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28.주님과 우리의 관계(요한복음 10:1-15)

[성경본문] 요한복음10:1-15개역개정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님과 우리의 관계(요한복음 10:1-15/2010.2.28.오전)

1. 어제 신문의 생활면을 보니, 50세 이상 된 남녀를 대상으로 질문하여 얻은 답이 있는데, 이상적인 연인으로 생각하는 타입은 어떤 사람인가에서, 여성들의 대답은, 1위가 기무라 다꾸야(배우1972년생), 2위가 도리고에 슌타로(뉴스 케스터1940년생), 3위가 히까와 기요시(가수1977년생), 남성들의 대답은, 1위가 요시나가 사유리(배우1945년생), 2위가 자신의 부인, 3위가 야찌쿠사 가오루(배우1931년생) 였습니다.
이런 답을 분석해 보면, 여성들의 이상형은 자신이 나이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남자를 선호하고, 남자들은 반대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나이 든 여자를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남자들의 대답에 2번째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부인을 이상형으로 생각하는데 반해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도리어 한평생을 같이 살아온 부부의 관계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점도 있지만, 일차적으로 남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인간관계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관계가 잘못되어 가정이 깨어지고 사업이 실패하고, 사람 잘못 만나 한평생 후회하며, 또는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고통 하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인간관계는 남다른 축복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사람 人자가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생긴 것이라 합니다.
좀 부족한 사람도 사람 잘 만나면 성공의 길, 행복의 길을 갈 수 있지만, 능력과 재주와 재물이 있어도 사람 잘못 만나면 그 인생 길은 가시밭길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는 가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모진 사람 만나면 하루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좋은 사람 만나면 은혜를 입고 힘이 나는 법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좋은 사람, 내 이상형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 성가대에서 수고하는 젊은 청년들이야말로, 지금으로서는 내가 원하는 좋은 사람 만나는 것이 일생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좋은 만남을 위해 기도하며,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만남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 속에서 우리 일생에 가장 중요한 만남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 만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만남, 그것은 바로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왜 주님과의 만남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양이고, 주님은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 백성 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언약을 맺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언약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늘 동행하시고, 인도, 보호, 축복하심으로, 마침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요 축복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가계는 목자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믿음의 길, 복된 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주님도 우리의 목자가 되시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진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행4:12절에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하였고, 오늘 본문에서도 양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노략질 하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만이 우리 인생의 참 목자이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고 계십니다(3).
이것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관계보다도 친밀하고 분명하고, 가장 소중한 관계인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우리는 목자되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양과 목자간의 친화, 신뢰, 순종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며 함께 가는 이 길은 우리 모두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4. 또한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를 앞서 가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4).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고, 믿음의 모범을 보이시며, 우리 모두가 가야할 바른 길을 앞서 가시며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9절에 보니, 양을 위해 풍성한 꼴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21세기 지구촌은 모든 것이 풍부하고, 흘러넘치며 부족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대국인 일본의 경우만 해도, 절대 빈곤층이 15.7%를 넘었습니다.
경제가 확대될수록 빈곤층은 늘어날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지난 번 방문한 방글라데시만 해도, 생수를 살 돈이 없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이 양들의 생명을 위해서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지키며, 늘 푸른 초장 맑은 물로 인도하여 풍성한 꼴을 먹이는 일입니다.
과연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이 생명을 위해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따라 영육간에 풍성한 꼴로 인도하시고 먹이는 줄 믿습니다.

5. 그러나 목자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양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는 것입니다.
11절에,「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다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신 내어 놓는 것입니다.
요15:13절에 보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위해 대신하여 생명을 줄자가 있습니까?
혹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의로운 사람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희생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왕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수천수만의 군사들이 그 생명을 대신하여 희생한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자신의 생명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요 영생의 종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본의 안팡만 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1973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첫 공개된 이래 지금도 전 국민적인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의 특징이 무엇인가하면, 배고픈 사람에게 자기 몸을 떼어 남의 배를 불려 주는 것입니다.
최근에 알고 보니, 안팡만을 쓴 야나세 다카시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양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을 보고 안팡만을 만든 것입니다.

6. 본문 1, 8, 10절에 보면 강도와 도적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유를 강탈하고 협박하고 속이며 빼앗는 것도 무서운데, 더 무서운 강도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노략질 하는 강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소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소위 거짓된 가짜 목자들입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 때로는 율법을 빙자하여 결국에는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열방의 강대국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신앙과 율법을 자기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 같은 사람들을 믿고 따랐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보시고 목자 없이 유리 하는 양떼 같다고 불쌍히 보시고,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종교단체들이 앞을 다투어 이 불쌍한 인생들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아 사욕을 채우고 있으며, 교회마저 영적 분별력을 잃고 흔들리고 있으며, 임시 고용직의 사람들이 돈을 받고 일을 하듯이, 사명 없는 사람들이 밥벌이와 사욕을 위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와 온갖 방법으로 양들을 속이고 그들을 멸망으로 내 몰고 있습니다.

7.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1).
몰래 침입하여 도적질하고, 강도질하는 사람들, 소위 담을 뛰어 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으로,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과, 잘못된 신앙과 신학을 유포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둘째는, 제대로 된 양은 그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늘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앞서가는 목자가 누구인지 평소에 잘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위기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삯군 목자에게는 삯군 신자가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결탁하여 순진한 양을 속이고는 나중에는 달아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이 예수의 복음을 위해 부르신 그 부름의 사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귀 종노릇하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채우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절에,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양들, 믿음의 길을 바로 가는 양들은 진실하고 사명에 사는 목자를 압니다.
 
8. 그렇다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14절에 보니,「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원래 양에게는 자기 방어의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범죄하기 쉽고, 목자를 배반하기 쉽고, 질병에도 잘 걸리고, 연약함으로 자기 몸도 지탱치 못하고 쓰러지는 존재임을 주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목자 없이 양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이요, 오직 선한 목자 만이 양의 완벽한 보호자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하)고 하심으로, 목자 되신 자신의 사명에 끝까지 충실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완벽한 사랑을 입었으니, 두려움 없이 그 분의 인도함을 받는 줄 믿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틴에서는 목동이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인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목자되신 예수님은, 각 사람의 이름, 성격, 장단점을 아시고 그 형편에 맞게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139:2-4절에 고백하기를,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의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고 했습니다.

9. 무엇보다도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 주시는 분입니다.
친구도 아내도 사업이 망하고 돈 떨어지면 도망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양의 허물과 죄를 위해서, 모든 죄악과 사단의 공격에서 이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내어 주셨고, 이 사랑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셨고, 이 사랑의 관계가 우리로 전도하며 선교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고 헌신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이 예수님의 죽으심이, 목자되신 그 분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우리는 10절에,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었으니 감사와 충성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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