 이유를 내세우고 그런 방법을 가지고 아내를 내어버린다고 하니, 이런 말을 함부로 하면서 제 원하는 대로 아내를 내버리는 이런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정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죄를 자꾸 반복하면 처음에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도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그 사실이 본문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이혼이라는 수단으로 인간이 함부로 나눌 수 없다고 하자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하고 예수님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예수님이 자신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분명히 이혼이야기가 나오고 이혼증서를 주면서 아내를 버리는 것은 전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지구촌의 이혼 문제는 단순히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의 블로그 「웰」을 운영하는 여성 칼럼니스트「타라 파크포프」는「연애와 결혼의 과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결혼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부 싸움의 70%는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같은 문제로 다투고 있으며 이것은 세월이 지나도 결코 바뀌거나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5.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근본적으로 말하면 둘이 합하여 아직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하나가 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촛불도 제 자신의 몸을 태울 때 주위를 밝힐 수 있는 것처럼 제 자신의 희생이나 변화 없이는 온전한 결혼생활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상대방의 변화만을 강요하고 상대방의 복종과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결혼 생활이 아니라 노예 생활이고 결혼 서약서는 종의 문서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는 결혼생활의 불행이 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이혼을 허락했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악함」 이란 말라붙거나 굳고 거칠다는 의미로 사람의 정상적인 마음상태가 아닌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발생한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하나님의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일시적으로 이혼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6. 얼마 전에 일본에는 아까짱 포스트라는 것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거친 표현으로 말하자면 갓난아기를 이곳에 버려 달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어린애기를 마음대로 버려도 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원래의 목적은 도리어 갓 난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생활고로 갓 난 아기를 양육할 수 없다든가, 원치 않는 출생이라거나, 아기는 출산했지만 양육할 마음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간단히 유기해 버리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생명이라도 살리자고 만든 아까짱 포스트였지만, 완악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혼을 원하지 않지만 악한 인간들이 책임 없이 제 아내를 함부로 버리고 쫓아내기 때문에, 정 그렇다면 그 불쌍한 여자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이혼증서라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여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의 그런 법이 나중에는 악용되었고, 그것이 예수님 당시에는 남자들의 공공연한 이혼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이혼이 전연 금지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여자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음행을 하면 이혼의 사유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는 사적 형벌이 유행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용서와 사랑의 종교입니다.
성경에 비록 음행의 연고가 이혼의 사유가 되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음행이라고 하여도 일단 범죄한 자가 용서를 구할 때는 용서하고 같이 사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호세아 선지자의 고멜과의 관계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한 특별한 메시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를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7. 결국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이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법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물질이나 좋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은 발달하고 삶의 환경과 질은 개선되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자꾸만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법을 만들면 사람들은 그 법을 디딤돌로 삼아 더 악한 일을 향해 올라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욕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976년에 일본의 후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 많은 방송들이 재탕을 하고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누린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엄마 찾아 삼만 리(母を訪ねて三千里)입니다.
19세기 가난하던 이탈리아의 제노바에 마르코라는 9살 소년이 남아메리카로 돈벌이를 간 어머니를 찾아 가는 드라마였습니다.
그 주제곡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넓고 물길 설어도
나는 찾아 가리 외로운 길 삼 만리
바람아 구름아 엄마 소식 전해 다오
엄마가 계신 곳 예가 그긴가
엄마 보고 싶어 빨리 돌아오세요
아아! 외로운 길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삼 만리.
먼 이국땅에서 지쳐서 병들어 죽어가는 엄마를 만났고, 아들을 본 엄마는 속히 회복이 되고 고향 제노바로 돌아간다는 내용입니다.
1970년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감동을 준 드라마였습니다.

8. 왜 엄마 찾아 삼만 리 만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혼을 하면 피해를 제일만이 보고 제일 불쌍한 것이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분열된 상처와 슬픔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고 또 이혼의 유전인자가 자자손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생활이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꿈에 부풀고 행복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결혼생활이 믿음의 생활이 아니라 육신의 생활 정욕을 좇아가는 생활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남편을, 자식을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니 은혜가 안 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가정 안에는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없습니다. 전부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는 가정을 위임받은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이라도 그 가정에서 한 사람만이라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어떤 가정이라도 반드시 변하기 마련입니다.
다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고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9. 오늘 본문을 보면 "어린아이를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14)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부모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희생 되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결혼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지만, 이혼은 배신에 대한 아픔과 인생 실패의 짐을 지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의 인격과 미래를 망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축복하며 안수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런 사랑스런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울고 병들고 평생 슬프고 고통스런 짐을 지도록 한다면 이것보다 세상에서 불행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완악함으로 덩어리진 것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뿐이고, 이혼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혼자서 고민하고 울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기 바랍니다.
사람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라면 주님은 사람을 통해 해결해 주시고,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 위기에 몰린 가정의 문제를 놓고 도움을 구한다면 어떤 부부, 어떤 가정이라고 문제는 다 해결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의 죄의 문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는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이 맺어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절대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닌 줄 믿습니다.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고 성령 충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내 아내나 남편이나 내 자녀는 무엇으로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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