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3.성령으로 오신 예수(마태복음1:18-25)

[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개역개정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령으로 오신 예수(마태복음1:18-25/2014.12.13.오전)

1. 우리가 전도할 때 가질 수 있는 의문 중에 하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구원을 호소하며 그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당연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일부의 사람들은 신앙을 방해하고 박해하며 대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의문을 사도요한은 분명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9-11) 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한"(5)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타락한 이후에 세상은 어둠에 잠기게 되었고, 이 어두움은 죄로 말미암아 본능적으로 빛을 거부하고 그래서 구원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까지 배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도바울은 이 사실에 대하여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1:22-23) 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의 주가 되심을 알았더라면 결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2:8) 고 했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도 알지 못하고 영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다른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심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세상의 지혜나 능력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볼 때 가장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방법인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1:29절에 보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는 것입니다. 왜 자랑하지 못하게 합니까?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교만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선물에 대하여 거부 반응을 가지고, 이 엄청난 구원을 거저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폄하하고 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삼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전 생애를 통하여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더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고, 결국에는 복음을 거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사실입니다.

3. 오늘 본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의 출생은 남녀의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본문의 말씀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으니 이성적인 인간으로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고전1:21) 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몇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전2장에 보니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을 알게 하시는데,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2:10) 도록 하셨습니다.
영화의 역사를 통해 윌리엄 와일러가 만든 벤허 보다 사람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치는 위대한 작품은 없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멕시코 지사를 지낸 루 윌레스라는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멕시코지사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신화와 허구에 가득한 도무지 어리석은 종교라고 여기고 자신의 온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기독교의 허구를 파헤치는데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1장을 쓰고 2장에 들어가면서 성령님은 그를 찾아와서 그의 강퍅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고, 그는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의심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벤허를 집필하였고,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져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고백하고 있는 이 행위도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한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있는 줄 믿기 바랍니다.

4.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할 때, 예수님의 육신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 다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구약에서부터 성령의 역사하심은 있었으며,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되심도 성령으로 되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1:35절에 보면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하였는데, 이것은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신 것을 반복적 표현으로 능력이 너를 덮으셨다고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막을 완성했을 때 하나님이 임재하심과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구름으로 덮은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에게 잉태된 이 사건은 신과 인간의 동침이라는 로마나 헬라적인 그런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생명을 만들어 내는 창조의 능력으로 마리아에게 임하신 것이고,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의 성막 위를 덮은 하나님의 영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또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그들 공동체 가운데 오신 성령의 임재하심과 비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6:19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성막을 덮은 하나님의 영광과, 마리아에게 임하여 잉태된 성령과 오늘날 우리 가운데 오신 성령의 역사는 나타난 결과는 각각 다르지만 동일한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성취하려는 목적은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5. 그가 오셔서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문제를 요셉으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처음에 요셉의 생각은 마리아의 잉태된 사건을 놓고 조용히 관계를 끊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예정과 언약과는 상관없이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이 시점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우리 생각에 의존하고, 우리의 습관과 지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길을 가게 만들며, 곧 죄인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천사를 통해서 요셉에게 하나님의 예정을 알려 주었고, 요셉은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제일 먼저 어떤 경로로 어떻게 마리아가 잉태된 것인지 알게 하였고, 이것이 이미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며,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입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의 「임」은 함께한다는 뜻이고, 「마누」는 우리들이란 뜻이고 「엘」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23절 하반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구원자란 뜻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을 나타내는데, 이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명, 곧 수행해야 할 내용이 바로 임마누엘이기 때문입니다.

6. 성령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성육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로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그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와는 상관이 없는 몸으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 내가 누구의 도움을 받느냐,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이냐, 누가 나를 인도하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한창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뉴스가 있는데, 대한민국의 고질병은 대통령을 점정으로 하는 권력의 실세들과 그들에게 붙어서 무슨 유익을 볼까 하는 진드기 같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소리를 치고 권력의 단물을 빨아 먹어도 오래 가지 못하고, 자칫 잘못하면 법의 엄한 심판을 받아 평생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런 현실을 보더라도 내가 누구와 함께 하느냐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임마누엘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까?
믿음의 영웅들에게는 “강하고 담대하라”(수1:6) 고 하시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1:9) 신다고 약속하셨고, 제자들에게는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시23:4)을 믿었습니다.

7.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 요셉도 마리아와의 관계를 놓고 고민하고 방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4절에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 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이 약속보다 더 감동적이고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약속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출생하시던 시기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믿고 의지할 곳은 한 곳도 없으며, 어느 때 보다도 가장 어둡고 가장 춥고 방황하며 고통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마리아를 믿은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의 이루시고자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수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 기록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왔지만 아들을 낳기 까지는 동침하지 아니했고, 계시 받은 대로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은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인간의 지성과 경험을 충돌하여 무리하게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알게 한 뒤에 그것을 인간 스스로의 선택의지로 받아들이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사상을 세뇌 받거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도자를 통해서 들은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결단하도록 도우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8. 요셉에게 찾아온 천사,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성령 하나님은 마리아의 잉태와 요셉의 결단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짓는 것은, 이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22절의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 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나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취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거나 순종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뜻에 도달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마5:17절에서 예수님이 친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결국 본문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성령이 오셔서 마리아에게 잉태함으로 나타나고, 요셉에게는 천사를 통해 꿈으로 계시하시는 이 모든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슨 성취입니까? 죄 가운데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귀한 모범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빌2:5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원래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지만 일단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때,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능력과 내려놓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도 육체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있는 그대로 다 맛 보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울면서 기도하시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심으로 말씀을 성취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 분 자신이 성령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9. 그렇다면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오셨는데, 우리는 어떤 자세로 무엇을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제일 먼저 우리의 뜻을 버려야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무리 신앙적으로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들 역시 인간의 죄의 혈통을 따라 출생한 죄인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님이 오셨고, 성령께서 그들을 하나님 말씀의 성취를 위해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역사가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족한 것이 많고 연약한 인생이요, 육체의 욕심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뜻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나아간다면,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역사되는 줄 믿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던 사울 같은 사람도 전도자 바울로, 대 사도로 변화시키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성령의 충만함과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가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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