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부자교회, 가난한 교회(계시록3:14-22)
[성경본문] 요한계시록3:14-22개역개정
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제공: 대한성서공회
부자교회, 가난한 교회(계시록3:14-22/2018.1.21.오전)
1. 교회는 무엇입니까?성경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켜 교회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교회를 가리켜, "교회는 그의 몸"(엡1:23)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하면서, 고전12장 후반부에서 이 교회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27)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교회란 눈에 보이는 어떤 가시적인 건물이나 조직이나 혹은 교파나 소유가 아니라, 성도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그 자체를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어떤 힘이 있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사람들이 모일 때, 그곳이 어떤 곳이든지, 그곳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든지 관계없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이 교회를 생각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형식적이라도 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히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하나님이 나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불신한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가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르고 구설수에 오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교회 자체는 결코 흔들리거나 그 존재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비록 연약한 인생들이 모였다고 하지만, 그 모임 자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단언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교회가 사람들의 소유가 된 교회나 세상의 조직화된 그런 교회가 아니라, 분명히「내 교회」 라고 선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의 본질에 관한 것이나 소유에 대한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문제는 왜 우리에게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소유인 이 교회를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존재 가치가 있으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교회가 지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간단하게 설명하면, 교회의 존재 가치, 즉 교회의 사명은,
첫째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통해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의 이러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동시에 예배하는 자들이 기쁨을 맛보며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잃었던 기쁨과 감사가 회복되고,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래서 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를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전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고 하시면서,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각양의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셋째는, 사랑으로 행하며 서로 섬김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또한 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 아래에서 죽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마20:28) 고 선언하셨고, 말씀대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 우리가 여기까지 살펴보면서 느낀 것이 한 두 가지쯤은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대하여 기본적인 것을 몰랐는데, 교회는 무엇이며, 왜 이 지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깨닫고 교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은 교회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요 축복의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 대한 축복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잃은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자들을 향한 축복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자들을 향한 축복의 약속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성도들의 신앙의 상태는 어떠하며, 특별히 주님이 이 교회를 향하여 원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생활로 영육간에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5.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중에 하나로, 이 교회의 특징은 다른 교회들은 주님의 칭찬도 있었고 책망도 있었는데, 이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어떠했기에,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떠했기에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들어야 했습니까?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가리켜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행위를 가리켜 미지근하다고 하는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할 때 미지근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결단력이 부족하거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런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하게 만들고, 불신하도록 만드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형편을 생각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나햐면 16절에 보면, 너희의 그 미지근함에 견디지 못해서 내가 너를 토해 버릴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도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한다며 그 사람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끝장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서슴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6. 본문 17절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로마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섬유산업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하고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에 돈이 너무 많다보니 은행이 있는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흘러넘치는 도시의 교회이고 보니, 성도들의 생활이 부요하고 교회 재정도 넉넉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교회 사람들은 우리는 부자요 부족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서머나 교회 같이 다른 지역의 교회들이 신앙의 핍박을 받으며 그 고통 속에서 신앙의 순수함을 지켜가고 있을 때,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도리어 넉넉했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는 부자요 부족함이 없다고 느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물론이고 현대교회의 한계점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선배들은 삶이 궁핍하고 환경이 어렵다 보니 세상에 소망을 두기 보다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금식기도도 했다 하면 20일, 40일간씩 하고, 철야기도며 모여서 예배하고 전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귀한 것이 있으면 교회로 가져 오고, 성도들과 나누어 먹을 줄 알았고,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 다녔던 교회가 천막치고 예배하다가 전국 사방에서 조금씩 헌금을 받아서 교회를 건축하는데, 온 성도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하고, 또 지방의 각 지역의 성도들이 찾아와서 무보수로 목수, 미장이 등의 일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는 거의 들지 않고 교회를 아름답게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은 다들 부자로 살았습니다.
7. 그런데 주님은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무엇이라고 책망하고 계십니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 고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고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17절의 말씀을 의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동시 진행 중인 질병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몸에 질병이 심각해지면 증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신장 기능이 약화되면 얼굴이 부어오르고, 간이 나쁘면 얼굴색이 검게 변합니다.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해도 증상이 나타나면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회였지만,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님이 마치 안면 몰수하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교회가 중증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주일날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은 채로 교회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웠기 때문에 영혼은 가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시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불쌍하다(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고 하셨습니다.
8. 문제는 지금 주님이 이 교회를 보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실 때 어떻게 보실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성경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스마트 폰에 성경을 그것도 각국 나라 말로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있습니다.
원치 않아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그날그날에 묵상할 말씀과 해석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우리는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 말씀이 내 심령 깊은 곳에 까지 내려가도록 시간을 만들어 묵상하고 있습니까?
물론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이래 믿어서는 안되는데---, 열심을 내야 하는데--- 하면서 하루하루에 쫓겨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주님이 보실 때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우리가 너무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님을 간절히 찾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19절에 보면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가서는 내가 너와 더불어 함께 먹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겉으로 보면 그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모여서 천사처럼 하나님께 예배하고, 바울처럼 전도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서로 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참 사랑의 교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9.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이 부자 교회이고, 부족한 것이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은 그들을 가난한 교회요 가련하고 불쌍한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향한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세상 일이 더 바쁘고 주님의 뜻 보다는 내 생각이 먼저 앞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매달리고 몸부림치고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19절에 내가 너를 책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망은 누구에게 합니까?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20, 21절에 기록된대로 첫째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더불어 먹는 신령한 교제를 원하고 계시며, 둘째는 이 영적 싸움에서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서 주님과 영원한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큰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재정이 넉넉한 교회가 부자 교회가 아닙니다.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가 부자교회는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신 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위해서 내 재산과 생명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부자교회요 영광의 승리를 얻는 주님이 원하시는 축복의 교회인 줄 믿습니다.
10.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 인생의 종말도 멀지 않았습니다.
혹시 오늘 밤에 눅12장의 부자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직도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내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불쌍한 것을 깨달아, 지난 날은 회개하고 오늘부터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로, 내 안에서 먼저 믿음의 부자가 되고 사랑의 부자가 되고, 그래서 교회도 부흥하는 그런 성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