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베드로후서1:1-4)
[성경본문] 베드로후서1:1-4개역개정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
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베드로후서1:1-4/2017.11.19.오전)
1. 지난주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레오날드 다빈치가 그린 예수님의 초상화「살바도르 문디(구세주)」가 미국 뉴욕 경매장에서 4억5천31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금액을 일본 돈으로 환산하면 약 510억 엔으로, 그림 가격으로는 사상최고가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남아있는 다빈치의 그림 20여 점 중에 유일하게 어떤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이었고, 또한 이 그림을 낙찰한 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500여 년 전의 화가가 그것도 실물이 아닌 상상으로 그린 이 예수님의 얼굴, 이 한 장의 그림이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정도로 막대한 금액에 거래된 것을 보면서,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한 예수님의 얼굴이 이렇게 엄청난 고가를 호가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입고, 믿는 자로서의 특권 중의 특권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받은 그 사랑과 그 은혜, 그 축복이 과연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묵상하다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3절에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 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누리면서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이 물음에 자신 있기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되겠습니까?
2. 헨리 나우웬은 말하기를, 우리는 스스로가 저주 가운데 살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나, 여러 가지의 질병과 사고며 재해, 그리고 전쟁이나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벌을 받고 있거나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매일 언론의 뉴스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유혹은 더욱 커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저주와 고통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영원히 축복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자라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문제와 고통과 의심 속에서 살아가면서 흔들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문 2-3절에서 거듭 반복하면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아" 는 것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빈치가 그린 이 「살바도르 문디」 라는 이 예수님의 그림은 오랫동안 다빈치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소유 중에서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내가 그 가치를 알지 못할 때에는 호기심은 있을 수 있겠지만 관심도 없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보화를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으며,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다는 것은 일반적인 세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심을 통해 얻어지는 기독교의 진리인 근본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위한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이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은 이 일을 위해서는 이미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그 분이 주신 특별한 권한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은혜를 베풀 때, 우리가 그 분에 대한 존재를 전연 모를 때에는 그 분의 호의까지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분이 어떤 분이며 어떤 이유로 나에게 호의를 가지며 은혜를 베푸는지 알게 된다면, 그 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심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분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나중에는 더욱 친밀해지고, 더 깊은 신뢰가 생기고 그 분의 인격과 의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4. 이것은 바로 우리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하여 사도바울이 말대로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할 때에는 관계 역시 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을 때에는 참된 신앙고백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갈수록 그 분이 나에게 주신 보배로운 능력과 구원의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리스도를 앎으로 시작되고, 깨달아 알게 되는 것들을 행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안다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놀라운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고 하였고, 3절에 가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는데, 우리의 현실은 이런 것을 다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고 중에 하나가 배달사고입니다.
물건을 보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옛날에 정치적이 뒷거래가 암암리에 유행할 때 이런 배달사고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달사고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런 것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착각하셨는지 아니면 아마 천사가 중간에서 배달사고를 낸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5.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4절에 보니 분명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바깥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정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욕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온"(약1:17) 다고 하였는데, 내 안에 있는 정욕이 이런 좋은 것을 다 막아버린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우리의 정욕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이 다 썩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5절 이하에서 강조하기를 더욱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정욕은 하나님이 원래 우리를 만드실 때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모든 귀한 것을 다 빼앗아 가고 무효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들을 다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양심에 화인까지 맞아 멸망의 자식처럼 고통하며 신음하면서 죽지 못해서 겨우겨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현상은 사도 베드로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은 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나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셨는지 깨닫고 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는 만큼 회복이 되고, 깨닫는 만큼 우리의 삶은 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깊이 아는가하는 영적인 지식의 문제입니다.
6. 우리 주위에 돈 맛을 아는 사람들을 보면,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돈을 끌어 모으며 재물에 빠져 있습니다.
남녀 관계의 잘못된 사랑이라도 그 사랑에 한 번 빠진 사람은 남편, 아내, 자식도 소용이 없고, 다 버리고 그 허무한 사랑을 잡으려고 쫓아갑니다.
나라의 장관자리 하나라도 그것에 눈이 먼 사람들은 청문회를 통해 온갖 부끄러운 일이 온 세상에 다 들어나도 그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끝까지 권력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칩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 내 안에 있는 정욕이라는 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면서 멸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도 일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생명과 경건에 속한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깨닫는다면 결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박사 학위를 10개나 받아도 무엇이 나를 고통하게 만들고 무엇이 나에게 있는 온갖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산 속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까? 누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도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죄인 되었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지혜입니다.
7. 지난 한 해 동안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축복과 은혜와 능력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 자녀된 자의 축복에 대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여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2:9)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세상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것들을 전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 뒤에 계속해서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사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벧전2:11절에 말하기를,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그런 신분과 능력 안에서 살아가지만, 실상은 내 안에 있는 정욕이 이런 모든 것을 다 썩게 만들었고, 내게 임하는 이런 좋은 은사를 다 물리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뒤에 나오는 8절에 보면,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8. 다시 본문 2절로 돌아가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은혜와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베드로후서는 교회를 공격하는 이단의 침투로부터 보호하고, 하나님 중심의 바른 신앙을 사수하기 위해 사도 베드로가 유언장처럼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이단의 공격에 넘어지고 그들의 밥이 되고, 시험에 잘 넘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낙심하고 의심하고 불평하고,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내가 알고 경험하는 만큼 성장하는 것이지, 그 이상은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가며,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으며,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을 때,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서 정욕으로 드러나고 있는 죄의 세력에 대한 정체를 깨닫게 된다면, 죄가 주는 고통과 파괴적인 능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되고,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정욕을 어린애기를 잠재우듯이 그렇게 달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뽑기 위해 싸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배우는 일에 힘을 쓴다면, 성령님은 우리가 배운 만큼 성장하도록 도우시고, 성장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풍성한 능력과 축복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9.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존재하였지만, 또한 동시에 완벽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도 33년의 전 생애를 통하여 많은 시험과 유혹에 노출이 되셨고, 특히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많은 고통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정욕을 따라 세상을 구하지 않으셨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심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도리어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고 병든 자도 치료하셨고 오병이어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기도 하셨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런 능력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분 안에는 이런 것 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하늘나라의 보배로운 것들도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수가성에서 배고파 먹을 것을 구하려 갔다고 돌아왔을 때 하신 말씀이,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요4:32) 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만나 보지도 못했던 다빈치의 상상에 의한 예수님 초상화 한 장의 그림이 어마어마한 액수로 거래가 되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 분이 지금 내 안에 계심을 알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과 능력이 이미 우리 안에 충만한 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대신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으로 감사를 빼앗아 가는 모든 의심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언약의 말씀을 붙든 기도로 모든 불평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 전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그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알고 배우고 깨달은 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으로 나아간다면, 다빈치의 한 장의 그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보배와 능력과 구원의 은총으로 풍성하고 복된 삶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누리면서 감사하며 사는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