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2.변화의 축복(요2:1-11)
[성경본문] 요한복음2:1-11개역개정
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변화의 축복(요2:1-11/2017.11.12.오전)
1. 다니엘 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건강을 주심에 대한 감사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병든 사람이 많고, 희귀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프고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 여기까지 건강에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적지 않은 교회들이 재정문제로 문을 닫거나 위기에 빠져 있는데, 우리 교회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33년 동안 신앙의 공동체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국가나 지방 자치체나 개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빚에 허덕이고 있는 그런 현실에 우리 교회가 빌린 빚도 없이 33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복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교회가 지금까지 만난 어려움이나 위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다 넘어가게 해 주셨고, 또 그 때 그 때 마다 도움의 손길을 통해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또 어려움 중에도 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남다른 복입니다.
우리가 쌓아 놓았다고 그것이 복이 되고 안심이고 자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은, 그것이 재물이던지 명예나 그 어떤 능력이던지 다 헛된 것이고, 도리어 그것 때문에 나중에 인생의 짐이 되고 고통이 되고 올무가 되어 나를 넘어지게 만들고 영원히 부끄러운 자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2.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우리의 삶 자체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는 10가지 중에 9가지가 잘 되어도 그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그 중에 1가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받은 복이 무엇이고,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살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이며, 우리는 받은 축복과 은혜로 어떻게 살며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오랜 세월을 통해서 너무 많이 만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인생이 어느 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가 도리어 축복의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더니 내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기적으로 바꾸어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더 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본질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늘 모자라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그 제자들과 더불어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아 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식을 치루는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양가 집안에서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도 준비된 것이 부족했습니다.
3.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고 해도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눅12장의 부자를 보면,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 정도로 준비하면 인생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장담했지만, 그런데 그 날 밤에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장담하던 그 인생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것도 갑자기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사람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면 네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것이 너 자신을 위해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고 하시면서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도 사용할 수도 없는 그 재물을 쌓아 두면서, 하나님께는 너무 인색했다고 꾸짖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과 이 누가12장의 부자의 내용은 인생의 실상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쪽은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국에는 부족함으로 위기를 만났고, 다른 한쪽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자신의 준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남들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삼촌 덕분에 잘 살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풍요롭고 성공의 기회가 가장 많다고 생각되는 소돔성을 택하고 그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자기 인생에 대하여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준비하고 미래를 대비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으로 살지 않고는 절대로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자의 생각과 행동을 보신 예수님이 왜 그를 향하여 어리석다고 했습니까?
창고에 쌓아 놓은 재물이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영혼에 유익이 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은 생각지도 못하고 오직 자기를 위해 충실했던 인생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세상 사람도 아니고 초대교회의 성도였는데, 물질에 대하여 욕심을 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고,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부부는 자기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했다가 도중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였기 때문에 죄가 더 큰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내가 내 능력으로 모았다고, 내 소유로 되어 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란 것은 가정을 만들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만난 이 사람들을 누가 도와주었습니까?
그 잔치에 초청 받으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병들거나 위기를 만나고 고통에 빠졌을 때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문제와 고통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생명을 걸고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 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먼 곳에 구경꾼으로 세워 놓을 것이 아니라, 내 인생 한 가운데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고 어떤 고통에 빠져 있을지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이기 때문에, 계산을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실패하여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인생은 더욱 꼬이고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더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11장에 보면 시날 평지에 모인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었습니다.
목적은 두 번 다시 홍수로 멸망하는 것을 피해보자는 것이고, 그래서 온 족속이 하나가 되어 홍수를 내리신 하나님을 대적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고, 함께 힘을 합하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구원의 주가 되심을 인정하고,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 가나 혼인잔치에 처음에는 예수님이 손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수님은 더 이상 그곳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일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집안의 하인들에게 주인으로서 명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본문 5절에 기록된대로, 그곳에 함께 계시던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라면 내 인생은 내 수준과 능력 이상을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의 삶과 생각은 하나님의 아들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끌어 모으고 하나가 되고 힘을 합해도 한계가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셨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높이와 우리의 인생과 생명의 가치를 무한대의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첫째로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고, 둘째는 본문 5절에 기록된대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7. 사도 베드로는 인생에 대하여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벧전1:24)다고 했습니다.
주위에 보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어린아이를 키우듯이 온갖 애정을 쏟으며 정성스럽게 돌보면서도 그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짐승에게 애정을 쏟는 것 자체로 외로움을 달래고 자기만족을 하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나 개가 사람처럼 효도하거나 성공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도 다 이와 같습니다.
부자의 창고에 쌓여 있는 재물은 인생 도움 보다는 자기만족의 주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내 인생에 위기를 만났을 때에는, 전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내 영혼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 자체가 풀이고 떨어지는 꽃잎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곳의 물을 퍼서 포도주가 동이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물이 무슨 물인 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7.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손발에 묻은 먼지나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허드레 물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음료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화를 낼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정결하게 하는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곳에서 떠온 물을 마시고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0절에 보니,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사건에 대해 결론을 맺기를 예수님이 행하신 첫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기적도 있고, 이적이나 기사라고 표현하는 것도 있고 본문에서는 표적이 나오고 있는데, 의미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본문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을 표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일을 행하신 자가 누구시며, 왜 이런 일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그 의미와 목적을 밝히는 뜻에서 표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고 의지하고 그래서 복 받고 구원받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 손발을 씻는 허드레 물을 떠서 사람들에게 마시게 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8. 그런데 10절에서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허드레 물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인들이 떠서 가지고 가는 사이에, 그 물은 색깔이 변하고 맛이 변하고 냄새까지 변함으로, 그 가치와 본질에 있어서 전연 다른 것으로 변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인생이 주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실상입니다.
내 힘과 머리와 재주만 믿고 준비하는 인생은 바벨탑과 같고, 롯의 인생과 같습니다.
내가 변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내가 바뀌면 세상도 달라지는데 변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영접하고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마다 이 가나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기적은 매일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사울이 바울로 변한 것입니다.
지금도 스스로의 인생을 한 번 바꾸어 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환경과 조건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인생은 허드레 물이 변하여 가장 맛있는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최대의 기적이요,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이 앞에서 얻은 가장 큰 축복이고 감사할 조건인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이 시간에 다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 처럼 반드시 근본적인 변화의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변화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고, 지금까지 주님은 나보다도 더 내가 변화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사하고, 이 시간에 나를 다시 한 번 새롭게 변화시켜 달라고, 그래서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