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8.그리스도의 일꾼(고린도전서 4:1-5)

[성경본문] 고린도전서4:1-5개역개정

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리스도의 일꾼(고린도전서 4:1-5/2007.7.8.오전)
1. 이솝 우화의 「개미와 배짱이」의 이야기는 산업사회에 적용되는 이야기이고, 정보사회로 불리우는 현대의 「개미와 배짱이」는 그 내용이 다릅니다.
개미는 무식할 정도로 너무 일만 하다가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빨리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짱이는 노래 한 곡 힛트한 덕분에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이야기 내용이 변한 것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정보사회에서는 개미처럼 살면 평생 고생이고, 거미처럼 거물 만 잘 치면 고생 안 하고 잘 먹고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크리스챤들에게 대단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번 한국 가서 보니, 교회의 청소도 교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돈주고 시킵니다.
힘든 일을 나서서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헌금으로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세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구원은 남이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믿고, 내가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도, 장차 받을 영원한 상급도 내가 행하기에 따라 달린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4:1)고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자는 자기 몸을 드려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도 우리의 재물보다는 우리의 몸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자신도 스스로의 몸을 십자가에 드림으로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우리를 복음에 충성된 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 1절에서 밝히는 대로, 제목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첫째로, 일꾼이란 어떤 사람, 어떤 종류의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휘페레타스 크리스투」라고 하는데, 이 「일꾼」의 뜻은 배아래서 노 젓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그리스도에게 종속된 노 잡이라는 말입니다.
이 고린도서가 쓰여질 당시, 로마제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많은 노예를 얻게 됩니다. 이 노예인구가 로마시민들의 숫자보다 많았다고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천한 노예가 바로 배 밑창에 내려가 노 젓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다 이 노 젓는 노예와 같은 사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냐, 아볼로냐, 게바냐 하면서 한 교회 안에서 서로 분쟁했습니다.
그러나, 노예에게 없는 것이 3가지 있습니다.
자기 주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활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소유란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휘페레타스 크리스투」하면,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살고, 주님의 뜻대로 일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죽을 뿐입니다.

3. 본문 말씀에 비추어 볼 때, 21세기의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너무 많은 주장과 생각, 너무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결국 너무 많은 소유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일꾼 된 사람과 주인의 관계에서는 방해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좋은 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소유와 스케줄로 인하여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쁘지 않으면 무능한 사람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일 많은 핑계거리가 바쁘다는 것인데, 오히려 바쁜 사람은 무능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무능하고 남을 의심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못합니까?
시간은 돈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돈 벌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보다는, 소유한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사는 사람이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열심히 이익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돈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기를 바랍니다.
아직까지 돈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사명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면서 시간을 사서 그 시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헌신하는 사람은 이미 큰 부자가 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많은 축복의 귀회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4. 문제는 우리가 바른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며 찾을 수 있습니다.
빌2:6절 이하에 보니「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배 밑창까지 내려가셔서 노 젓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셨고, 더 이상 희생하실 것이 없을 정도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과연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면, 우리도 그의 성육신 하신 사건을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성육신 사건은 바로 「휘페레타스 크리스투」즉,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투가 치열한, 배가 깨지면 제일 먼저 죽는, 내일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구원의 여망도 없는 그 전투함의 배 밑창에 들어가서 배를 젓는 사람이 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가진다면, 당장 이 시간에도 우리는 진짜 전도자가 되고, 많은 영혼들과 육신들이 우리를 통하여 구원받고 치료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일꾼에게 있습니다. 참된「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5. 둘째로,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2절에「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충성」은 헬라어로 「피스토스」로, 그 뜻은 신실, 성실, 특히 맡은 일에 충성됨을 의미합니다.
이 충성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소명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계2:10절에도「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환란과 궁핍 가운데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환란과 궁핍이 극심하다고 주님이 먼저 도와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맡은자」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로, 이것은 집이라고 하는 단어인 「오이코스」와 분배한다는 의미의 「네모」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맡은자」란 집을 관리하며, 식솔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청지기를 말합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전하여 잿더미 위에서 30여년 만에 세계 경제대국이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충성된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충성하는 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요, 내 한 사람의 희생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능력입니까? 교회의 수준입니까? 아니면 우리 개인들의 능력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구하시는 것은 충성인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충성된 일꾼이 몇 명이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6. 셋째로, 충성된 일꾼은 서로 판단하지 안습니다.
판단의 종류는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
스스로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판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집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차별이 생기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특히 조심할 것은 쉽게 판단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4절에서「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면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람 사이에서는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사람의 판단이란 것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참된 것뿐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종입니다. 일꾼입니다. 사명자입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님의 소유된 남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판단 자체가 범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판단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7. 그러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판단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바울의 태도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남의 판단은 매우 작은 일로 생각했습니다(3).
즉, 남에게 판단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2)스스로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3).
왜? 판단하시는 이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4).
3)주님의 재림 때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5).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 때 선악간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숨어 있는 것의 은밀한 부분까지 만 천하에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흔드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남을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판단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슬픔과 낙심을 주었고, 결국에는 분당, 분파로 찢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뿌리깊은 고질병은, 중상하고 비방하고, 그러므로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5)고 했습니다.
누가 잘한다, 못한다고 비교하거나 심지어 그런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말과 행동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찢는 것이요 파괴하는 것입니다.

8. 본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5절에,「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두움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빛을 비추어서 다 드러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곧, 착하고 충성된 사명자들에게는 큰 칭찬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직 칭찬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계속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고 힘을 다할 때인 줄 믿습니다.
만일에 지금 칭찬 받는 다면, 그 때가서는 우리가 받을 상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오해와 갈등과 고통이 오는 것을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또한 진짜가 드러나면 가짜도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착하고 충성된 사명자가 되도록 부르셨고, 남들이 판단을 하던지 말던지, 어려움이 있든지 없든지, 남들이 알아주던지 말던지 그런 것들은 가짜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서로 충성된 사명자들이 되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죽도록 충성하여, 칭찬과 영원한 상급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