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마태복음22:15-22)
[성경본문] 마태복음22:15-22개역개정
15.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마태복음22:15-22/2016.1.10.오전)
1. 지난 10월에 미국에서는 매우 감동적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에드가 로페스라는 멕시코 출신의 노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1억6천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된 것입니다.약 190억엔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이 돈을 1/5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5명의 친구들이 각자가 복권을 구매하면서 당첨되면 똑같이 나누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은 운전수, 가정부, 보육교사 등의 사회의 밑바닥 인생이었지만, 10년 전의 약속을 지키면서 온 세상에 훈훈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1월에는 알레스카의 케네스 윌슨 이라는 사람이 구매한 복권이 100만 달러에 당첨이 되자, 이 사람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1/3씩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는 단지 법적인 구속력도 없는 구두로만 약속했지만, 난 신의를 지키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21세기의 사회는 신의가 바닥에 떨어지고 공의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그런 세상이지만, 서민들 속에는 아직도 약속에 대한 신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회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법도 중요하지만, 법 이전에 구두로 맺은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부모와 자식이 효도계약서를 쓰고 재산을 상속을 한다고 하는데, 부모가 볼 때 자식이 효도하지 못한다고 판단이 되면 법정에 이 사실을 고소하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재판소는 그 재산을 부모에게 도로 돌려주라고 판결을 내린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법 이전에 신의에 바탕을 둔 약속이 중요하고, 약속 이전에 인륜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식이나 부모나 법정에서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의 발단은 세금문제입니다.
일본에서 살면서 세금 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소비세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 보면 오래 전부터 세금에 대한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만 하여도 소비세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비세가 없는 당시의 일본은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엔의 위력은 전 세계를 다 사들일 정도의 기세였습니다.
가히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지금의 중국 경제력처럼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비세 문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래서 3%, 5% 하면서 소비세가 찔끔찔끔 올라가는데, 그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정부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국가재정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고, 이제는 8%는커녕, 10%, 15%로 올려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금이 올라가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복지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자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금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문제였고 골칫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국가가 정한 세금을 얌전하게 내는 것은 비애국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로마가 각종 수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세금 내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을 더욱 약화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적대국가인 로마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가진 상태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세금 문제를 들고 나와서 질문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금에 관한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며, 당시 상황으로 볼 때는 예수님이 잘못 대답하셨다가는 반역자가 될 수도 있고, 매국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헤롯 당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로마에게 붙어 그들의 압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이 이방임금을 위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선택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금은 국민의 의무이니 당연히 납부해야 한다고 하면 유대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매국노가 될 것이고, 세금 거부를 말하면 헤롯 정권에서 보면 로마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본문 19절에 보면 세금으로 낼 돈을 보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전에 새겨진 화상을 보고 이 그림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 동전의 앞면에는 로마 황제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평화의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황제의 모친 리비아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존귀한 아우그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케자르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정부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화폐 이외에 세금으로 지불하는 금화나 은화를 만들어, 이것을 로마의 통치 아래에 있는 전 지역에 보내어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사람들이 당연한 듯 대답하기를 로마의 가이사의 것, 즉 황제의 초상화라는 것입니다.
이런 대답을 듣고 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본문 21절에 보니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고 하셨습니다.
4.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 분의 지혜에 경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혜로운 예수님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바리새인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다 그 분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국가의 세금 문제입니다.
본문에서 가이사 것으로 표현된 세금은 당연히 국가로 귀속되어야 함이 마땅하고, 그래서 국가가 정한 세금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납세의 의무는 면제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유통되는 모든 상거래에는 8%의 세금이 붙고, 잠시 일본에 여행을 온 외국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지불해야 할 세금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 바로 이것이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가리켜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의 것은 어떤 것입니까?
제일 먼저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십일조일 것입니다.
