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17.하나님의 성전된 우리(고린도전서 3:16-2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3:16-23개역개정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고린도전서 3:16-23/2007.6.17.오전)
1. 성전의 개념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던 성소를 말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오늘날이 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가리켜 스스로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2장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내어쫓으시고, 장사하는 상을 뒤엎어 시면서,「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고, 유대인들은 그 말이 헤롯이 46년에 걸쳐 지은 이 성전을 말하는 줄 알았지만, 21절에 보면,「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허물다」는 말은 헬라어로 「뤼오」라고 하는데, 이것은 건물을 파괴할 때와 함께 사람의 몸을 파멸하는데도 같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가 3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야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22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오늘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사실로, 16절에「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표현한 사실입니다.
여기 「너희가」라는 말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 세 사람 이상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과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무엇이며, 이 교회는 우리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하여 무엇을 얻는가를 깨닫고자 합니다.
2.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듯이,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본문 16절에서 이미 밝히고 있는 그대로, 우리 몸 안에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면, 즉시 성령이 들어오셔서 지금까지 그 사람을 지배하던 온갖 죄의 세력들을 몰아내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이 깨닫는 것은, 고전6:19절의 말씀대로「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요, 이 육체가 결코 「너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의 육체는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를 가지고 온갖 더러운 짓과 망령된 행동과 온갖 불법과 악을 행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닙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것이요, 그러므로「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6:19)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남의 소유물을 가지고 제 마음대로 사용했으니, 이것은 큰 죄가 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천하 만물을 창조하실 때, 우리를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곧 만물과 더불어 인간을 하나님 자신의 소유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떠남으로 온갖 저주와 고통속에 살았고, 때가 되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소유된 두 번째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번씩이나 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외 없이 누구 나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전12:27절에「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하였고, 6:15절에도「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4. 문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우리의 몸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는 것은, 이미 믿고 구원받은 그 순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존재 가치가 결정된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의 가치는 그 소유한 자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장의 종이도 어린아이의 손에 있을 때에는 낙서장으로 사용되다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지만, 세계적인 화가의 손에 잡히면 명화가 탄생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누구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용되도록 거룩하게 구별하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쓰시는 몸, 주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목적을 위해 정당하게 사용되려면 17절에 기록된 것처럼,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이전처럼 우리의 육체를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하나님께 버림당하기 때문입니다.
신전을 뜻하는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히에론」으로 신전의 경내의 모든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신전 전체를 나타내거나, 그 중에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를 뜻하는「나오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은 이 「나오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전 자체를 신과 동일시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연필을 사면, 계속 분질러지는 연필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깎는 족족 똑똑 부러져 나가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겉은 멀쩡해도 속이 다 곯아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겉은 멀쩡한데 속이 다 망가져서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성도의 의무를 다한다고 하여도, 그 안에 성령을 모시지 않은 심령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도 못할뿐더러 하나님께 멸망을 받게 됩니다.
이 멸망이 영혼까지 지옥에 버림당하는 멸망인지, 크고 중대한 벌을 받는 것인지, 육체만 멸망하는지, 아니면 육체와 영혼을 전부 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스스로 자기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까?
그것은 17절에 기록된대로 「더럽히면」은 파괴나 갈라놓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교회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더럽히는 일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그 사람을 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분열시키거나 더럽히는 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6. 교회가 문제에 휘말려 시끄러울 때 반드시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면서 스스로는 자신의 행위를 의롭다고, 진리에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박해하면서도 자신은 지금 거룩하고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의 죽음에 가편 투표를 한 것을 의로운 행위라고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전력을 생각하면서 분쟁이 심한 고린도교회에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18절에「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혜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지혜는 한마디로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먼저 따먹은 하와는 남편에게까지 그것을 먹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럴 때 주님의 경우라면 어떻게 생각하시며 어떻게 행동하실까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나의 기준이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7. 여러분 교회를 움직이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 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말씀이 교회의 진정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일 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분쟁은 간 곳이 없고, 오직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영광만이 충만할 것입니다.
사람의 병은 자기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자기 생각은 반드시 실패를 불러옵니다.
본문의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이라는 말씀을 복음의 진로를 방해하는 모든 일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방해꾼이 되었습니까? 모든 일들을 자기 생각, 소위 세상의 지혜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0절에서 그런 것은 다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주님이 이 세상의 지혜로,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려고자 하는 모든 것을 헛된 것으로 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헛것은 헬라어로「마타이오스」로 목적 없이 방황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여전히 헤메고, 허무한 상태에 빠져 있고, 아무리 수고하여도 결국에는 무익한 시도로 끝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8. 그러므로 본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23절에「너희는」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도 겁없이 우리의 것이라고 함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왜?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도 그토록 고민하며 울며, 몸부림쳤지만,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를 통하여 교회가 분쟁이 아니라 거룩해짐으로 교회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거룩한 우리의 삶을 통하여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 거룩한 사명자의 삶에 넘치는 축복과 능력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