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28.듣고 행하는 자(마태복음7:21-29)
[성경본문] 마태복음7:21-29개역개정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 듣고 행하는 자(마태복음7:21-29/2011.8.28.오전) 1. 1989년2월17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명당 의원이 한편의 동화를 낭독했고, 그곳에 모인 많은 의원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해도 출신의 작가 구리 료우헤이(栗良平)씨가 쓴 메밀국수 한 그릇(一杯のかけそば)으로, 한국에는 우동으로 표현되어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 내용은 섣달 그믐날 늦은 시각에 삿포로의 메밀국수집에 6살, 10살의 두 사내 아이를 데리고 중년 부인이 들어와서는 메밀국수를 한 그릇만 시켜도 되는지 물었고, 주인은 상관이 없다고 하고는 그 행색의 초라함에 메밀국수를 듬뿍 담아 주었습니다. 모자간에 서로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믐날이면 같은 시간쯤에 나타나 메밀국수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남편은 교통사고를 일으켜 죽었고, 부상자 8명에 대한 피해 보상 때문에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당 안주인은 한 그릇 가격에 세 그릇을 주자고 했지만, 식당 주인은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하고는 국수 양을 듬뿍 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매년 마다 그렇게 한 번씩 나타나던 사람들이 어느 때인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주인은 그믐날만 되면 이 세 사람의 모자를 기다리면서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예약 석으로 늘 비워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어느 날 장성한 두 아들을 데리고 그 아주머니가 나타났고, 큰 아들은 의사로 작은 아들은 은행원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유명해진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내용이 실화로 알려 졌기 때문입니다. 한 그릇의 메밀국수는 상케이 신문의 사회면의 머리기사로 등장했고,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영화로 만들어져 온 일본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주간지, 월간지들이 특집으로 다루었고 작품은 몇 달 사이에 백만 부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6월2일자의 사진 전문 주간지에 이 소설을 쓴 작가 구리 료우헤이 씨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감동의 물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인사로 등장하여 일본 전국으로 유명해진 이 작가의 모습을 본 메밀국수 집 주인이 그의 더러운 과거와 사기 행각을 폭로함으로 모든 것이 뒤집혀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원래는 유리공장의 뜨내기 인부였는데 자신을 북해도대학의 의학부 출신이라고 속이고는 여기 저기 떠돌며 살다가 이 메밀국수 집에 얹혀살게 되었고, 나중에는 자신을 의사라고 속이고 사기행각을 일삼다가 이 집에서 쫓겨 날 때 주인의 자동차를 훔쳐 타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한편의 글을 통해서는 전국민을 감동시켰지만 작가 자신의 삶은 법과 국민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눈물의 메밀국수가 일시적으로는 1억2천만을 감동시켰지만, 결국에는 분노의 메밀국수로 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작가는 그 이후로도 절간을 돌며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재판에 패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행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는 이 말씀입니다. 여기 「주여 주여」라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매우 신성하고 가장 종교적이고 자신의 신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주님을 찾고 부르는 이 말은 기도 때에나 예배 때에나 찬양 가운데, 심지어 우리의 대화 가운데서도 빠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여 주여」라는 이 말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주여 주여」라는 말의 반복을 통해서 이 사람과 예수님 사이가 얼마나 긴밀하고 소중한 관계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마음에 가득차는 기쁨을 느끼게 되고, 어린아이가 다급해졌을 때 엄마를 계속 찾고 부르는 것을 통해 만족과 안도감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성도와 주님과의 관계의 소중함이 그의 입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주여 주여」 는 습관적이고 몸에 베어버리고 입술에 붙어버린 매우 형식적이고 공허한 고백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치 기도하는 사람이 시간이나 때우려고 의미 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혹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부르짖는 형식적인 그런 부르짖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는 참된 의미를 알 길이 없습니다. 특히 열심 있는 신앙인들의 시도 때도 없이 주문처럼 외우는 그런 「주여 주여」는 그들의 충성된 신앙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3.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약2:19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우리가 주여 주여 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 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무서워하고 벌벌 떤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지 않아도 그는 모든 생명과 모든 만물의 주가 되시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믿든지 믿지 아니하던지 상관없이, 심지어 마귀가 예수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든지 관계없이 그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분 앞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옥석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이단들의 경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밝혀 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라고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면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와 직분과 열심만 있으면 다 천국에 들어가는 보증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4.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22절에 기록된 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온갖 능력과 기적을 행하고 많은 선을 행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 말씀 하셨습니다. 명목상의 크리스챤의 불행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지만, 그 삶의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 사람의 생각과 확신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면서도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고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고전9:27절에 보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많은 지역을 돌면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제자 삼으며, 남들이 따라 오지 못하는 능력과 은사를 소유하고 삼층 천국까지 경험한 사람입니다. 2천연 기독교 교회사 중에 사도바울처럼 이렇게 헌신하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던 사람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주님께 버림당할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버림당하지 않기를 위해 자기가 자기 몸을 채찍질 하듯이 쳐서 주님의 말씀에 자신을 복종 시켰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모습으로, 지금 이 상태로 이 믿음의 길을 계속해서 간다면 틀림이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과연 지금의 삶, 이 모습이 주님 제자로서의 모습으로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23절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명목상의 크리스천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5. 귀신을 쫓아내도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멋들어진 신앙고백을 통해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고 많은 희생을 치러도, 아무리 열심히 전도한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22절의 「그 날」 이 무슨 날입니까? 최종적인 심판의 날입니다. 주님은 그 날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을 가리켜 불법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뜻은 있어도, 자신의 고집과 자신의 철학은 있어도 주님의 뜻이 없는 사람, 주님의 뜻대로 행함이 없는 삶을 가리켜 불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을 좇아내고 큰 능력을 행하고 많은 감동을 주는 설교를 하고, 남을 위해, 교회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 불사르는 희생을 치른다고 해도 결국에는 주님께 버림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연 우리가 이대로의 신앙생활을 이어간다면 우리도 버림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6.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귀중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건축의 비유를 들어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듣고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나 듣고도 행함이 없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지혜로운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집의 기초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집을 빨리 세우는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아무 곳에나 세우고 그러다 보니 모래 위에 세우게 됩니다. 현명한 사람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조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기초는 물론이고 집이 홍수나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더위와 추위를 막아 줄 수 있도록,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어리석은 사람의 치명적인 결함이 무엇인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초가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늘 보기 좋고 내가 편하면 그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기초에, 신앙의 기초에, 삶의 기초에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생각과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남에게서 배우려고 하지 않고, 실패를 해도 재수 없어서 실패했다고만 생각하고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27절의 말씀처럼 크게 무너지고 크게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남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비교해 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갑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내 생각과 내 계획 내 방법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급한 마음에 많은 실수와 위기를 만나고 넘어집니다. 7. 메밀국수의 저자가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있어도 자신의 삶을 통해서는 도리어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감동할 만한 말과 글에는 그에 따르는 행함과 삶이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행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 마음대로, 교회의 신앙생활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러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듣고 순종함으로 자기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행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은 도우시고, 인생의 모든 바람과 물결에서 지키시고 바르고 복된 길로 인도하셔서 영원히 복된 존재로 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