소득의 1/10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워왔고, 한국 교회는 세례를 받을 때 반드시 이 부분이 신자의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십일조가 생각날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신자 52.1%가 정기적으로 십일조를 낸다고 하는데, 문제는 정말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며, 그 외에 하나님의 것에 포함되는 것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5.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의 십일조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십일조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려면 예수님에게 직접 듣고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십일조에 관한 내용이 여러 곳에 나오지만, 사람들이 율법이니 뭐니 핑계를 대고 있으니 신약 성경을 보겠습니다.
눅11:4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그 누가 해석을 해도, 십일조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해석에 의하면 도리어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운향과 채소는 십일조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이것에 대한 십일조까지 드렸다고 했으니, 그 해석이 정당하면 그들은 십일조 이상을 드리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왜 예수님이 칭찬이 아닌 “화 있을진저”하면서 저주를 선언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강조하고 계시는 것은 가이사의 것 이전에 하나님의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것으로 누가는 종교지도자들조차도 간과해 버리는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만 할 것이 아니라 이것과 더불어 세상에 대한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함께 행하라는 것입니다.
6. 사람들은 세금에 대하여 불평은 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 것은 국가의 권력의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의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랑의 하나님이 나의 형편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세금은 채납이 되면 독촉장이 날아오고 나중에는 차압에 들어가지만, 십일조는 일 년을 떼먹어도 그런 것 없으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합니까?
마19장에 보면 부자 청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는지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청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렇지 않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과 그 열 두 제자를 보니 행색이 너무 초라하니 자신의 많은 재물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수님을 돕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이 청년은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이 소유한 재물이 전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제 인생도 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의 간섭이나 지배를 당하는 것이 싫었고, 적어도 제 소유로 되어 있는 이 물질 만큼은 내 것이라는 사실에 전연 의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19:21) 고 하시면서 그리고 나서 나의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청년은 인생도 내 것이요 내가 소유한 재물도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그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과 소유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독재자가 아니시며, 사람의 가진 소유를 탐내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죄 지은 인생을 위해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명과 물질과 미래를 다 그 분의 손에 의탁하고 그 분의 소유됨과 통치를 인정할 때, 넘치는 보화와 축복과 영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자 청년에게 약속하시기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가 만일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이 보화를 믿었더라면,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핵심이 무엇인지 깨달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놀랍게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 실제적인 사실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어머어마한 자손의 축복과 더불어 이 땅을 너의 소유로 주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명령하셨습니까?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창15:9)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를 위함이 아니라 나 여호와를 위하여 이런 것들을 내게 바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3년 된 것들을 가져오게 하시는 것은 완전히 제물을 가지고 희생 제사를 드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희생 제사를 통과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받을 구체적인 축복의 세계를 다 보여 주셨습니다.
8. 그리고 창17장에 가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지시하셨는데 이 할례는 하나님의 소유된 표시로 행하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그들의 몸에 새긴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소유된 자임을 인친 이중적인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창17:14절에 보면 할례 받지 아니한 자는 비록 아브라함의 소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요, 그래서 그 자손이 끊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에는 십일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 있는 우리 인생 전부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에 복을 더하시고 축복에 축복을 더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가지고 이것이 성경적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는 사람은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창22장에 가서 보면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여호와 이레로 함께 하셨고, 엄청난 축복의 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창22:14-18).
그 축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구체화되었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9. 이러한 아브라함의 신앙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넘어가면서 이삭은 한 해에 100배의 축복을 얻었으며(창26:12), 물이 생명보다 귀중한 사막에서 가는 곳 마다 우물을 빼앗겨도 계속해서 가는 곳 마다 파는 곳마다 새로운 우물이 솟아올랐고, 이러한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삭의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손자 야곱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감복하여 하나님께 십일조를 약속하고 그대로 행함으로(창28:22), 아브라함과 더불어 십일조로 축복받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십일조에 매여 갑론을박하면서 귀한 세월을 보내지 말고, 천지 만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내 인생 내 청춘 내가 가진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인정함으로, 십일조 이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내 몸과 내 생명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필요로 하실 때, 우리는 내게 있는 소유를 다시 그 분의 소유로 돌려 드림으로, 2016년도와 남은 생애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그와 같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