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21.영혼의 사냥꾼(마태복음 7:15-20)

[성경본문] 마태복음7:15-20개역개정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영혼의 사냥꾼(마태복음 7:15-20/2011.8.21.오전)

1. 챨스콜슨이 쓴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메디슨 죤슨이라는 사람이 쓴 「어떤 망명」이라는 책에서, 한 보안관이 젊은 여자와 부정적인 관계를 맺고는 호텔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보면서 교회의 스테인 글라스에 새겨진 어린아이들과 예수님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됩니다.
그는 죄 있는 사람을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목사님이 설교한 내용을 떠 올리면서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통해서, 그것도 그 범죄의 자리에 누워서 생각하기를 도리어 용서받고 새로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부정한 만남, 부정한 행위를 통해서 도리어 새로운 영적 경험을 맛본다고 하는 이런 내용은 많은 기독신자들을 실족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복음으로 말미암은 영향력과 능력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흐름에 저항 없이 떠내려가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웃에게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는지 설명 할 수도 없으며, 자신들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지 조차 모르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그 결과는 누구에게나 비참한 멸망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영혼의 사냥꾼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소위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교인들의 영혼을 빼앗는 것입니다.

2.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이 땅에는 함의 자손에서 니므롯이라는 뛰어난 사냥꾼이 나타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사냥꾼의 직업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흔히 사냥꾼이라고 하면 새나 짐승을 잡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성경에서는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시124: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고 하였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도 거짓 선지자를 가리켜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표현함으로 영혼을 사냥하는 사냥꾼의 존재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나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각 시대마다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비록 양의 탈을 쓰고 접근하지만 실제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함으로 그 정체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 즉 영혼의 사냥꾼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율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한 그 반대로 헬라주의적인 자유주의자들로 유대의 율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 문서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디다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어떤 마을에 전도자가 나타나서 여러 날을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침과 능력을 빙자하여 돈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거짓 선지자요 영혼의 사냥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학설에 의존하기 보다는 말씀 속에서 드러난 그들의 특징을 보면 그 정체가 분명해집니다.

3. 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5절을 보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위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위장을 합니까?
양의 탈을 쓰고 있다고 했으니 이리의 탐욕을 숨기기 위해서 양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위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본성은 먹이를 보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공격하지만,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잠시 순한 양처럼 인내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리의 포악성을 감추려고 양처럼 온순한 모습으로 자신의 실제를 감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단의 무리인 추수꾼들이 한 교회에 침투하여 3년을 숨어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어도 그들의 근본은 거짓선지자요 노략질 하는 이리입니다.
영혼의 사냥꾼들의 또 다른 특징은 16절 이하에 보면, 열매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들의 수단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18절을 보면, 「~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싶어도 맺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나쁜 열매」라는 말의 나쁘다는 뜻은 썩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윤리적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해 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먹음직하고 배가 고파도 일단 부패하고 썩은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제일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상미기간의 표시입니다.
상미기간이란 음식의 유통과정에서 제 맛을 낼 수 있고 음식이 상하지 않는 안전한 기간을 말합니다.
곧 소비자가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미기간이 지난 음식이라도 겉으로는 멀쩡하고 실제로 먹어도 별 탈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사람들은 일단 기간이 지난 음식은 썩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멀쩡한 음식이라도 썩은 물건과 함께 두면 금방 부패해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영혼의 사냥꾼의 표적이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4. 그렇다면 영혼의 사냥꾼인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보다 더 경건하고 아름답고 존경 받을 만하게 행동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후서2장 9절에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사냥꾼들인 거짓 선지자들이 참 선지자들보다 더 많은 능력과 기적과 수단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20절에서 밝힌 대로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매가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씀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열매는 각 사람의 삶 자체와 그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믿음의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열매를 강조하고 계십니까?
20절에 기록된 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곧, 열매를 보고 그 사람들의 정체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시나무가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사냥꾼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고, 놀랍고 신기한 역사가 일어나도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많은 역사가 일어나고 대단한 존재처럼 보인다 하여도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오늘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사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보다 우리 자신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5장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최고의 좋은 시설을 갖춘 완벽한 포도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포도,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4절에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영혼의 사냥꾼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사냥꾼에게 사살된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적이, 우리를 파멸하게 만드는 적이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게으름이,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세상 사랑이 결국에는 사냥꾼에게 당한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두려움이 되어야 하고 경계의 이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거짓선지자에게 열매가 없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의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거부하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지?
영혼의 사냥꾼의 표적이 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열매는 삶입니다. 삶은 곧 신앙이요 믿음의 순간순간은 신앙고백 그 자체입니다.
 
6.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지 않으면 안됩니까?
거짓선지자에게 기다리는 것이 멸망이고, 그들이 멸망하는 이유가 사람들을 미혹해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범죄 이전에 먼저 자신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영혼의 사냥꾼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임한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신앙고백이나 종교생활 만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례요한도 유대인들을 향하여 표면적인 회개, 즉 껍데기뿐인 회개를 향해 분노함으로 공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름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이 거절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 수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거짓 선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엔 2대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셀트는 스웨덴 사람으로 세계 분쟁을 위해 동분서주 하다가 1961년에 중앙아프리카 상공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 분의 유품으로 발견된 가방 속에는 두 권의 책과 일기장이 있었는데, 한 권은 성경책이고, 다른 한 권은 토마스 아켐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이었습니다.
유품 중에 원고 뭉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마틴 부버의 나와 너 라는 책을 번역중에 있었습니다.
그의 사고 하루 전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습니다.
주님 뜻을 깨닭을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사랑을 더해 주소서, 주안에서 살 수 있도록 믿음을 주소서.
그는 전세계의 어려움 문제들을 껴 앉고 믿음 안에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저없이 하는 말이, 다그에게 맡겨라 고 할 정도로 전셰계를 통해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은, 내가 태어날 때 나는 울었지만 사람들은 웃었다.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고 사람들은 울게 만들라고 했습니다.
마21:1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시장하신 배를 채우려고 무화과나무에게 가까이 가셨지만,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하나도 없는 이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열매 맺지 못하고 껍데기 신앙으로만 연명하는 우리 자신이 바로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종교생활로 연명하는 우리들이 바로 영혼의 사냥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최후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버림받는 것입니다.
멸망의 두려운 심판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열매 없는 우리를 기다리는 것도 두려운 심판뿐이라는 사실입니다.

7. 좋은 나무의 좋은 열매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말하고, 그들이 좁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길에서 얻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넓은 문을 따라 넓은 길로 가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 길이 멸망으로 끝나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1969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후지모또 히로시(예명:후지꼬 에프 후지오)의 만화 「도라에몬」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면 허리춤에서 여러 가지를 꺼내어 사용하는데, 그 중에는 문이 있고, 이 문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늘 두 개의 문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넓은 문과 좁은 문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합니까?
주님은 우리가 매 순간마다 반드시 좁은 문을 선택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넓은 문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길에 이르며 거짓 선지자들과 그에게 미혹되 사람들이 가는 길이며, 그 결과는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세상 욕심을 버리고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매일 매 순간에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영육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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