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9.고난은 왜 오는가(마태복음2:13-23)
[성경본문] 마태복음2:13-23개역개정
13.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고난은 왜 오는가(마태복음2:13-23/2011.1.9.오전)
1.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그 모친 마리아가 출산 후에 숨도 돌릴 틈도 없이 악한 헤롯왕이 아기 예수의 목숨을 노리는 것을 알고 태어나자 마자 온 가족이 피난길에 오르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그 악한 자의 손길을 막아 주실만한 능력과 지혜가 풍성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난길을 재촉하셨습니다.
지난 우리 교회의 한 해도 돌이켜 보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고난 당한 성도들도 많았고, 교회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넘어지지 아니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은 2011년에 대한 소망과 기대 때문인 줄 믿습니다.
올해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위로해 주셨고, 어려움을 당한 만큼 신년에는 하나님이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2011년도가 우리의 계획한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축복의 한 해가 될 것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믿고 아멘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다 잘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새해에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은 왜 오는가 어려움은 왜 나를 떠나지 아니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10년을, 어떤 사람은 20년을 교회를 드나들며 예수님을 믿어도 늘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새로 믿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삶이 달라지고,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면서 그 삶을 통해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내게 오는 모든 고난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지난 4일부터 6일가지 가께가와의 쯔마고이에서 일본 전국의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 약 250여명이 모여 신년성회를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오신 훌륭한 목사님과 사모님들, 그리고 한국의 유명한 장로님 부부도 함께 강사로 참석하셔서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 일치된 공통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새사람이 되고,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고난을 통과하면서 육신은 죽고 의의 새 사람이 되었고, 고난을 통과하여 마침내 축복의 세계로 나아갔고, 고난 후에 마침내 소원의 항구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수 천명의 성도들이 몰려드는 교회도 처음에는 성도들이 아예 없거나 몇 명으로 시작한 교회들입니다.
거듭된 실패와 어려움, 환란 속에서 죽을 고비들을 수도 없이 넘기면서 오늘의 영광에 이른 사람들이요 교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이 없이는 영광에 이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내 생각으로는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고, 지금 내 생각으로는 용납되어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행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태어나자 마자 헤롯의 칼날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셨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온전하고 순전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고난의 태풍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자녀의 생명도 잃었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잃었고, 자신의 건강도 잃었고 아내도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욥의 모습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타다 남은 재 위에 앉아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인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광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 다윗을 돕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더니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셨고, 그들이 고난 당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3. 고난은 왜 옵니까? 왜 나만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만 합니까?
아닙니다.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주님도 힘들어 하셨고, 주님도 슬퍼하셨고, 주님도 피곤해 하셨습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울부짖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이 무엇입니까? 왜 고난이 옵니까?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에 옵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통해서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죄를 씻어 새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전에 해결하지 못한 못된 습관과 악한 일들, 그리고 술 취하고 방탕한 것들을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고난은 그래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옵니다.
욥처럼 아무 죄도 잘못도 없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큰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하나님은 욥을 고난 당하기 전보다 더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새로운 축복의 시작인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고난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을 기회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은 고난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남들보다 더 크고 고통스럽고 더 어려운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만났고, 그 고난을 통해 축복의 기회 능력의 기회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특히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냉수 마시고도 이를 쑤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보면 그런 조상들의 기개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청백리의 선비 정신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돈 앞에는 사족을 쓰지 못합니다. 돈이라면 무슨 짓인들 합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돈이 없다고 죽는시늉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합니다.
고난이 올 때 누가 일어설 수 있으며, 누가 영영 주저앉고 무너집니까?
고난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이 도와 주지 않는다고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고난이 오면 머리를 써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4. 왜 고난이 옵니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만나시기 원하시는데 나는 세상에 정신이 팔려 주님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주셔서 정신 차리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있었습니다.
부친이 건강하게 살아 계신데 억지를 부려 재산을 상속받아 그것을 다 챙겨서 먼 나라로 가서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많은 친구들, 여자들, 온갖 쾌락과 인생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았는데, 세상 모든 것이 자기 것 같았는데, 가진 소유가 사라지니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 번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갈 곳은 돼지 우릿간 뿐이었고, 그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먹기 힘들었습니다.
그 때 이 아들이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이 오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이제 아버지를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이 탕자가 결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치고 병든 몸으로 돌아갑니다.
왜 고난이 옵니까? 왜 나만 이 고난 속에서 어려움을 당해야만 합니까?
아닙니다. 나만 당하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모를 뿐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모를 뿐입니다.
제가 이전에 감동 받은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황인숙의 자명한 산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 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은지
나한테 말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며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 우리는
눈도 마주치지 말자.
5. 왜 시인이 강가에서 우리는 눈도 마주치치 말자고 했습니까?
나도 너처럼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어 강에 대고 말하려고 사람들을 피해 강가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신 분석가가 상담자들에게서 느끼는 마지막 감정은 고립무원이라고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는 버려졌고, 내 인생은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이야말로 인간이 원래 갖고 있는 문제 투성이의 의존성이 극복되는 지점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이 어려움을 패해가려고 누구에게 인가 도움을 구하는 그 의존성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고립무원의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을 맞는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고 하는 그 강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지요?
이대로 저를 버려 두시면 저는 죽습니다.
내 문제를 알고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하고 사람이 아닌 주님 앞에 엎드려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6.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기 자녀된 우리에게 고난이 오도록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을 몸인 세상의 욕심과 사욕을 버리고 영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잠시 잠깐 세상에서 제 마음대로, 세상에서 천국처럼 살다가 영원히 멸망할 그런 인생이 아니라 보배롭고 영화롭고,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잠시 잠깐 고난을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롬8:13)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이 고난으로 인하여 고통스럽고 삶 자체가 너무 무거운 인생이 짐이 되어 견디기 어려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 삶이 소망이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모든 고난 속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마구간에서 출생하셨고, 출생하시자마자 겨를도 없이 애굽으로 피난길에 오르실 만큼, 주님도 많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자의 어려움을 아시며, 또한 고난 당하는 자를 능히 도우시고, 그 고난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성도가 영영 망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생명은 하나라도 빼앗기지 아니하고 온전히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7. 사람들이 만나는 이 고난을 통해서 사람들의 가는 길이 두 길로 나뉘어 지게 됩니다.
여전히 육신을 좇는 자의 삶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의 삶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고난을 인내한 후에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 육신의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고난 속에서 지금까지 스스로 믿어 왔던 내 인생이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허망한 인생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과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 모든 고난을 통해 오히려 겸손해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기 때문에, 도리어 고난 속에서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내 인생을 새롭게 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고난은 잠시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 우리 인생 스스로를 바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축복의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2011년은 고난이 없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고난을 통해서 영육간에 성장하고 축복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향하여 바울은 말하기를,「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제부터 고난을 기회로 삼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