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1.구유에 누인 아기(누가복음2:8-14)

[성경본문] 누가복음2:8-14개역개정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구유에 누인 아기(누가복음2:8-14/2014.12.21.오전)
1.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을의 결실을 바라보는데,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잘못된 씨를 뿌리게 되면 좋은 열매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어떤 씨를 뿌렸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씨를 뿌리기에 앞서 씨를 물에 띄워 보고 떠오르는 씨는 버리는데, 이것은 죽은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하는 말들이 무엇입니까?
씨는 못 속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강조하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하면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고 했습니다.
지나온 일 년을 돌아보면 이 말씀이 정말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잠시잠깐 후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가 과연 무엇으로 거둘 것이냐 이것입니다.
좋은 밭에 좋은 씨를 뿌려 풍성한 수확을 영원히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우리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 분의 온유함과 자비로우심, 그 분의 겸손함과 용서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 이전에 먼저 인격과 삶의 모습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만 보면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을 인생의 목적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밭, 이런 삶의 현장에 무슨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가진 자가 없는 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귀신들린 자까지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보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2. 둘째는, 바른 복음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통해서 한결같이 거론되고 있는 위험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복음입니다.
헬라와 로마의 세속적인 영향을 받은 잘못된 가르침이 그 첫째이며, 둘째는 유대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율법주의적 복음입니다.
이것들의 특징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그것을 받은 교인들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이며, 사도바울이 염려하는 것과 똑같은 시대적인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도 거짓 사도들이 있었고 사람들을 속이는 일꾼이 있었으며, 오늘날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 ,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경계하는 것은 잘못된 씨앗을 받아 그것을 자신의 밭에 뿌리는 것입니다.
복음의 좋은 씨를 받아 제 심령에 뿌린 사람들은 신앙도 인격도 변화가 되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만, 잘못된 씨를 받은 사람들은 점점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단언하는 것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함”(갈1:7) 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좋은 씨는 무엇이며 좋은 열매를 맺는 씨앗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의문을 가진 자들에게 좋은 답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복음이란 좋은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쟁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용어였습니다.
멀리 떨어진 전쟁터에서 아군의 승리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승전 소식을 알려 주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가리켜 유앙겔리온 이라고 했으며, 또한 전쟁에서 아군이 얻은 승리 그 자체를 유앙겔리온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따라 민족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에 그들의 군대가 승리한 것은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승리의 소식을 가져온 전령의 메시지야말로 온 백성이 목마르게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표적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11절에서 “구주”, 곧 “그리스도” 란 사실을 구유에 누워 있는 이 아기 자신이 그 증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믿어 구원을 얻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로마서1:16절에 증거하기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 했습니다.

4.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어떻게 예루살렘성도 아닌 시골 베들레헴 그것도 어느 마구간에 태어나 강보여 싸여 누워 있는 이 아기가 표적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헬라 신화나 이방 종교에서 신이 잠깐 인간의 몸으로 변신하는 것은 있어도, 완전한 인간으로 화육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스스로 사람 되셨다는 이 사실 보다 더 큰 기적도 더 놀라운 사건은 없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다윗 왕가의 혈통을 따라 출생하셨고, 자기 백성이 있으며 왕의 권세를 가지고 이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자는 태어나는 장소를 가라지 않습니다.
애급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는 나일강 하수가에서 건짐을 받고 선민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다윗 왕 가문에서 태어난 이 아기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제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줄 정도로 자기 백성을 완벽하게 구원하신 분인 줄 믿습니다.
비록 그는 어린 아기로 태어났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그 자체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요 기적이요 소망이요 은혜입니다.

5. 또한 이 아기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떡집에서 태어난 의미를 그대로 살려서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6:51) 고 하셨습니다.
베들레헴 떡집에서 나온 이 떡이 어떤 떡입니까?  
먹고 배부르면 만족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먹었느냐는 듯이 다시 배가 고픈 그런 떡이 아니라,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을 말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떡을 먹어야 생명을 보전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하늘로서 내려온 신령한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을 먹을 때 영생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쇼핑할 때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준으로 합니까?
물건의 값과 질을 보고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기웃 거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 가만히 보면 물건의 가치는 보지 않고 서비스만 보는 사람들 같습니다.
사람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선포되는 말씀이 참된 복음인지, 이런 것은 보지 않고 교회 건물이나 재산이나 조직이나 세상 사람들이 보는 그런 기준으로 교회를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좋은 소식 기쁨의 소식이 들려 올 줄은 꿈에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마구간에서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고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사람들입니다.

6. 그러나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는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볼 때 고통스러운 저주의 십자가로 보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 그 자체로 보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도리어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평생의 기도는 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작년 이맘때쯤에 동경 도지사였던 이노세 나오끼(猪瀬直樹)는 의료법인 도꾸슈까이(徳州会)에서 5천만엔의 뇌물을 받은 것이 발각나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가 불쌍했습니다.
우리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제 자신의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러운 욕심에서 시작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죄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의 모두의 죄가 문제입니다.
죄가 우리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을 내고 인색하고 인간이 좁쌀만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말씀을 성취하는 도구로 제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면, 누구라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어떤 환경과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의의 길을 갈 수 있으며,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7. 지난번에 마리아에서 대해서 설교했는데, 그녀의 마지막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잘살고 남들보다 더 성공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 말씀 순종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이나 행복은 제 욕심을 따라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의 성취를 위해 우리 자신을 주님의 소유로 드리는데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마리아와 요셉은 왜 그렇게 힘들게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하느냐? 나사렛에서 아기를 낳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가5:2절에 보면 선지자 미가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 이라 예언하였고, 본문 앞에 있는 4절의 말씀을 보면 요셉이 다윗의 집 족속이기 때문에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호적을 하러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유에 누인 이 아기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때문에, 그들은 만삭이 될수록 반드시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아기를 출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드리고 희생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도 말씀대로 순종한다면 말씀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갈 길을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8.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는 왕으로 오셨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간의 집도 만들지 아니하시고 두 벌의 옷도 가지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분은 출생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비참할 정도로 어려운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그 분의 능력, 신성과 권위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행치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도바울은 이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를 부요한 자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가난해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욕심이 많습니까?
한 번 쥐면 절대로 내려놓지 않으려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왜 오셨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면 얼마나 잘 살겠습니까?
주님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날 위해 가난해지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하여 안으로는 욕심을 내려놓고 교만한 마음도 버리고 겸손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남들을 생각하면서, 밖으로는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