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0.요셉이 보낸 세월(창세기45:1-8)

[성경본문] 창세기45:1-8개역개정

1.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2.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제공: 대한성서공회

요셉이 보낸 세월(창세기45:1-8/2017.12.30.오전)
1. 2017년도 한 해를 보내면서 국가나 개인이나 이 사회가 유달리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문제도 많았는데, 일본은 내년에 국가적인 중대한 이슈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년이 되면 일본의 연호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유는 지금의 천황이 퇴위하고 황태자가 그 뒤를 잇기 때문입니다.
1989년에 소화 천황의 뒤를 이어 평성시대의 천황으로 29년을 통치해 온 것입니다.
아무리 일본의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라고는 하여도, 태평성대의 시대에 일국의 정점에 서서 모든 국민의 성원과 존경을 받은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본의 천황이 생존하면서 퇴위하는 예가 거의 없었는데, 정치권의 거부를 뿌리치고 표면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일본 천황은 복이 많은 사람이고 걸어온 인생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소원을 성취하면서 내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사람들의 소원이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인생을 유혹하고 흔들고 시험하여 장애물에 걸리고 고난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걸어가야 하는 세월이 만만치 않으며, 야곱의 표현대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으로 내 나이가 얼마 못되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창47:9)는 고백에 동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지금 일본의 경우는 사회가 고령 사회로 점점 노화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은둔형 외톨이가 된 자녀들을 고령의 노인들이 돌보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부모는 이미 80대에 들어서서 경제적인 능력은 물론이고, 자신의 육체도 한계점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40-50대의 자녀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런 가정에 대한 대책은 물론이고 숫자도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젊어서는 그래도 잘 나가던 인생이었는데, 은둔형 외톨이 자녀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암초에 걸려 노후라는 말조차도 사치스러운 그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는 파라싸이트 싱글(Parasite single)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넘쳐났는데, 이것은 장년이 되어서도 부모를 떠나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말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상태가 심화되어 지금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파탄을 맞이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100세 인생이라는 말은 도리어 고통이요 절망입니다.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부모와 미혼의 자녀가 동거하고 있는 비율이 전체 가구 중에서 작년의 통계에 20.7%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8050문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이 세상의 문제점이나 고통당하는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문제점이나 그 밖의 사회적인 이슈를 다 논할 수도 없고,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국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가 그동안 걸어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들의 문제는 또한 무엇이며, 여기에 대한 대안이나 답을 성경 안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가치 있는 조언을 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우리가 걸어왔던 세월을 돌아보면서, 믿음의 사람 요셉의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이고, 그가 걸었던 인생의 길과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인생의 길이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면서 나와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복된 답을 얻고자 합니다.

4. 요셉은 어릴 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남다른 행복한 세월을 보냈지만, 형님들의 시기심으로 애급에 노예로 팔려가면서 그의 인생길은 고난의 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씨족사회에서 형제나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미움을 받는 것은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한국 속담에도 집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집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집 안에서 조차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이 사람의 인격이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난 속에서도 내 인생에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영적인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힘들고 어렵지만, 요셉은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형들의 미움을 받으며, 나중에는 그 형들의 손에 의해서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지고, 마침내 애급의 노예로 팔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이 있었지만, 그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시는 손길을 보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요셉처럼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현실만 바라보면 절망하게 되고, 미래를 향해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질지라도, 우리의 소망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고 낙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5. 요셉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 주어진 자신의 환경이나 조건을 본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습관이 인격을 만들고 그 인격이 삶을 만들어 가듯이, 요셉은 어려서부터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꿈을 꾸었다는 것은 계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는 형들하고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이 사람의 인격과 행동을 바꾸고, 그것이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그러한 요셉을 가리켜 부친께 자신들의 행동을 고자질하는 스파이쯤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도리어 꿈을 이야기하는 그가 미웠고 형제라도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의 거듭되는 꿈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형제 10명이 다 똑같은 수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이 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수양회나 어떤 모임에 가면 대부분 낮선 사람은 기피하고 평소에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려고 합니다.
이래가지고는 변화나 새로운 경험이나 지식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애급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손에 의해서 애급에 노예로 팔려가도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6. 사람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려고 고난을 주시고, 우리가 걷는 길에 장애물을 놓아서 힘들게 하시고, 때로는 깜깜한 밤도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급에 노예로 팔려갈 때, 이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이거나, 인생패배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새로운 길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그 가운데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만나면서 하나씩 깨달아 가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2018년이라는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시간으로 넘어가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거나 바뀐다고 인생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어떤 조건에 변화가 왔다고 내가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왜 하나님이 내 인생을 2017년에 끝내지 않으시고, 새로운 시간을 주시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려면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일에 인생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간 우리가 소모했던 시간들, 걸어왔던 인생의 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7. 꿈 해석도 하기 나름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우리의 인생을 내가 해석하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도 불평하면 재앙이 되고, 고난도 감사하면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몸이었지만, 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장군 집의 집사로 일하다가 못된 주인여자의 올무에 걸려 감옥에 가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도 열심히 하다 보니 죄를 짓고 들어온 왕의 관원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처음에는 요셉에게 너를 기억하고 내가 나가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잘 나가다가 중간에 말아먹는 정말 되는 일이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것을 불평하거나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소동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물론이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고, 더 큰 축복의 세계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어려운 일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요셉의 경우, 이 고난들을 항상 긍정적으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8. 믿음의 사람 욥도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을 당했을 때에 무엇이라 고백했습니까?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부러울 것이 없이 그렇게 행복하던 삶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고 다 잃어버렸을 때, 자식도 재산도 건강도 아내마저 다 잃고 떠나갔을 때에 고백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이 없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해석과 고난 앞에서의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욥의 아내는 네가 믿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고 하였습니다.
다니엘도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 요셉은 이 모든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기근이 심해지자 양식을 사러 애급에 내려온 형들을 요셉이 보고 하는 말이,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고 하면서, 계속해서 "그런적 나를 이리로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8) 고 하였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의 해석입니다.

9. 요셉이 애급에서 보낸 세월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세월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세월 속에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고, 고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그 때 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홀로 걸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보낸 모든 고난의 세월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고. 축복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가는 곳 마다 형통함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래서 보디발 장군 집에 가면 그 집안이 잘되었고, 요셉이 마침내 임금의 꿈을 해석하여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에는 나라에 큰 풍년이 임했습니다.
요셉이 애급의 총리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감옥에서 왕의 총애를 받았던 두 사람의 장관을 잘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걸어온 고난의 세월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길이었고, 고난 속에서 변화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미래가 약속된 축복의 길인 줄 믿습니다.
조건이 나빠도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낙심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성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도바울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고 선언하였습니다.
지난 세월의 걸어온 길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길이었다면, 오늘부터 생각을 바꾸고, 고난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요셉을 축복하신 하나님이 우리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2017년도는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이면 2018년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새해를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 중심의 축복의 사람이 되어서, 고통 하는 이 시대를 죄악에서 구원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요셉처럼 사용하시고 축복하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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