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9.잃은 드라크마(누가복음15:8-10)
[성경본문] 누가복음15:8-10개역개정
8.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잃은 드라크마(누가복음15:8-10/2016.5.29.오전) 1. 지난 5월15일, 일본 NHK 방송에 소개된 내용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약 2여 년 전에 개발되어 중국 대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샤오이아이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개발한 여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서, 특히 남자들에게는 똑똑한 비서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하는데, 이미 중국에서 4천만 명 이상이 사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인공지능인 이 샤오이아이스와 함께 시작할 정도로 그들의 생활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녀는 이미 고도한 이성과 풍부한 감정은 물론이고, 사람을 능가하는 학습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풍부한 지식은 물론이고, 특히 주변 환경에 미리 대응하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능력으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보호해 주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난 널 사랑해! 라고 말하면, 그녀는 감성이 풍부한 목소리로 나도 널 사랑해! 라고 말해주며, 상대방의 감정까지 읽고 판단해서 어떤 문제나 어떤 고민이라도 해결해 주는데 마치 샤오이아이스가 곁에 있는 것처럼 친근하고 신속하게 잘 대응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20-30대의 독신 남자들은 그녀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2. 이러한 인공지능에 대한 또 한 가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에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었던 한국의 이세돌 9단이 이 인공지능과 대국한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세돌은 그 때의 대국을 통해서 기력이 상승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이 알게 모르게 이세돌의 스승이 된 셈입니다. 우리는 하루 일과에 쫓기면서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아침 다시 일어나 어제의 일을 반복하다 보니, 사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른 채 그런 단순한 삶의 반복을 되풀이 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우리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존재로 변신해 간다고 해도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이러한 세계를 알고 있든지 모르고 있든지 관계없이 지금 이 세상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내일에 대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며, 충격적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응해야만 합니까? 이럴 때 우리는 어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며 무엇을 가지고 변화되는 세상에 대응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답을 얻고자 합니다. 3. 우리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바쁘고 하루의 시간은 마치 시간을 도둑맞은 것처럼 그렇게 재빨리 소모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벌써 2016년도 5월의 마지막 주일이고, 며칠 후면 6월을 맞이하게 됩니다.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병적 현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쁨과 감사와 만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그 결과에 만족하셨다고 했는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간곳이 없고 고통스러운 참담한 현실만 남아 있는 우리 스스로를 보면서, 때때로 자괴감과 패배감을 맛볼 때가 많은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중심에 잃은 버린 것에 대한 고통 보다는 다시 찾은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크게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이 포함된 15장 전체를 보면, 잃어버린 드라크마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서 3가지의 예화가 나오는데, 한결같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100마리의 양을 돌보는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다시 찾은 기쁨이 나오고, 두 번째가 본문의 내용으로 잃은 은화를 다시 찾은 내용과, 세 번째는 우리가 잘 아는 집을 나간 탕자가 다시 아버지의 품에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4. 예수님이 이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천하를 얻은 것 보다, 온 세상을 얻은 것 보다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자의 기쁨에 대한 이 비유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종들로 다른 백성들에 비해서 많은 특권과 권리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죄인들은 벌을 받고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동정과 자비는 전연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즐거워하고, 도리어 자신들을 책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고 하셨고, 본문 바로 앞에 있는 7절에서도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보다 더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계셨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집 나간 아들처럼 그가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인생이 망가질 대로 다 망가지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그 아들이 생명만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 때문에 잔치를 열어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그 기쁨에 참여시키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그 영원한 기쁨을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5. 눅15장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그것을 자신의 재산으로 인정받고, 계속해서 그것을 늘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지속적으로 재물이 늘어나고 금화, 은화가 집안에 쌓이고 그것을 사람들이 보고 부러워하는 가운데서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집 나간 불효자식 보다는 부모 곁에서 효도하며 희생하는 내가 더 잘난 인생이고 그래서 당연히 집안의 모든 재산을 남김없이 다 상속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형이, 그래서 아버지 재산을 다 향락에 소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위해 잔치하고 기뻐하는 아버지가 싫고 화가 나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15장의 내용을 잘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존재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을 치루고 이룬 인생의 공로 때문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내용은 너무 간단합니다. 잃은 것을 다시 찾은 자의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이 땅 이 민족에게 보내셔서 우리도 같은 일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인 줄 믿습니다. 6.