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4.나는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마가복음4:10-20)

[성경본문] 마가복음4:10-20개역개정

10.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마가복음4:10-20/2018.10.14.오전)
1. 소위 짝퉁이라는 것은 명품 때문에 생기는 물건입니다.
가격이 비싸도 잘 팔리고 인기가 있으니, 너도 나도 가짜를 들고 다니면서 진짜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짜가 세상에 많아도 진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짝퉁이 활개를 치고 뉴스에 오르내리고 문제가 생겨도, 그런 가짜 때문에 진품 명품을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단이나 가짜 목사들이 부도덕하고 잘못된 신학 사상으로 세간을 시끄럽게 하면, 반드시 교회가 제일 먼저 욕을 먹고 비판의 도마에 올려져 난도질당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욕을 먹고 예수님이 욕을 먹습니다.
가짜인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무리 활개를 치고 나쁜 짓을 해도 참 기독교는 변함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여 진실하고 정직하며, 세상이 기독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백성으로서 받은 사명을 위해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부족한 것은 많지만 성도는 이 세상에 빛이고 소금인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기독교를 어떻게 평가를 하고 비판을 하던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가짜들이나 엉터리들의 잘못된 가르침이나 행위 때문에 엉뚱하게 참 기독교 신앙이 욕을 먹지만, 우리는 도리어 분별력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참 기독교 신앙의 모습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씨앗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씨앗 하나가 심겨져서 싹을 내고 나면 자라서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기도 하고,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단한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오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한 알 그대로 있으며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그 안에서 생명이 올라와서 싹을 피우고 자란 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려면 씨앗은 많은 수분과 영향을 함유하고 있는 땅 속에 묻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컴컴한 땅 속이지만 그곳에서 씨앗의 껍질이 수분을 흡수하여 부드러워지면서 팽창하다가 생명의 태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씨앗이라 하여도 그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연속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과 일부의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서 조용한 시간을 틈타서 예수님에게 그 의미를 물었고, 그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예수님이 하고 계시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3.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서 우주 공간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바다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토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유는 인간 자체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대지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토지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여기서 사람이 출발하였고, 여기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고, 이 토지를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입니다.
그러나 토지라고 해서 모든 것에 균등한 결과를 내지는 않습니다.
그 땅이 어디에 위치했느냐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토양의 질에 따라서 생산해 내는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평소에 늘 발로 밟고 다니다보니 땅에 대한 가치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귀한 생명을 이 땅은 날마다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우리의 마음이야말로 이러한 토지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토지라도 어떤 땅은 아무리 좋은 씨를 준비해도 전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런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4. 최근에 민간인으로서 최초로 달 여행을 기획하고 있는 마에자와 유사꾸(前澤友作) 라는 실업가가 있는데, 800-1,000억 엔을 투자하여 예술가 8명을 초청해서 함께 1주일 동안 달과 지구를 주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연수입이 약 35억 엔이라고 하지만, 그의 씀씀이를 보면 공개된 연 수입은 껌 값에 불과하다는 느낌입니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만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데, 이런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은 머리를 쥐어짜도 알 수 없는 돈의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최근에는 그의 매년 마다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데, 연구를 많이 한 사람들은 사물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그래서 노년에 노벨상을 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잘 벌어들이는 장사꾼이라도 노벨상은 받을 수 없으며, 노벨상을     받았다고 돈 버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가는 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힘을 어떻게 하면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농사를 짓는 것은 어렵습니다.
농부는 농사짓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절을 따라 풍성한 수확할 얻을 수 있지만, 사업이나 학문연구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땅의 토질이나 계절이나 씨앗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농사에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신앙세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실력도 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라도,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면 나는 종교와 상관이 없다, 나중에 천천히 믿겠다든가 아예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거부 반응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복음의 씨앗,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이고 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믿으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5.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복음에 대한 사람의 반응, 곧 그들의 마음을 4가지로 분류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길 가와 같은 마음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돌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가시떨기 사이, 그리고 좋은 땅이라는 옥토와 같은 마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길가처럼 딱딱한 마음이나 돌밭처럼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땅도, 어느 날 개발하여 금싸라기 같은 땅으로 변하기도 하고, 박토도 갈아엎어서 손질하고 비료를 주면 옥토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을 4가지로 분류해서 말씀은 하고 계시지만, 그 마음이 끝까지 길가와 같은 마음이거나 돌밭 같거나 가시떨기가 있는 변하지 않는 못된 마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태도와 예의를 가지고 다가가도 사람대하는 태도가 영 잘못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늘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자녀가 어느 날 사람이 달라져서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사람도 있으며, 첨단 유행으로 자기 몸을 일류 패션모델처럼 치장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도 어느 날 변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로 칭찬 받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변화가 된 동기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돌짝밭이나 길가처럼 딱딱한 쓸모없는 토지라도 옥토로 변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6. 사람의 마음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플라스틱 같은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반응하는 그런 마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연 몇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였고, 말씀의 씨앗이 그 마음 밭에 떨어지니 뿌리까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사람의 경우는 생명 말씀에 대해 깨닫는 귀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잠시 후에 지금까지 말씀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 구원의 감격이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시험과 고난을 극복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뿌리까지 내렸으니 신앙이 많이 성장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어려운 일을 만나자마자 그 동안에 받은 많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의 사랑을 의심하고, 지금까지 마음에 자리 잡았던 기쁨과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과 낙심으로 가득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에게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늘 좋은 일만 있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들이 진행될 때, 이 사람의 신앙도 평상시처럼 유지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7. 기독교 2천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 왔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나의 신앙은 처음에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기독교는 지금까지 고난과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성도들이 환란과 핍박 속에서 순교의 피를 이 땅에 쏟으면서 믿음을 지켜왔고, 그 믿음을 많은 전도자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헌신하고 희생함으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와 성도들의 신앙이 이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 까지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달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키려면 지금 우리 가운데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십자가는 더 이상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돈 때문에 교회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이 너무 많아서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세상 유혹과 염려 때문에 교회를 떠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복음을 사수하고 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이 일을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내일은 캄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문 18절의 가시떨기로 쌓인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시떨기는 신앙의 장애물입니다.
그 신앙의 장애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본문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막아 열매 맺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8.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심층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자신도 평생을 이 믿음 이 복음의 사역을 떠나지 않고 한 길로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에 대한 나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유혹과 시험과 어려움과 고난이 많았지만, 나와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참 사랑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젊었을 때에는 재물도 크게 보였고 명예도 젊은 날의 즐거움도 크게 보였지만, 세월이 가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밭에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거두는 것은 사실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복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이유가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진실하고 변함없는 마음이었습니다.
인간관계가 꼬이고 불편한 것도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삼상16:7) 다고 하셨고,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잠17:3)신다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옥토와 같은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딱딱한 길처럼, 자갈밭처럼, 가시가 많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아멘으로 반응할 때 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바꾸어 주셨고,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되게 하셨습니다.
정직한 마음, 겸손한 마음, 의를 사모하는 마음도 생명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옥토와 같은 마음이 100배의 열매와 하늘나라의 영원한 상급으로 이어지는 줄 믿습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