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9.복음을 받은 목자들(누가복음 2:8-20)

[성경본문] 누가복음2:8-20개역개정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을 받은 목자들(누가복음 2:8-20/2010.12.19.성탄주일)
1. 오늘 본문에는 「목자」라는 직업, 혹은 신분에 대한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현장을 소개하는데 4번이나 반복되며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니, 예수님의 탄생과 목자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출생하시면서 만나는 요셉과 마리아를 제외한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구원의 은총의 수단으로서 메시야를 보내시는 현장에 목자들이 있었고,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복음의 현장에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목자」에 대한 좋은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시편 23편의「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말씀으로, 이것은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조가 되는 히브리 민족이 목축업을 하는 목자들이었고, 그래서 요셉이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히브리인들은 고센이라는 곳에 따로 살면서 목축업을 하게 된 것은 애급 인이나 당시 이웃나라 사람들은 목축업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출생 당시의 목자들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랍비들의 문헌에 따르면, 그들은 파렴치함 인간들로 도박성이 강하고, 주인들의 재산의 일부를 착복하고, 남의 땅으로 자기 양떼들을 함부로 끌고 들어가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가난 랍비들은 목자들에게서 양털이나 우유나 새끼 염소들을 구입하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거룩함과 종교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랍비들의 관점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백프로 다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목자들은 사회의 최하층의 사람들로 삶이 어렵고 예의가 부족하며 사회성에 문제가 많은 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탄의 현장에 이 목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인류의 참된 통치자인 구원의 왕이 오시는 자리에 천한 목자들이 제일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화육강생에 사람들도 꺼려하며 멀리하는 목자들이 제일 먼저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오늘 본문 11절이 그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곧 목자들을 위하여 구원의 주, 곧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너희」는 베들레헴의 어느 양치기 목자 몇 명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너희」는 그 지역의 모든 목자들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만민, 모든 죄인들을 향하여 「너희」라고 표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강탄하신 그 밤에 천사들이 목자들을 찾아와 그들을 향하여「너희에게」라고 말했다면, 이는 일차적으로 그 지경의 목자들을 향하여, 그 때 천사와 만난 목자들을 향한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왜 이 사실을 강조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그 분의 삶에서 대부분의 기적과 능력, 그리고 복음의 선포는 어디를 향해 나타났습니까?
가난하고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병들고 지친 사람들, 천한 신분으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사람들, 가난한 삶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죄인들이었습니다.
4복음을 다 살펴보아도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부유층들이,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체험하거나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겨우 백부장이나 내시의 부인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3. 제가 어릴 때 보면 천막 친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신학교나 중고등학교 과정의 학교도 천막을 치고 수업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산동네에 천막을 친 교회가 뜨겁습니다.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 하수도가 없어 오물을 아무데나 버립니다.
술 취해서 날마다 싸움질하고, 자녀들이 신문팔이에 구두닦이에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도적질하고 사기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목욕도 못하니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야말로 2천 년 전의 베들레헴의 목자들이나 별반 다름없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교회가 들어와서 천막을 치고 전도하기 시작하니 달라집니다.
열심히 교회 나와 예배하는데 찬송과 기도가 뜨겁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도 잘 살아보고 나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안되면 우리 자식들이라도 잘돼야겠다는 생각에 새벽기도도 열심입니다.
그런 한 맺힌 마음에 복음이 들어오니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앙생활합니다.
천막치고 하는 조그만 교회가 하는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철야기도, 통성기도, 산기도, 확성기 들고 전도하는데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20년 30년 세월이 흐르면서 대한민국이 친지개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단 선진국에 와서 생활은 좀 어려워도 사람답게 살고, 먹는데 큰 문제가 없다보니 예수님을 믿어도 간절함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야겠다. 교회가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없습니다.

4. 우리 교회도 초창기에는 감언이설에 속다 시피해서 시집와서 보니 의지할데 없고, 내일이 불투명한 삶을 살다보니 저절로 그 마음이 주님을 향하게 되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에 교회 와서 기도하며 울고, 서로가 위로하며 신앙생활 하니 기적과 능력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소위 별짓 다합니다.
왜?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목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랍비들이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제일 먼저 복음의 현장에 불러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고 내가 살아야겠다! 새사람 되어야겠다고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기 예수께서 오신 줄 믿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누가19:10)라 하셨고, 내가 온 것은 의인을 위함이 아니요 죄인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천하고 가장 죄가 많고 가장 많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잘되어야 이게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잘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제 잘 낫거나, 부모 잘 만났거나, 남편 잘 만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망하면 천벌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밑바닥 인생, 길이 없는 인생에게 길이 열리고 소원 성취하고 새사람되면, 다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말합니다.
절대 예수 안 믿을 것 같은 사람, 아주 고약한 사람들이 믿고 새사람되면 하나님이 계신모양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비천한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시고 먼저 축복해 주시기 위해 그래서 왕궁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나셨습니다.

5. 그러면 이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가서 본 것이 무엇입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입니다.
단순한 아기를 본 것이 아닙니다. 구유에 누워 있는 어린아기를 본 것입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자신들과의 동질성을 느낀 것입니다.
자신들만 가난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오신 메시야 또한 구유에서 나셨다는 사실에 남다른 느낌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셨습니다.
목자들만이 가난한 것 아닙니다. 제자들만이 가난한 것 아닙니다.
주님도 가난했습니다. 이유가 입니까?
사도바울은 그 사실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하심」(고후8:9)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들처럼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질병과 죄가 주는 고통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혼은 물론이고 그 육신까지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6. 그러면 이 목자들이 한 것은 무엇입니까?
천사의 소식을 듣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믿었기에 그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 그 마음이 감동을 받을 받아 움직였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하다가 내 뜻대로 안되면 쉽게 포기합니다.
왜 결과를 보지도 않고 포기합니까? 인생 다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가보고, 확인할 때 까지 의심없이 앞을 향하여 이전처럼 그렇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고 순종하는 자의 모습이요, 바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목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를 알았을까요?
베들레헴 정도야 손바닥 들여다 볼 정도로 잘 알기 때문입니까?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별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왕중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도우신 것입니다.
목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인도하심을 따라 찾아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행로는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는 자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7.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본 바를 아기예수께 경배하러 모인 사람들 가운데서 증거하였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섬김을 통해 도리어 감사와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응답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은사가 쏟아지고 축복이 넘치는 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일 먼저 증거한 사람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바로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9절에 보니 그들도 처음에는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는 기뻐하였고, 그 복음의 현장에 가 보고는 확신을 가졌고, 그래서 자신들이 받은 복음을 증거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비록 목자라는 비천한 신분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오셔서, 온 세상 사람들이 듣고 기뻐할 복음을 먼저 전해 주셨습니다.

8. 사람들은 세상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려고 몸부림치지만 세상 어느 곳에도 안식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평안을 누릴 수 없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29)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죽을 죄인만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도 복음을 받아야 합니다.
병든 사람도 복음을 받아야 하고, 실패한 사람 원통한 사람도 복음을 받아야 살 길이 열리고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왕도, 신하도, 백부장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은 복음입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를,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누구든지 어린 아기 예수께로 가면 평안을 얻고 참 안식을 얻고 영생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평안을 잃고 고통하며 방황하는 이 세상을 향하여 아기 예수의 강탄의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함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 세상에는 참 평안과 기쁨과 영생을 주는 복음을 증거하는 21세기의 목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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