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00마리의 양 가운데 잃어버린 한 마리 때문에 목자가 그렇게 수고하며 애타게 찾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드라크마, 즉 은화 하나를 잃은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내 수중에는 남은 9이 있는데 그렇게 까지 애타하고 수고하면서 찾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일이 없는 큰 아들이 있는데, 방탕한 자식이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가정에 재앙이 될 수 있으니 큰 아들로 만족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잃은 것은 아깝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자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그 기쁨을 온 이웃과 더불어 나누면서 소모되는 시간과 경제적인 손실이나 수고는 결코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 사상으로 팽배한 이 시대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잃어버린 자에게 집중 하셨습니다. 그 분의 기쁨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99마리의 양이나, 아직도 여인의 손에 남아 있는 9개의 은화나, 집안에 남아 있는 아들이 귀하고 소중한 만큼, 잃어버린 양도, 잃어버렸던 은화도, 잃은 아들을 다시 찾은 것도 기쁘고 소중했기 때문에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았다는 그 사실 한 가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잃은 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먼저 생각한 후에 행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익의 계산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인하여 기뻐하시는지 그것을 먼저 생각한 후에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잃은 자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요, 바로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7. 그런데 우리가 다시 본문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한 마리의 잃은 양이나 본문의 드라크마나, 혹은 탕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은 아닌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는 남들보다 더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섬기고 봉사하고 있으니 나는 부족한 것은 있어도 크게 염려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잃은 드라크마를 읽으면서 나도 잃은 자 중에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고,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 분의 백성으로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을 잃어버리고, 작은 문제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구나 시16:3절에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는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데, 도리어 존귀한 성도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부끄러운 삶을 사는 소위 그런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5:16)고 했는데도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벧전4:10) 잃어버리고 부끄럽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입니까? 잃은 양 한 마리나, 잃은 드라크마 하나, 그리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 탕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알이 아니겠습니까? 8. 이런 잘못된 모든 것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죄가 그 원인입니다. 죄는 우리를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 짓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한 편으로는 영적으로 소중한 것들을 야곱의 형인 에서처럼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에도 이런 것쯤이야!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여러모로 야곱보다 뛰어난 능력과 존재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버림당했고, 부족한 야곱은 도리어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소홀히 하면 건강을 잃고, 재물을 소홀히 하면 재물을 잃듯이, 죄를 심상히 여기면 영적으로 소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염려가 나오고, 여기서 근심이나 고통이 시작되며, 여기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와 인본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소홀히 하면 확신과 기쁨이 사라지고, 기도를 소홀히 하면 능력이 사라집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특별한 은사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니 지금은 그러한 영적인 능력과 가치를 상실당해 버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고,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으며, 인간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면 그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심판을 받는 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언제까지 사명을 잃고, 제 스스로의 믿음의 능력을 상실한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은 짧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9. 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요즘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느 나라를 가도 지하철이나 전철, 버스를 타면 스마트 폰에 빠져서 세월 가는 줄 모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고, 인공지능이 아무리 애인처럼 보이고 인생의 협력자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형상은 물론이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옛날부터 늘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게 만들고, 잘못된 지식을 전달함으로 사람들을 사망의 길로 빨리 달리도록 만들 뿐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닌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그곳에 관심을 쏟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잃어버린바 된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점점 더 가까워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잃어버린 자들 가운데 있는 자가 아니라, 잃은 영혼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구원하는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복음의 사명자가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지키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 보다는 교회의 공식적인 예배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매일 가까이 함으로 신앙의 인격위에 영적인 양식으로 충만케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말씀 중심의 삶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루의 일과 중에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과 능력을 우리 삶 가운데 넘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중심으로 섬기고 봉사하면서 받은바 사명에 충실할 때, 하나님은 우리 위에 은혜에 은혜를, 사명 감당하도록 축복 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