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14.영적상실(로마서 1:18-32)
[성경본문] 로마서1:18-32개역개정
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영적상실(로마서 1:18-32/2016.2.14.오전) 1. 여자들의 본능은 남보다 더 아름답고 예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용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이 사회가 예쁜 여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아름답고 예쁘게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일 기본적은 것은 사람 앞에 자주 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들이 시간이 가면서 예뻐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 앞에 설수록 아름다워지고 예뻐집니까? 긴장하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잘 보이려고 하니 긴장하는 것입니다. 긴장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모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점점 예뻐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외모에는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영적으로는 왜 성장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0년, 20년 열심히 주일성수하고 섬기고 봉사하는데도 영적인 성장이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려고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잘 보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개혁주의 신앙을 전수해준 죤 칼빈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예정론과 선택의 교리를 만들어 가르쳤습니다. 그가 27살 되던 해 즉, 1536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는 500년 가까이 지나도 이 책을 능가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는 개혁주의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그의 사상을 가리켜 한 마디로 말해서 코람데오(coram Doe) 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늘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뜻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세상 앞에 잘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인생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연약하며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의와 어리석음과 생각의 미련함과 허망함이며, 추악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함의 수준이 도를 넘어서 모든 질서와 법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 끝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멸망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가 망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 무엇입니까? 소돔 성과 같은 성윤리의 파괴입니다. 며칠 전에 일본의 중의원 한 사람이 그의 아내가 출산하러 병원에 간 사이에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관계를 맺은 것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의 추악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요 지성인이라는 사람의 삶과 생각이 이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수준의 생각을 가지고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있으니 이 국가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성윤리가 파괴되면 제일 먼저 가정이 깨어지고, 인간성이 상실되고, 집 안에 있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파괴되면서, 이로 인해 모든 질서가 파괴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볼 때 너무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다고 했던 그 소돔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27절에 기록된 죄로 망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경우를 보면, 출22:19절의 獣姦의 범죄로 망했고, 애급의 경우는 성적 무질서로 망했고, 로마의 경우는 성을 오직 쾌락의 도구로 삼아 망했고, 중세 역사도 음란죄로 망했음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큰 목소리를 내는 동성연애는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중대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성연애가 세상에 드러나자 사람들을 처음에는 정신병동에 넣어 치료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들을 더 이상 병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소수자로서의 권익을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당당하게 종교나 정치, 교육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제는 기독교의 신앙을 억압내지는 박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창1: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 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만드신 법을 깨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깨트린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지금 무서운 혼란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나 경제적인 혼란에 환경파괴며 영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래서 질서가 깨어졌고, 그 결과 환경과 육신과 정신세계에 심각한 고통과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행복이 없다고 말하고, 병든 사람들은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당한다 말하고,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고통당하는 원인은 기성세대에의 잘못이요 부모들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이 고통당하고 불행한 이유는 누구의 탓이 아니라 죄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행복이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오늘 본문 28절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자신들의 삶에 하나님의 간섭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첫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집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너무 오랫동안 떨어졌다가 만나게 되면 적지 않은 갈등이 생깁니다. 이유는 그동안 서로간에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할린에서 영구 귀국한 형을 박대하는 동생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친이 NHK영상에 올라왔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라도, 몇 달면 교회 안 나오면 완전히 세상 사람하고 똑 같이 됩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매일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보면 부부요, 형제요, 친구라고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모르는 사람은 다 마귀의 자녀요, 마귀에게 눌려 사는 불쌍한 인생일 뿐입니다. 그들의 삶은 매일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시달림을 당하니 마음에 평안이 없고, 늘 갈등과 분쟁으로 행복이 없습니다. 그렇게 계속 살다보면 결국에는 육신에 심각한 질병이 찾아오고, 나중에는 정신병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4. 오늘 본문 26-31절 사이에 기록된 각종 범죄는 어떤 인생이라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범죄와 더러움과 고통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엡2:2절에 보면,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의 세력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같아도 마귀에게 속한 이 세상 풍속을 쫓으며 살아야 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며,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 살기 마련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 큰 얼음덩어리가 떠내려가는데, 자세히 보니 살찐 양이 한 마리 죽어 얼음에 묻혀 있었습니다. 상공을 날던 독수리가 이것을 보고 내려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음을 찍고는 그 양을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뜯어 먹고 배도 불렀는데, 폭포 바로 앞까지 떠내려갔습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창공으로 날아 올라가려고 하는데, 발톱이 얼음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얼음덩어리와 함께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정체요 마귀의 간계입니다. 세상에서 너 하고 싶은 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실컷 즐기면서 살아라, 인생이 죽으면 끝이 다고 하면서 유혹합니다. 나쁜 친구들을 보내 그들의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함께 불법과 더러운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은 지옥 불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본문 29-31절의 죄의 증상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씌여 있습니까? 제일 먼저 29절에는 모든 죄악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불의, 추악, 탐욕, 악의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을 헤치는 죄가 나오는데, 시기와 살인, 분쟁과 사기, 그리고 악독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교만한 자의 죄가 나옵니다. 곧 수군수군하며 남을 비방하는 죄,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해석에 문제), 능욕과 교만, 그리고 자랑하는 죄입니다.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죄가 나오는데, 곧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우매하며, 배약, 무정, 무자비와 같은 죄들입니다. 5. 이러한 죄악의 상태를 가리켜 철학자 키엘케골은 진단하기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키엘케골이 똑똑해서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정확한 진단이 나올 정도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완전하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봐도 나쁜 짓이고, 더러운 짓이고 용서 못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쥐꼬리만 한 재물을 위해서 얼마나 바쁘게 왕래하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습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바쁘게 산다고 열심히 산다고 인생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이 더 가중된다는 사실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면서 그것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철학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양심적인 사람들은 선행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무마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선행이나 종교생활은 물론이고, 그 어떤 학문적인 시도도 인간이 만난 죄와 저주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만 낳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의 고통이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게로 오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6. 인간의 스스로 힘으로 육신의 질병은 치료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적인 상실은 그 누구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은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늪에 빠진 자와 같이 더 어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고백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탄식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절망의 소리요, 스스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낀 자의 고통하는 신음소리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롬8:2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곧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사망의 법, 곧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사로잡혀 저주와 고통을 가져다주는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보혈로 모든 죄를 씻어 영원히 구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1:12절에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가 어떤 존재로 변화되는지 그 신분의 변화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영접하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면, 그 때부터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오시고,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영원히 보장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8. 인간이 쉼도 없이 고통하고 더러워진 존재로 타락한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영적인 상실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 창조를 하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에게 주신 온갖 축복과 은사와 생명의 능력을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떠남으로 다 잃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첫째로 모든 저주와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자유를 주십니다. 둘째로 인간을 고통하게 만드는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됨으로 인생의 무거운 짐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그 짐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세상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유혹하고 대적하는 마귀를 이길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함께 하시는 보호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라 늘 성령님께서 동행하시며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영적상실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 다 잃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해도, 영적으로 실패하면 영원토록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처럼 비록 세상에서는 실패했다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적인 회복을 통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의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저 하늘나라에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영광 가운데 해 같이 빛나며 그 분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영원히 사는 것인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