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14.누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요한일서 4:7-11)
[성경본문] 요한Ⅰ서4:7-11개역개정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누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요한일서 4:7-11/2007.2.14)
1. 제가 어릴 적에 동네 친구들에게 전도하면, 대부분의 반응이 하나님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도 믿고 영접한 제 자신으로서는 어린 마음에 내가 믿는 하나님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말씀 가운데서 믿음이 성장하고 보니,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요14:8절 이하에 보면, 빌립도 예수님께 하나님「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대답하시면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ᄌ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무슨 피조물처럼 그렇게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서 서로 사랑으로 행하면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8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심바 되었고,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변화를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한다고 했습니다.
2. 본문의 서두에 나타나서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다」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안다고 하는 것은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대통령을 아는 것과 학교 선생님을 아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친구를 아는 것과 부모 형제를 아는 것, 그리고 부부간에 서로 안다는 개념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을 알고」라는 말씀의 「안다」는 말은 헬라어로 「기노스코」로, 이것은 하나님과 사귐을 통하여 계속해서 자라가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모든 신자들에게는 인식의 능력, 즉「기노스코멘」이 있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했을 때의 「앎」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교통과 경험을 통하여 더욱 깊은 곳까지의 알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깊은 관계를 통한 경험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도요한이 수 없이 반복하고 있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요즈음 일본은 IT산업의 발달로 디지털, 하이비젼 등에 의한 기술로 생생한 텔레비전 화면을 재생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지상파 디지털 텔레비전 전파를 수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화질의 텔레비전 영상도 안테나가 없이는 그 전파를 잡을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을 안다는 것의 실체는 온전한 사랑에 있습니다.
제프라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의 잘못된 결정들을 인하여 몸과 인생을 다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파산선고를 했고, 과도한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즈음에 윌 사우스라는 크리스천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그제야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속적인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고 싶은 간절함은 더욱 깊어갔고, 마약이나 술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사라졌습니다.
물론 때때로의 좌절과 의문점들도 있었고, 빚을 갚는데도 많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참된 자유와 만족을 누리면서, 자신의 삶의 변화가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헬라 신화처럼 어떤 인간의 망상이나 이념 속에 머물러 있는 신화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바리새인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입술에만 머물러 있는 위선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으며, 그 사랑이 지금도 제프와 같이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사 그를 죽음에 내어 주시고, 그 대가로 영원한 저주와 죽음과 고통에 사로잡힌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십자가 위에서 나타나신 바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참되고 영원한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4. 어릴 적에 신기하게 생각되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지구촌 위에 수십 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숫자를 세고 기억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나같이 작은 사람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향하신 그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졸업식에 가 보면, 제 집사람은 아이들의 뒤통수만 보아도 알아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숨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자녀가 잘못 생각하거나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부모는 사랑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줍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결과요 바로 이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7절에,「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먼저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속해서 우리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면, 이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헬라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신화의 주인공들은 책을 통하여 얻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지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8절에,「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으니, 사랑 없이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다는 말이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면 할수록, 이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그런데,「사랑하는 자마다」라고 한 것은,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부모자식의 사랑, 형제, 친구의 사랑, 국가와 민족을 향한 사랑, 사해동포적 인류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10)우리에게 내어주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되 더 많이 알기 위해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적인 이유 한 가지는 11절에 기록된대로,「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무슨 공로를 인정받기 원해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의 모습은 그런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이미 받은 바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자랑하고 경쟁하고 튀는 것이 아닙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그것을 지구에 반사해 주는 것처럼, 내가 먼저 받은 바 그 사랑을 내 삶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가 된 유일한 증거는, 지금도 내 안에 자리잡은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이요, 이 사랑으로 세상에 빛 되고 소금된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 되고 있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