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30.독신이냐 결혼이냐(고린도전서 7:25-4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7:25-40개역개정

25.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독신이냐 결혼이냐(고린도전서 7:25-40/2007.9.30.오전)
1. 지난 7월말에 미국에서 열린「세계미래대회 2007」는 1966년에 창설되고 세계80여개 국에 지부를 둔 세계미래회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경영자들의 모임으로, 다양한 분야의 세계 미래를 예측하여 보다 나은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민간단체입니다. 그들이 이번 회의에서 발표한 미래 사회의 10대 트랜드 중에서 1위에서 3위까지가 남녀와 가정에 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1인가구가 미래의 가족형태이며
둘째로, 아이를 출산하는데 더 이상 남자가 필요하지 않으며
셋째로, 남성과 여성의 장벽이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듯이, 이미 한국사회에서도 남편은 필요 없고, 아이만 갖고자 하는 여성들이 병원에 몰려들고 있다고 하는데, 미혼여성의 17.7%가 결혼하지 않고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미스맘」의 선택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서기 2000년에 정자은행을 통하여 태어난 어린아이가 100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21세기 사회에서의 남성, 여성의 성적 장벽이 무너지고, 여성들도 남성을 능가하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과, 한국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호주제도까지 폐지된 것이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사람으로, 재일교포 출신의 작가로 이미 일본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유미리씨가 있습니다. 2004년에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생명(命)」이나 그밖에「삶(生)」,「가족시네마」등은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그려낸 소설들로, 향후 변모해 가는 지구촌의 가족형태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 자신도 미혼모인 「미스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구촌의 삶의 환경과 사람들의 사고의식이 급류처럼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이 주신 가정제도의 존재목적은 무엇이고, 또한 독신의 삶이 성경에 비추어 타당한 것인가, 타당하다면 독신의 유익이 무엇이며, 결혼한 사람이나 결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살펴,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2.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독신생활을 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26절에 보니 「임박한 환란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1세기의 기독교회가 주어진 환경이 결코 신앙생활을 하기에 용이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향한 박해와 차별, 신앙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하는 신앙과 육체적인 고난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고린도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신앙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향후 이 어려움은 더욱 극심해 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 보다는 혼자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며 사는 것이 신앙의 싸움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50여 년 이후인 2세기 초에 로마 황제는 고린도를 멸망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독자들과 그 가정들이 시대적 상황에서 예외없이 환란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3. 둘째는,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는 말씀대로, 결혼생활 자체가 고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로운 시대에도 결혼생활이란 것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닐진대, 신앙에 핍박이 오고 환란이 온다면, 가족으로 인하여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29절에 보니,「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맞춘 지구촌의 종말이 곧 임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은 잠간이요, 세상의 모든 좋은 것에 대한 애착은 앞으로 닥아올 영원한 세계와 비교해 볼 때, 찰라와 같은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시잠깐의 결혼생활에 구속을 받음으로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는 것보다는, 이 잠깐의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드림으로 영원한 상급을 얻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4. 혹자는 생각하기를, 사도바울이 결혼을 금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독교는 결혼을 금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고, 믿음의 자녀들을 출산하여 신앙과 영적 자산을 계대(継代)함으로 천대에 이르도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독신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방해받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독신자와 기혼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혼자는 가정생활에 메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33절 이하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염려에 메인다는 사실입니다.
33절에「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34절에는「시집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시게 할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혼해서 신혼의 시기를 지나고, 육아의 과정을 거치면서, 남편이나 아내는 점점 많은 부담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녀 교육문제, 가정안의 식구들과의 갈등, 직장생활의 어려움, 경제적인 압박 등으로 끝이 없는 세속적인 염려와 의식주의 염려와 그 위에 배우자를 위한 염려가 가산되고 있습니다.

5. 그러나 독신자는 가족과 배우자를 위한 염려 대신에 온몸과 마음을 오직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자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예외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염려하고 주님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마치 두 남편, 두 아내, 두 가정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우리의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이 나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것은 주님께 불충한 것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만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면서 생활 문제로 고민하고, 불신앙의 남편과 가정의 자녀들에게 메임으로, 주님께 드려야 할 더 많은 것들을 헛되이 하고 있습니다.
35절에서 바울이「내가 이것을 말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라,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이치에 합하다」는 것은, 좋은 모양,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6. 결국 사도바울의 요점은, 가정생활에 메여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의 중심의 바른 신앙을 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결혼이던 독신이든 관계없이 그 삶의 모든 목적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면,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동시에 가정의 일로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신앙생활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을 가진 기독자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자는 세상 사람들보다 두 세배 이상의 노력으로 경주하지 않으면 가정과 주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독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36절에 딸을 가진 부모의 태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그러나 원문에는 딸이란 말이 없습니다.
아들이든 딸이든지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른 결혼관을 가지는 것이요, 독신으로 지내고자 하는 자는 독신에 대한 분명한 사명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축복하신 제도입니다.
창1:28절에 기록된대로 이것은 문화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곧「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결혼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가정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운 자녀들을 출산하고,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의 원리를 따라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며, 부모의 신앙과 영적 자산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7. 그러나 독신으로 있는 특별한 사명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독신의 은사가 있어야 하며, 정욕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9절 이하에 기록된 재혼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사별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특별한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라는 것이 방종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세상에서 독신자들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인생을 엔조이하겠다는 육체주의자들의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
결혼에는 결혼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듯이, 독신으로 살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바르고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제라도 주님만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못살겠다고 생각이 들면, 재혼은 하되 반드시 믿는 자끼리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39절에서「남편이 죽으면 자유하는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안에서만 할 것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제도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혼을 통하여 가정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이 구원의 방편으로 자신의 몸된 교회를 세우셨는데, 이 교회의 시작도 가정에서 시작되었고, 복음의 역사도 가정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정 중심의 예배를 통해, 히브리민족의 신앙세계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신앙적으로 보나 역사성으로 보나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거룩한 도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시대에도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독신주의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가정에 얽매이지 아니하는 만큼,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에 힘썼습니다.
이 시대에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자신을 드리기로 작정하여 독신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있다면, 사도바울 처럼 쓰임을 받을 줄 믿습니다.
환부나 과부나 처녀나 총각이나 결혼한 신랑이나 신부나, 그의 자녀들이나 모두가, 그 삶의 모습은 달라도 목적은 오직 하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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