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21.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5:1-14)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5:1-14/2011.8.21.오후)
1. 5장에 들어와서는 사도요한이 본 천상에서의 어린양에게 올리는 경배와 찬양을 보여주면서,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 장래에 대한 모든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반복적으로 6, 9, 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내용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왜 네 생물과 24장로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는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잠시 계실 동안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의 희생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과 피조물은 예외없이 그를 찬양하며,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요, 그 분의 공로로 인하여 함께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상속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순전히 은혜로 된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자랑할 만한 값이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천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거룩한 예배에 참여하여 함께 어린양을 향하여 기쁨으로 노래하며 모든 영광과 존귀를 그에게 돌리는 것 마땅할 것입니다.
2. 지상의 교회가 많은 환란과 핍박과 사단의 시험을 이기면서 오늘에 이르도록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입니다.
곧 그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 세우셨습니다.
그의 피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흘리신 피가 우리를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며,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에 대한 소망을 더욱 확신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어린양 앞에서 올리는 예배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절에 보니 웬일인자 사도요한은 크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울도록 만들었습니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린 책이 있는데 많은 내용들의 기록이 안팎으로 가득한데 그 책은 일곱 인봉으로 봉하여서, 하늘과 지상과 땅 아래 그 누구도 감히 이 책을 열거나 볼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분명히 4:1절에서,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 그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을 위하여 그 내용을 드러낼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울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요한이 주께 받은 사명을 얼마나 충성했으며, 받은 사명을 위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까지 달려 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눈물은 받은 사명에 감격을 체험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요, 받은 사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눈물이 될 것입니다.
3.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거룩하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고 하신 것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충성된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모하는 계시의 말씀을 더 이상 열어 볼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애통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요 7번씩이나 인봉되어 아무도 열어 볼 수 없도록 만든 원인이 다름 아닌 인류의 비참한 죄 때문이라는 사실에 요한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가슴에는 오직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가득하지만, 신실한 사명자의 가슴에는 영혼을 사랑하는 눈물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안타까움의 통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줄 모르는 자신을 위해서도 울어야 하고,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환경과 조건 때문에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에 통곡이라도 하는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눈물어린 기록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사53:5)라는 사실 앞에 사명자는 울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명받은 자의 참 모습입니다.
4. 그러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은 사명자의 눈물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5절에 보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말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증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곧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봉인된 계시의 책의 인을 떼고 그 안에 기록된 모든 일들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대신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책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한 유일한 구원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며,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로 말미암은 사망과 영원한 저주에 대하여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오 만물의 근원이 되신 창조주의 주가 되심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게 모든 만물과 생명들이 그에 합당한 것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8절 이하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모습은 예배가운데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있는데 그 안에는 지상의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하다는 말씀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이라고 거듭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5. 계시록 8:3절에 보면,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성도들의 기도를 향이라 표현하였고, 그 기도의 향들을 하나님 보좌 앞에 올리기 위해서 천사들이 지상을 두루 다니면서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아버지 보좌 앞으로 가져갔다는 사실이 기도하는 사람의 가슴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리는 수많은 제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제사 속에는 반드시 분향의 단이 있었고,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살랐」(출30:1, 7)다고 하였고, 분명히 그 향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의 제물과 함께 늘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 (레2:2) 라고 했습니다.
사실 구약의 제사를 보면 그 중심에는 짐승의 피가 있었고, 이 피는 항상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의 중심에는 희생된 짐승의 피가 있었지만, 제사의 클라이맥스는 다름 아닌 제사의 제물을 태워 올리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제사의 절정에 여호와께로 올라가는 향이 바로 성도들의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일곱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그를 향하여 올리는 거룩한 예배 속에는 새로운 노래가 있었고, 천사들의 찬양이 어우러졌으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곳에 성도들의 기도가 함께 올려졌다는 사실은 성도들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인 줄 믿습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성도들의 올리는 감사와 기쁨의 찬양이며 희생 제물과 더불어 무시로 올리는 기도야말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 입니다.
6. 그렇다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이 모든 영광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은 죄에서 구속함을 입은 피조물로서 거룩하신 주님께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자의 본능이요, 기도는 어린양을 향한 성도들의 흔들림이 없는 신뢰와 소망과 사랑의 표시인 줄 믿습니다.
지상의 교회와 성도들이 수많은 고난 중에도 무너지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사명의 자리를 지키며,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며, 성도는 그의 피값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올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예배는 감사와 감격과 기쁨으로 충만한 줄 믿습니다.
아무도 인봉을 뗄 수 없다는 사실에 사도요한은 울었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의 인봉을 떼심으로 이 지상의 성도의 눈물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성도의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여 그 어떤 싸움과 유혹에서도 이길 수 없는 존재이지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감사와 찬양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울면서 넘어져도 감사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주님이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를 의지하고 그를 믿고 따라갈 때, 우리는 승리자의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기도는 응답으로 넘치고,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복된 모습으로 변하여 영광의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 하는 줄 믿습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