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14.은혜를 나누는 사람들(고린도전서 16:1-4)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6:1-4개역개정

1.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은혜를 나누는 사람들(고린도전서 16:1-4/2008.9.14.오전)

1. 기독자의 사명은, 첫째로 영혼의 기갈을 당하는 자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둘째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구제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면서 사랑으로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환란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의 헌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중에 신앙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집과 재산을 잃고, 직업을 잃고, 유대인 공동체에서도 추방을 당하여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라는 환경이 10, 2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선진국이요 G8에 속한 나라이고, 워낙 개인주의가 강해서 그런지 교회가 구제한다는 개념은 다른 나라나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 개념이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다른 성도를 구제하고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돕는 일은 기독교 초기부터 있어 온 습관이요 의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보다는 이슬람 사람들이 구제를 더 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친척 가운데서 전쟁미망인을 데려다가 아내로 삼아 그 남은 식구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들은 신앙의 5대 규칙이 있는데, 그 가운데「자카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주의적인 세금 같은 것으로 그들의 수입의 25%를 의무적으로 지출하여 가난하고 환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재산도 분배해 줍니다.
그 결과 신앙의 공동체의 단결심과 우호 협력이 그 어떤 종교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의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갈수록 증폭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폭탄테러로 자폭을 하면, 남은 가족은 이 공동체가 다 보살펴 주기 때문입니다.

2. 우리 기독교에도 종교의 의무가 있고, 그 중에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는 십일조의 의무가 있습니다.
독일 같은 나라는 아예 십일조를 종교세로 국가가 받아서 관리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십일조는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율법의 의무이며, 신약시대의 신앙고백이요, 우리 주님도 친히 명령하신 내용입니다(마23:23).
십일조와 각종 헌금은 우리의 모든 소득과 물질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구약시대는 십일조 이외에 각종 제사의 예물이며, 처음 익은 열매나 첫 새끼며, 여러 가지의 예물이 드려졌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많은 것을 드려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드렸는가? 그리고 내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서 드렸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지 않거나 제대로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보시며, 동시에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말1:12-14).
그러나 잘 지키는 자에게는 자자손손까지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말3:8-12).

3. 바울이 헌금을 호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주위에 헐벗은 형제를 외면한다면, 사도 야고보는 그것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약2:15-17).
특히 박해와 기근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부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다른 지역의 교회들에게도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헌금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하는 이유는 교회의 단일성, 즉 인종과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여 주님의 교회는 하나라고 하는, 교회의 단일성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그러므로 서로 돌아 볼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 말씀에서 강조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 이외의 모든 지역의 교회들은 이 예루살렘 교회를 모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교회에 속한 사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예루살렘교회의 핍박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간 성도들이 전도하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지역복음화를 이루는데 공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지역교회들은 다 예루살렘 교회에 복음의 빚, 사랑의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복음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복음을 받은 것처럼 전도하는 것이요, 믿음의 형제들이 생활에 어려움 당할 때 위로하고 돕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 받은 자가 그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은 이 구제헌금을 2절에 보니 매주일 마다 교회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주일만이라도 헌금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도 한 주간에 적어도 주일만큼은, 우리보다 가난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돌아보고, 불행을 당한 자들을 찾아 위로하는 그런 성도의 사랑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간혹 어떤 사람들은 나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요청하기 전에 이미 갈라디아 교회는 이 일에 동참하였고, 특히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적인 헌금정신을 고린도후서 7,8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교회가 어려움 당하는 것을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고,
자산들도 많은 환란 가운데 있었지만 그 환란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넘치는 기쁨으로 연보를 할 수 있었다고 했고, 그들의 극히 가난함이 도리어 풍성한 연보를 내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형제를 돕고, 형제교회를 돕는 일에 힘을 다해서, 아니 힘에 지나치도록 연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런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후8:9절에 보니「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주님도 우리의 부요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 마게도냐 교인들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5. 구제하는 연보를 포함하여 십일조 감사 등의 모든 헌금이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감사의 표시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이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우리 자신들의 사랑과 희생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자기의 희생이 없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나 신앙은 결국에는 유대교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위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제헌금도 서둘러서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왜? 마음이 없는 헌금, 정성이 없는 연보는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충동적인 것보다는 미리 준비되고 계획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연보 드리는 것 자체를 은혜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물질을 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3절에 보니,「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했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의 돈, 물질, 헌금, 정성이 무엇을 싣고 가는가?
은혜를 싣고 가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피와 생명에 자신의 신앙을 실어 하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땀과 수고와 이 돈에,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과 신앙을 실어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우리의 소유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누면 나눌수록 나와 내 주위의 믿음의 형제들에게 풍성함으로 채워지는 줄 믿습니다.
마치 벳세다 광야에서의 오병이어의 역사처럼 말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의 교회를 물질적으로 도왔다는 것은 영적 은사의 흐름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고린도로 흘러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끼리 영적인 은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도 나누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본문 2절에서 밝히기를,「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라고 했습니다.
소득이 많은 자는 많이 드리고 많이 도와야 한다는 말이요, 소득이 적은 자도 최선을 다해 드리고 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과 또한 믿음의 형제들끼리 나누고 돕는데 있어서 늘 풍성하고, 거리낌없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 가운데는 더욱 풍성한 결과를 가져오는 나눔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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