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7.귀 있는 자(마가복음4:1-9)
[성경본문] 마가복음4:1-9개역개정
1.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
2.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귀 있는 자(마가복음4:1-9/2018.10.7.오전) 1. 기원전 473년,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월왕 구천이 오나라의 부차에게 대패를 하고 겨우 살아남아 회계산에 숨어 있을 때, 그의 부하 범가가 간절히 간언하기를 차라리 항복하여 부차의 인물됨과 오나라의 문제점을 연구하여 나중에 복수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구천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부차에게 항복하고 그의 종이 되어 마부 노릇 서부터 시작하여 온갖 천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였고, 심지어 부차가 병이 들었을 때에는 그의 대변을 혀로 핥아서 충성심을 보여 줄 정도였는데, 마침내 오나라 왕 부차도 경계심을 풀고 3년 만에 그를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천은 3년 동안 오나라에서 종노릇 하면서 수집한 정보를 가지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때, 마침 오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고 정치적인 혼란까지 겹친 틈을 타서, 오나라를 치자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오나라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구천이 목숨이 아까워 도망을 했다면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고, 부하의 지혜로운 간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벌써 월나라와 함께 오래 전에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구천에게 범가라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옮긴 결과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복수의 기회를 가진 것처럼, 사람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라고 귀를 두 개나 주신 것 같습니다. 2. 마가복음의 지금까지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많은 능력과 기적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우리를 놀래게 만드는 것은 어떻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능력을 목격하면서도 전연 다른 극과 극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하시는 능력에 매료 되어서 병을 고치거나 어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작정 따라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종교지도자들처럼 그를 죽여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사건건 시비와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을 귀신들린 자로 간주하여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슬이라도 벌이 먹으면 꿀을 만들어 내고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든다는 말처럼, 결국은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떤 자세로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과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4장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은 많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비유의 말씀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4복음 전체에서 다루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들으라" 는 명령어로 이 비유를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내용도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한 농부의 씨 뿌리는 행위를 나타나고 있을 만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비유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이 좀 더 알기 쉽게 어떤 내용이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0-13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 당시의 청중들은 물론이고 오늘 우리들조차도 성경에 대한 남다른 지식이 없이는 본문의 내용이 무슨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14절 이하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미 하신 말씀을 해석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도 본문의 비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친절하게 비유를 사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억측이나 오해가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제자들에게만 설명하고 계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비유에는 이중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11-12절에서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의 내용은 비밀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깨달아서는 안 되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이 혹시라도 말씀을 깨닫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의도는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선포되어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깨달음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마7:6에에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천국의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임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들의 수준이 개나 돼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 선포되는 여호와의 말씀은 동일하지만, 그 결과가 각각 다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면 어디서나 자동판매기에서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자동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위대한 생명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라도 그것을 듣는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해 보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듯이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귀를 백 개나 달고 다녀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다르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농부가 각각 다른 씨를 다른 밭에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떨어지는 씨를 받아들이는 토질이나 그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본문에서는 4가지의 땅이나 혹은 밭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4절에 보니, 길가에 떨어지는 씨가 있습니다. 땅이 딱딱하여 떨어지는 씨를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튕겨 버립니다. 그래서 공중의 새들이 그것을 보고 내려와 씨를 먹어버립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아무리 많은 씨를 부어도 새나 짐승들의 밥이 될 뿐입니다. 한 마디로 농부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마음 밭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애써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자들에게는 도리어 그 귀를 막아버린 것 같은 결과를 얻게 하셨습니다. 신앙생활도 오래 하다보면 관습이 되고, 타성에 젖어서 은혜 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초심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라고 하였습니다(마18:3). 둘째는, 흙이 얕은 돌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의 마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일 수 있습니다. 흙이 얇은 곳은 다른 옥토에 비해서 처음에는 성장이 빠른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많은 수고를 들여서 뿌리를 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즉시 모든 영양분과 에너지는 땅 속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면서 많이 속는 부분이 이런 경우입니다. 성도들이 단시일에 은혜를 받고 열심을 내는 것을 보고 그것이 부흥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면 나중에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본문 6절에 보니 흙이 얕기 때문에 태양의 뜨거운 빛에 뿌리가 견디지 못해서 타버리고 말라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연단하시고 시험해 보시는데, 목회자도 사람을 지도자로 세울 때에는 반드시 연단의 과정을 거쳐서 세우는 것이 바른 방법입니다. 6. 지난 70-80년대 초에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려면 국가에서 시행하는 교양학습을 받아야 했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남의 나라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기본적인 정보와 예의를 배우고, 특히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조금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이나 고급 공무원에 임직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마디로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때에는 저 사람들이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무엇 하던 사람들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옛날 해외여행 나가던 사람들보다 더 예의가 없고 기본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땅이나 밭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일단 그곳에 씨를 뿌려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어지기 전에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 마음이 딱딱한 지, 얄팍하거나 자갈밭처럼 쓸모없이 요란스럽기만 한지,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세상 염려로 충만한 지, 그렇지 않으면 100배의 결실을 맺는 옥토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의 씨를 부지런히 뿌리면서, 사람들을 말씀으로 훈련시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기도로 무장하도록 하며, 전도와 봉사로 섬김의 영적인 교양을 갖추도록 하는데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인정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씨를 뿌리다가 보면 낭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열매는커녕 뿌리도 못 내리고 한 알 그대로 새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얇은 흙에 떨어져 뿌리를 잠깐 내리다가 속히 말라죽는, 그래서 지도자를 실망시키는 일들이 있는데, 그 때 인물이나 일꾼에 대한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농부의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는 여러 가지의 재능도 많고 훌륭한 인재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세상에 대하여 지나친 욕심 때문에 도중에 좌절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 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축복의 땅에 뿌려진 씨앗 같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농부의 수고를 헛되지 않도록 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하면서 받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이 되는 것입니다. 8. 모든 사람들이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땅이 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는 것입니다. 양쪽에 귀가 달려 있다고 다 듣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귀는 안에서 썩고 병들어서 듣지 못하는 귀가 있으며, 어떤 귀는 그 신경이 다른 곳에 집중되어 남이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귀는 불신앙이나 인본주의로 철저하게 무장이 되어서 듣는 즉시 비판하고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어떤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처럼 분노심과 대적함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반응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아멘으로 받아 순종하여 은혜와 축복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핵심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8:47절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세로 들어야 하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경청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받으면, 이것이 좋은 땅처럼 옥토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영적 기갈을 만난 이 시대에는 풍성한 생수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가난과 질병과 연약함 속에서 고통 하는 인생에게는 치유와 회복과 소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리석은 소리에 흔들리고 넘어지는 그런 귀가 아니라, 생명의 음성을 담고, 축복의 말씀을 담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담아 순종함으로 30배, 60배, 100배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그런 귀를 가진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