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2.출생에서 죽음까지(누가1:5-23)
[성경본문] 누가복음1:5-23개역개정
5.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8.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21.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출생에서 죽음까지(누가1:5-23/2016.5.22.오전) 1.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장수를 누리는 것이나 부귀를 누리는 것이나 명예를 얻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는 전연 관계없이 살면서도 누구보다 행복하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고 복된 삶을 살다 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불렸던 세례요한입니다. 그의 삶이 어떤 삶이었고, 무엇을 위해서 살았기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마11:11)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오늘 우리는 세례요한의 인생이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한 삶이었으며, 그리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어떠했는지를 알아봄으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복되고 가치있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 합니다. 2. 첫째로 세례요한의 출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석녀로서 더 이상 자녀를 기대할 수 없는 그런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서 사가랴에게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이 일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미 두 사람 부부가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불신하였으니, 너는 아이가 태어날 때 까지 벙어리로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 하나는 아이가 모친의 태속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이라는 말씀과, 둘째는 아이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없는 가정에 아이가 출생하면 그것보다 기쁘고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사가랴의 가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자녀를 주시려면 진작 젊었을 때에 주실 것이지, 이제 와서 자녀를 주시면 세상 사람들에게 창피한 일이고, 또한 늙어서 자식을 키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늙은 사가랴 부부는 천사가 전하는 소식이 반갑기 보다는 당혹스러운 일이었고,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던 것 같습니다. 3. 그러나 세상에는 신기한 일도 많고 놀랄만한 사건도 많지만, 세례요한의 출생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요, 만세 전부터 예정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늙은 부부가 어린아이를 낳는 일이 어째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세례요한의 기적적인 출생의 목적은,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장 전체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엘리사벳의 친척인 마리아의 잉태 사건이 나오는데, 마리아 역시 천사가 전하는 수태고지에 두려움과 당혹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남자 손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이미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친척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리아는 확신했습니다. 이 일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고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1:37)는 말씀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 고 고백하며 이 사실을 수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친척 엘리사벳의 기적적인 잉태 소식이 마리아에게는 두려움과 근심을 씻고 용기를 얻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해야만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세례요한이 먼저 와서 알리고, 그 분의 사역을 준비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4. 이러한 세례요한의 출생에 비추어 우리의 출생과 인생의 삶을 어떤 것입니까? 저 들판에 핀 꽃이나 들풀처럼 어쩌다 세상에 왔으니 그럭저럭 살다가 남들처럼 늙어서 적당한 때에 죽는 그런 인생입니까? 그래서 생명이 있고 젊음이 있을 때 남들보다 더 분발해서 잘 먹고 잘 살고, 그런 인생을 자랑하고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가치라고 생각합니까? 만일에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목적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만드신 목적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왜냐면 인생의 참된 가치는 남들보다 더 많은 물질을 누리거나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인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까? 인생이란 누가 나를 만들었으며, 누가 무엇 때문에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며,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출생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출생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가랴의 가정에 일찍 자식을 주시지 않고, 예수님이 출생하시기 직전에 태어나도록 해서, 그 분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 세례요한의 출생과 그 인생의 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그렇게 극적인 드라마처럼 출생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지금은 일본 땅에서 살도록 하신 것은 분명 남다른 섭리와 목적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일본을 불쌍히 여기고, 그래서 이 땅 이 민족을 치유하고 구원하라고, 복음화하라고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를 통하여 나타내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5. 두 번째로 세례요한의 출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마4:17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으로 세상에 선포하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세례요한이 평생에 외치던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를 미리 알려 준 사람입니다. 그의 사역은 욕심이라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고 고통하는 인생들을 회개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원해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케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책망함으로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요단강 물로 세례를 행함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의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마3:11절에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 이라 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홀로 거하면서 가죽 옷을 입고, 석청과 메뚜기로 생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창자 받으실 고난을 미리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나중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그의 생활이나 그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선포되는 메시지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이 목적이었고, 그의 생활 방식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심지어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까지 예수님께 보내어 그를 따르도록 했습니다. 과연 그의 삶은 오직 예수 중심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이었고, 또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자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로 충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으로 충만할 때, 이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6. 셋째로 세례요한의 죽음은 무죄한 피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잘 먹고 잘 살고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리고 장수하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이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고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면, 그래서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보면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장수하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면 33살에 운명하신 예수님이나 세례요한은 저주받은 인생입니까?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요 능력이라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 다고 하신 예수님이나 세례요한은 실패한 인생이란 말입니까? 왜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은 자기 자신이 왜 세상에 왔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인생의 목적의식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당연한 듯이 나아갔으며, 그의 삶이 위대한 만큼 그의 죽음도 위대했습니다. 7. 그렇다면 무엇을 가리켜 그의 죽음이 위대하다는 것입니까? 목 베임 당해 죽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해 길을 닦는 사람처럼 그를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사명이 다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미련 없이 생명에 대한 애착도 남기지 아니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위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니 자신은 물러났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해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데 비해, 그는 제 인생에 대해서도 끊고 맺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능력과 메시지를 듣고는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를 사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편승해서 어떤 인기나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묶고 풀어 드리는 종이 되기에도 적합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는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메시야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돈도 벌고, 예수 이름 팔아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말 제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망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세례요한의 고백대로 나로 인하여 그리스도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할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이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닦고, 복음의 다리를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인생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8. 성경에 보면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가서도 왕명을 어기면서까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포로 신분이었지만 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출세의 길을 달려갈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온갖 세상의 부귀를 한 몸에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였고, 그 뜻을 굽히지 않았더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 바벨론제국의 미래의 되는 일들을 하나님이 다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아무도 따라 오지 못하는 놀라운 지혜를 주셔서 느브갓네살 임금의 꿈을 알아내고 그것을 해석하였고, 벨사살이 베푸는 연회 석상에서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쓴 내용을 풀어 해석하는 능력을 얻었고, 다리오 임금 때에는 전국 120여 방백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고, 나라가 바뀌어 바사의 고레스 왕 때까지 수많은 왕을 섬기면서 형통함을 누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도 왕의 신임을 입은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출세 길을 달리고 있는 이 편안한 왕궁을 버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동족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랬더니 느2:8절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가서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였고, 또한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율법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 것은 관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9.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지금 나는 무엇을 결심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의 미래를 위해 약속하시기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쁨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렘33:9) 는 말씀처럼,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그 분을 위해 우리의 이 생명을 드림으로 이 세상을 우리가 떠난다면 이 보다 더 영광스럽고 복된 일은 없는 줄 믿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고, 그 분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도록 도우셨고, 그리고 그 분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꺼이 죽임을 당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세례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