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5.부활신앙은(사도행전2:29-36)

[성경본문] 사도행전2:29-36개역개정

29.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부활신앙은(사도행전2:29-36/2015.4.5.오전)


1.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자신을 위해서 동서 길이가 2.5키로, 남북의 길이가 1키로나 되는 아방궁이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궁전을 짓고, 그곳에 천하의 미인들과 천하에서 제일가는 물건들을 모아놓고 살았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그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늙어가고 쇠약해 지는 자신의 생명에 관해서는 천하의 권력을 가지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명을 내려 불로초를 구해오는 사람에게는 높은 벼슬과 엄청난 재물을 약속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불로초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그냥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중국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여산이라고 하는 산 밑에 지하 무덤을 만들고 그곳을 생전의 아방궁처럼 꾸미게 만들고, 가장 아름다운 미인 3천명의 궁녀를 뽑아서 그곳에서 죽은 자신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며 자신을 지켜 줄 것을 명령했습니다.
미인 3천명은 그곳에 갇혀 있다가 나중에 항우가 나타나서 그곳을 헐고 궁녀들을 해방 시켜 주었는데, 그 때 항우는 3천 궁녀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궁녀를 데리고 갔는데 그녀가 우미인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항우는 유방과 더불어 싸우다가 패배하고 도망 갈 때에 오강이라는 강가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 이 우미인과 함께 자결을 하게 됩니다.
항우는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이 여인만큼은 영원히 잃지 않겠다는 생각에 함께 자결한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부귀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 살고 세계 제일의 미인을 품고 천하제일의 권력을 가졌다고 하여도 인생이란 존재는 반드시 잠시잠깐 후에는 그런 모든 좋은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귀도 권력도 자랑도 영생을 누릴 때 가치가 있는 것이고, 생명이 있을 때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활절을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절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망의 세력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절도 귀하지만,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실 때, 만일 다시 살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헛것이요, 그 분이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셔도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고전15:13-14)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마지막에 증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15:20) 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요,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3. 그렇다면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활신앙이 없는 곳에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으며, 부활의 신앙이 없이는 천국도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부활 신앙은 죽음을 이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1절에 믿음의 조상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은 죽고 영은 살아난 것처럼 말하는데, 본문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그분의 육신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2절에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하지 않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함으로 그 분의 육신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태로부터 출생하는 순간 어디로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까?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죽음, 혹은 사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세계최고령인 117세의 오오가와 미사요 할머니가 오사카의 히가시스미요시에 살고 계셨는데, 지난 1일에 이 분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인류 역사이래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은 물론이고 생명이 붙어 있는 모든 존재는 한결같이 죽음을 싫어하고 죽음이 다가 오는 것을 거부하고 두려워하지만, 아무도 이 사망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이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연기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욱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가 아무도 이길 수 없었던 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인류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4.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고 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첫 사람으로 마귀의 속임에 빠져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함으로 아담 이후의 모든 인생들에게 저주와 고통과 영원한 죽음을 선물로 주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불순종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이 시대의 모든 죄의 대가를 치루시고, 저와 여러분을 온갖 저주와 고통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의 속죄, 그의 구원, 그의 영원한 생명은 이 부활의 사건을 통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부활의 승리를 함께 누리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죽음 이후에 영원한 부활의 영생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한 번 죽은 자에게는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고, 나인성 과의 독자도 살리시면서, 죽은 자의 부활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3일 만에 무덤을 열고 부활하심으로 죽은 자의 부활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두려움이나 고통이 아니라, 도리어 영생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죽음 이후에 나타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쁨 중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의 핍박으로 말미암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죽음이 오라고 손짓하는 그 곳을 향하여 확신과 담대함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고 했습니다.  

5. 분명한 것은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는 영생하도록 만들어졌고, 죄를 알지 못하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인생에게 영원한 죽음과 저주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후로 인생의 육체는 썩는 것이 되었고, 늘 약하고 허물이 많으며, 질병과 실패와 연약함 때문에 고통으로 신음하고 탄식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롬8:20-22).
죄는 불순종이요 죄는 씻을 수 없는 허물이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심판을 받는 것도,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 자체가 심판을 받는 다기 보다는 인간의 행위 속에 있는 죄가 심판을 받는 것이요, 인격을 가지고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문제는 그 죄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오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6.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만드실 때, 온 세상을 다 만드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스스로 만족하실 만큼 온 세상은 완벽하게 지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고통이나 슬픔이나 근심이나 죽음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가득찬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완전한 세상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순종이라는 죄로 말미암아 모든 질서가 파괴되고 온 세상이 생명의 능력을 잃고 어두움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죄가 세상을 파괴하고 세상 가운데 인생을 고통하게 만들고 죽음에 사로잡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창3장에 보면 온갖 저주와 고통이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롬6:23) 이라고 선언하였고, 사도 야고보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약1:15) 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조상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모두의 죄가 이 지구촌에 고통과 저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인류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온 세상에 셀 수도 없는 많은 종교가 생기고, 많은 사상과 제도를 만들어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류의 몸부림은 치열했지만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철학으로나 사상으로나 어떤 제도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개인의 선행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할 수 없으며, 그 어떤 능력이나 고행으로도 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출생에서 시작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과 저주 속에서 살다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 문제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진 인생들에게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롬5:8) 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인간을 영원토록 저주와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던 이 죄 문제를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동의나 도움을 받지 아니하시고, 심지어 우리가 알지 못하던 사이에 일방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 인간 스스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음 중의 복음이요 그 어떤 죄도 용서하고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8. 그래서 본문 36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좇아서 우리의 영과 육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온 인류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와 연약함을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을 믿는 것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 우리의 영원한 왕이요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이 사실을 믿을 때,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고, 온갖 근심과 두려움과 슬픔도 죄의 문제도 해결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계하지 아니하고, 어떤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능력과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은 우리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는 사망과 죄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모든 두려움과 염려와 고통에서 해방되는 영원한 자유 그 자체이며, 우리도 동일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는 영원한 축복 그 자체인 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32절에 보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 이라고 했습니다.

9. 지난주에 우리가 성찬에 참여했는데 그리스도인이라도 성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참여하면 오히려 죄를 범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면서도 부활 신앙의 능력도 모르고, 부활의 증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그 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를 죄 사함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 분의 부활의 영광 또한 우리의 영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신앙이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육 간에 과거의 모든 문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믿으며,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문제까지 다 해결된 줄 믿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확신과 감사와 능력으로 사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 모두의 삶에 충만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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